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혜 Jan 14. 2022

둘째는 없어요, 어머님!

아이 돌 지날 무렵부터 자주 들었던 말은


둘째는?
둘째는 언제 낳으려고?
둘째 낳아야지?


그리고 세트메뉴처럼 따라붙는 (협박에 가까운) 말은


둘은 낳아야지
엄마한테 딸이 있어야 해
혼자 크면 애가 외롭고 불쌍해
낳으면 둘이 알아서 잘 놀아, 안 그럼 네가 평생 책임지고 놀아줘야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가족계획에 관여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심지어 놀이터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말이다.


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수 있었지만 지난 추석 때 어머님께서 둘째를 빨리 낳으라고 권유(라고 쓰고 강요라고 읽는)하셨을 땐 당황스러워 그저 웃으며 넘겼지만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으니 정확하게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없어요. 어머님!




1. 딸은 있어야지


나 역시도 자주 했던 말이다. 여자는 딸이 있어야 해. 엄마 생각해주는 건 딸이야.

그런데 사실 나는 그냥 했던 말이다. 맞장구라고 해야 할까? 난 자식이 딸이어야 할 이유도 아들이어야 할 이유도 그리고 꼭 자식을 낳고 살아야 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 

자식은 그냥 자식인 거지 엄마를 위로해주는 딸, 든든한 아들 등 어떤 역할을 맡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 엄마를 생각해주고 위로해주는 건 꼭 딸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게 왜 자식이어야 하는가. 엄마는 엄마 스스로 알아서 잘 살아가면 될 일 아닌가.



2. 혼자 크면 애가 외롭고 불쌍해


좀 웃어도 될까...

왜 태어나는 아이에게 벌써부터 어떤 의무를 부여하는지? 첫째를 위해 존재하는 둘째라니요?

사람은 형제자매가 아무리 많아도 개개인의 고유한 외로움은 있다고 본다. 언니 오빠(누나, 형)가 있어서, 동생이 있어서 인생이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나 역시 동생이 있어 좋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외롭지 않은 건 아니다. 그리고 불쌍하다는 말 이런데다 쓰는 거 아닙니다만.



3. 안 그럼 엄마가 평생 책임져야 한다


그럼요, 제가 낳은 자식 제가 평생 책임지지 그럼 책임 안 지겠습니까? 

아이와 놀아주는 것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엄청나게 힘들다. 리액션에 진심을 가득 담아 호응해 줄 수 있는 건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다. 부모는 그럴 수 없다. 내가 해보니 알겠다. 그렇지만 평생 이렇게 마주 보고 종이접기 하고 블록 쌓고 그럴까. 이것도 어느 순간 아닐까. 결국 아이는 제 속도대로 크고 언젠가는 방문을 닫고 들어가 등을 보이는 날이 올 것이다.(그날을 기다린다는 말은 아니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아이를 또 품을 능력이 없다. 이게 가장 솔직한 이유다.


난 첫 아이 낳고 3년 넘도록 남자들이 군대 다시 간다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악몽을 꿨는데,

임신을 했거나! 임신을 했는데 어쩌다 보니 애를 바로 낳기 직전이거나! 뭐 이런 꿈 말이다.

그 꿈속에서 단 한 번도 임신했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망했다! 어쩌지! 이런 절망감만 느끼다 꿈을 깨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와... 꿈이었어. 다행이다... 와...)


난 아이가 '힘들지만 예쁘다'라는 쪽이 아니라 '예쁘지만 힘들다'라는 쪽이다. 같은 말 아니야? 싶기도 하겠지만 난 육아가 늘 힘들다로 끝나는 쪽이고,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보다 이 아이를 키워내야 하는 수많은 변수와 책임감에 짓눌려 어찌어찌 버티고 지나가고 한 고개 한 고개 간신히 넘는 쪽인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생각이 단순하질 못해 늘 여러 가지 상황을 그려놓고 준비하고 대비해야 마음이 편한데 (인생이 그렇게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것 마저도 생각해두는?) 아이는 내 계획대로 생각처럼 되는 존재가 아니기에 여기서 나는 종종 멘탈이 무너진다. 살면서 이렇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면서 어렵고 힘든 일은 육아가 처음이다.





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삶 어딘가에 가치를 두는 경중이 다를 텐데 본인이 그렇게 살아왔고 살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간다는 이유로 그게 정말 좋은 것일지라고 누군가에게 쉽게 권하지 않았으면 싶다. 세상 사는 모습이 다양해야 재밌지, 꼭 다 똑같은 꼴로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어떻게 쉬고 계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