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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Jan 04. 2022

어떻게 쉬고 계세요?

쉬는 방식

쉬는 것에도 저마다의 방식이 있다는 걸 아이를 낳고 새삼 알게 됐다. 남편의 쉬는 방식은 틈만 나면 자야 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틈만 나면 혼자 있어야 좀 제대로 쉰 것 같은 사람이었다.


애를 재우는데 애보다 먼저 자고 있는 남편을 보면 (와...님 신생아세요?)

점심만 먹고 나면 잠깐이라도 잠을 자야 되는 남편을 보면 한숨이 절로 푹푹 나왔다.(속으로 욕도 했다. 잠 못 자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신혼 기간이 3년 남짓했는데 그땐 왜 몰랐냐고요? 콩깍지였냐고요?


애가 없을 땐 정말 남편이 틈만 나면 자는 게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피곤해서 그렇겠지 저렇게 피곤해서 어쩌지 걱정을 했을 뿐. 왜 아니겠는가! 남편 잘 때 난 혼자 책 보고 혼자 커피 마시고 혼자 끄적이고 그럼 됐으니까. 그때 우린 각자 알아서 잘 쉬었고 균형을 이뤘던 것이다.


그러나 내 쉼은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는데 남편의 쉼은 계속 유지되었다. 애 낮잠 재우는데 옆에 누워서 먼저 코를 골았고, 주말에 점심 차려 먹고 나면 슬그머니 방에 누워 꿀잠을 취하셨다. 그래서 속으로 욕하다가 정말 면전에 대놓고 욕 해버릴 것 같아서 남편과 깊은 대화(라고 쓰고 격한 분노의 대화라고 읽는다.)를 나누다 알게 되었다. 내 생각에 잠이란 인간이 정신과 육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필수 불가결한 일이었다면 남편에게 잠이란 쉬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나는 가만히 있지 않는 게 어쩌면 제대로 쉬는 사람이었고 남편은 잠을 자야 쉬는 것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남편은 스트레스받는 일, 많은 생각들을 멈추기 위해 잠을 잔다고 했고 난 그 말이 실로 정말로 놀라웠는데! 난 생각을 하기 위해 내 시간이 필요했고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쉰다는(잔다는) 말이 놀라웠다.(인간이 이렇게 다르다니!!! 이렇게 다른 우리가 애를 낳고 같이 살다니!!!)


낮잠을 잔다거나 아무 생각 없이 티브이를 켜 두고 있는 건 내가 쉬는 방식과는 맞지 않다. 오히려 조바심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 쉬는 것 마저도 생산적인 것을 추구하는 걸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쉬고 있으면서도 나는 대체 언제 쉴 수 있는 걸까 한탄을 하게 될 테니 이렇게 생겨먹은 나를 인정하기로 한다.




아직 진심으로 남편의 쉼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다름을 인정해보기로 한다. 각자 방식에 맞게 쉬면서 살다 보면 시간 지나 할머니 할아버지 됐을 때 똑같이 이른 밤잠이 많아지고 이른 새벽잠이 없어지는 순간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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