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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Dec 28. 2021

엄마의 직업은 뭐야?

엄마 직업은 뭐야? 다섯 살 아이가 물었다.


유치원 하원 후 아이는 고심하며 고른 책을 내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아직 한글을 모르는 까막눈이라 어서 읽으라는 신호다. 아이가 골라온 책은 곰 아저씨, 직업이 뭐예요?라는 책이었는데 평소에 아이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직업군이 등장한 책이었다. 아빠의 직업이 무엇인지, 이모부의 직업은 무엇인지 한참 책을 보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갑자기 아이가 물었다.


엄마! 엄마 직업은 뭐야?


글쎄... 엄마 직업이 뭘까? 정말 딱 이렇게 대답을 하며 허허 웃었다.

 




내 직업은 뭘까.

요전에 봤던 책에서 전업주부가 은행 서류에 직업을 작성할 때 뭐라고 적어야 할지 난감해 무직이라고 적었더니 은행원이 주부 아니세요? 주부라고 적으면 돼요.라고 했단다.


사회에서 이제야 통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주부라는 직업의 개념을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가 안 된다면 아이가 봤을 때 엄마가 집에서 집안일 루틴까지 정해놓고 하는 집안일은 혹시 여자의 일로 이해되는 게 아닐까. 더불어 내가 주부이면서 주부를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생각이 그렇게 이어졌다.






예전에 그게 정답인 것처럼 말하던 때가 있었다.


여자가 연봉이 5천 넘거나!
삼성 엘지 뭐 그런 말만 들어도 알아주는 회사 다니는 거 아니면
아이 낳고 돈 벌겠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버는 돈 포기하고 집에서 아이 잘 키우는 게 오히려 돈 버는 거 아니야?


예전에, 내가 정말 예전에 이런 말을 했었다.(철이 없었죠)


아가씨 시절, 돈 벌던 시절, 내 돈 내가 쓰고 싶은 곳에 쓰고 퇴근하면 요가 필라테스 하러 다니고 맛집 예쁜 카페 찾아다니고 옷, 구두, 가방 그런 거 사면서 기분 내던 그런 때.
정말 기분을 그런 걸로만 낼 수밖에 없었던 때, 뭘 정말 모르던 때.

나는 삼성도 엘지도 아니었고, 연봉 5천 못 받아서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직장은 정말 그만 때려치우고 싶었다. 직장생활이 정말 지긋지긋했다.

문제는 나라는 사람이 여자의 일, 아니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여자의 일로 통용되는 가사노동을 하찮게 여겼었거나 어떤 일을 실행하는 가장 큰 결정의 이유가 돈에 우선 가치를 두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내가 돈 벌어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에도 없고, 맛집, 카페요?

집에서도 밥 먹을 수 있을 때 후루룩 전투적으로 마시고 커피도 아이 눈치 보며 다 식은 커피, 혹은 얼음이 다 녹아서 밍밍해진 커피를 마시면서 산다.


결국 내가 원해서 선택한 결과 앞에서 나는 참 많은 생각을 고쳐먹게 됐다.

그렇다.

나는 내가 원해서 전업주부를 선택했고, 내가 말한 기준에 미달하여 육아를 하고 있는 꼴이다.

그런데 역시나 모든 일들은 본인의 일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법,
그래서 입을 함부로 놀리고, 상대방의 의견에 제 생각이 맞네 어쩌네 연설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짓이라는 걸 나는 다행스럽게도 나이 한 살 한 살 먹을 때마다 더 뼈저리게 느끼며 사는 것 같다.

살림과 육아의 가치를 돈의 액수로 판단할 수 있을까.
워킹맘과 전업맘을 두고 네 선택이, 내 선택이 맞네 틀리네 할 수 있을까.

정말이지, 내가 요즘 느끼는 건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이라서, 혹 아이만 키우는 엄마라서 본인의 가치가 본인의 자존이 떨어졌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라!
그리고 남편에게 아이에게 좀 으스대도 괜찮을 것 같다.


여보, 아가야,
엄마는 우리 가족한테 없어서는 안 될 특별 임무를 지닌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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