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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Dec 21. 2021

나의 어린 친구들아 잘 있니?

청춘인 줄 몰랐던 서른한 살 청춘

서른한 살. 나는 결혼은 했으나 아이는 없고 직업도 없는 자유로운 몸이자 불안한 백수였다. 

다니던 직장을 결혼 날짜 하루를 앞두고 퇴직했는데 주말부부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결론이었다. 물론 나 역시 직장생활이 지긋지긋했고 타 지역으로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는 퇴사 사유는 꽤 당당하고 그럴싸하게 회사생활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이유가 됐다.


그러나 나란 사람은 늘 이래도 저래도 예민하고 불안한 사람인 데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이 낯선 도시에서 남편 퇴근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 다시 솔직히 말하자면 돈도 안 되는 주부 생활을 하고 있는 게 꽤 불안했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늘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게 단지 매달 급여 통장에 찍히는 돈이 되는 일이 아니어서 그랬지.


매달 내 통장에 찍혔던 월급이 결혼 생활 시작과 동시에 사라지는 것. 그게 뭐라고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사 마시면서도 그렇게 스스로 움츠러들었을까.




그러다 내 마음의 묵은 과제라고나 할까. 가보지도 맛보지도 경험하지도 못해 본 그런 걸 한 번 해보자! 그 생각에 방송작가협회 교육원 면접을 (달달달) 떨면서 봤다. 그게 서른한 살이었다. 면접에서 뭐라고 말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 울고 싶었다는 건 확실했다. 유명한 작가님들을 마주했다는 설렘보다 면접 보러 온 친구들이...... 거의 열 살은 나보다 어려 보여서.


아... 내가 너무 늦었구나. 내가 내 자리를 또 제때 못 찾고 잘못 찾았구나. 그 생각은 어떤 패배감을 안겨줬는데 그때 단지 내 나이가 서른한 살이라는 게 서글펐다. 


문제는 그 면접에 합격을 했고 (제가요?) 첫 수업 날의 자기소개 시간은 잊히지가 않는다. 왜 다들 자기소개를 하면서 나이를 말하는 건지? 난 이십 대 후반부턴 누가 내 나이 물어보지 않으면 굳이 말하지 않았는데 이 친구들은 스스로 나이를 밝혔다. 정말로... 나와 함께 수업 듣는 친구들이 21살에서 정말 많아야 25살 정도였다. 


"음... 전 서른한 살이고요." 이 말을 했을 때 교실 분위기는 순간 정적.

"결혼도 했습니다." 이 말은 정적을 깨 주었다. 와...! 어디선가 와...라는 소리가 나왔으니까.


(이해한다. 나 역시 스무몇 살 때 공통의 목표를 앞에 두고 서른이 넘은 사람과 함께 앉아 수업을 들을 거라 생각한 적 없다. 서른몇 살은 오히려 가르치는 나이와 어울리거나 적어도 커리어우먼은 되어 있어야 하는 나이 아닌가. 아니면 아줌마 거나...!)






“우리가 마침내 무대로 컴백했을 때 사람들이 원래 우릴 좋아하고 느꼈던 것보다 좋아해 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고 두려웠어요.
(…)
23살 25살 어릴 때 췄던 것만큼의 춤을 못 추게 되면 어쩌지.
그래서 2년 동안 운동을 했어요. 그 모든 게 오로지 오늘을 위해서였어요. 이 4일 간을 위해서였습니다.
또 (마음을 다스리려) 책을 계속 읽었는데, 이 4일이 제 의심을 완전히 날려버렸습니다.”


 나의 가수이자 (마흔이 가까워져도 아이돌을 사랑하는 나야말로 마음만은 이십 대보다 더 청춘 아닌가!) 대한민국의 가수이며 세계에서 가장 핫한 가수인 방탄소년단 PTD LA 콘서트 엔딩에서 리더 RM(남준)이 한 말이다.


 세계의 무대에서 최고의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그룹의 리더인 RM에게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매일 치열한 하루가 있고 의심이 있으며 불안이 있다. 스물세 살 스물다섯 살 보다 오히려 서른이라는 숫자에 가까워진 나이를 앞두고 대중 앞에 서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는 나는 그 고뇌를 어림잡아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남준 님...... 지금도 충분히 청춘이신데요!!!)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에 적당한 나이는 몇 살일까?

무언가를 새로 배우고 도전하고 시작하는 좋은 나이는 몇 살일까?


나의 어린 동기들아 잘 지내고 있니?

너희들도 어느새 나이 많고 결혼까지 했지만 너희와 같은 꿈을 이루겠다던 아주 나이 많은 언니(누나)의 나이가 됐겠구나.

서른 살이 넘은 지금 너희 마음은 그때와 많이 다르니?

오히려 스무몇 살 때보다 더 청춘이진 않니?


모두 원하는 꿈을 이루었길 바라!

혹시 그렇지 못했더라도 우리 읽고 쓰고 운동도 하면서 뭐라도 하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이지만 우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들려주고 싶은 말이 참 많아서 같은 꿈을 꾼 거니까.


언니(누나)는 너희보다 먼저 사십을 맞이하겠지만 그때처럼 또 배우고 도전하며 지내볼게!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을 살고 있는 지금, 우리 청춘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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