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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Dec 07. 2021

행복하냐고 묻지 말아요

육아로 인한 행복과 나 자신의 행복은 별개 아니었던가요......?




아들도 잠들고 남편도 잔다.
하루 종일 육아에 지친 나는 이 시간이 되면 한 10년씩 폭삭 늙은 기분이다.

몸도 마음도 다 늙고 늙어서 쭈글쭈글 겉가죽만 남은 텅텅 빈 공허한 기분.


행복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행복? 그게 대체 뭔데! 따지듯 묻지 않고 어, 맞아. 나 행복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거, 그 행복이랑 다르게 기분이 개똥벌레 같을 때가 아주 자주 이따금 종종 든다.

이건 그냥 나라는 사람이 생겨먹은 모양새가 이런 모양이라 그런 것 같다.




결혼 후 3년을 조용히 살았다.

내가 원하지 않는 소리는 듣지 않으면 됐다.


나는 집에서 tv를 잘 켜지 않는다. 그게 티브이를 즐겨보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했는데 아이를 낳고 알았다. 나는 소리에 굉장히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이었다. 사람마다 조금 더 예민한 감각이 있겠지만 나는 그게 소리였다. 

그렇게 소리에 예민한 내가 아이를 키우니, 아이의 징징거리는 소리를 듣다 보면 정말로 정말로 정말!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다.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 울음소리에 나는 영향을 많이 받는다. 

휴, 내가 이렇다는 걸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알았다.


아이가 배앓이가 심해, 신기하게도 어제와 똑같은 시간만 되면 거의 3시간을 쉬지 않고 울었었는데, 조리원서부터 기미가 보이던 산후우울증이 그때부터 제대로 터졌던 것 같다. 난 매일 같은 시간, 쉬지 않고 악을 쓰며 짧게는 2시간, 길게는 3시간을 울어대는 아이를 안고 혼자 오밤중을 견뎌냈다. 그때 남편은 가장 바쁜 시즌을 보내고 있었고 평균 새벽 1-2시 퇴근이었다.

남편이 그나마 일찍 왔을 때, 아이를 남편 손에 던지듯 넘기며 나는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 이불을 꽁꽁 둘러싸고 귀를 막았다. 아이의 그 울음소리가 엄마인 나는 못 견디게 무서웠다. 그리고 그런 내가 끔찍했다. 싫었다. 나를 잘 몰랐었으니까.


(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비로소 나에 대해서 새롭게 새삼 알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내 본성, 내가 극한의 상황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내 인내심, 내 체력, 내가 원하는 삶, 내가 좋아하는 환경, 사람, 내가 생각하는 부모 모습 등등등

아무튼 아이는 나 스스로를 제대로 다시 알게 해 주기 위해 내게 온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나에 대해 삼십몇년 동안 잘 숨기고 살았거나 몰랐던 모습을 육아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알게 되었다.)




결혼을 앞둔 친구가 물었다. 

정말 다음 생엔 혼자 살 거야? 난 너 보고 결혼 결심한 건데?


응, 난 혼자 살 거야. 나라는 사람은 그래야 해.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 곁을 내주고 자식을 낳고 키울 만한 그릇이 안돼.
나는 그냥 나 혼자 살 거야. 
그리고, 친구야. 지금도 늦지 않았어. 결혼 안 하고 살아도 돼.



그래도,

지금 와서 다른 사람이랑 다시 결혼할 수 있다면 그럴래?라고 묻는다면

아니, 그럼 내 아이를 못 만나. 그렇게 말한다. (결혼을 안 하는 선택은 가능하지만 다시 할 수 있다는 선택은...)


이 한마디가 바로,

위에서 말한 것처럼 행복하냐고 묻는 질문에, 어. 나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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