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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Mar 25. 2022

시어머니가 내 스케줄을 물으셨다.

전업주부의 하루


고부관계에 대한 환상이 있었을까. 결혼하면 시어머니와 함께 쇼핑도 다니고 맛집도 다니고 그렇게 살 줄 알았다.


요즘 말로 현타라고 하나? 뼈 맞았다고 하나?


결혼 10년이 가까워지는 나는 그건 다 환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서글프거나 억울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인스타그램 속에만 있었고, 딸 같은 며느리라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며느리는 며느리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이고, 손님이다. 딸이 될 순 없지.)




살가운 딸이 아니라 내 부모한테도 잘 안 하는 안부전화를 의무감으로 횟수를 채워가며 했지만 의미 없다는 걸 깨닫고 의도적으로 줄였다. 모든 관계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노력만 필요한 관계는 결국 불편한 관계니까 그냥 내 마음 편한 대로 도리 껏 하자고 다짐했다.


코로나 확진자 50만 명의 시국에 어머님의 안부가 궁금해 오랜만에 전화를 드렸고, 통화 끝에 마주한 씁쓸하고 기분 나쁜 감정에 헛웃음이 나왔다.


넌 매일 뭐하냐


어머님께서 수화기 너머로 건넨 저 질문에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는데, 저 여섯 글자에서 칼을 느끼는 건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갑자기 훅 들어오는 무례한 질문 앞에서 (원래 무례한 질문은 갑자기 훅 들어온다) 바보처럼 헤헤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하고 나니 그야말로 루저 아닌가.


‘LOSER 외톨이 센 척하는 겁쟁이’


어머니 저 매일 너무 바빠요. 왜 말을 못 하니


그것보다,

그런 건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정말 궁금하셔서 그런 거예요? 그럼 다 말해드릴게요. 잇힝^^


하지 못한 나 자신에 전화를 끊고 두고두고 화가 난다.


무례한 의도 앞에서 웃으며 대처하는 게 세련된 방법인지는 몰라도, 난 무례함 앞에서는 또박또박 그 무례함을 깨닫도록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무례함 앞에서도 내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분위기를 깨지 않고 (갑분싸 금지) 특히 어른들 말엔 토를 달지 않는 것이라 배운 옛날 사람이라 되고 싶은 사람과 실제 내 모습엔 늘 거리감이 있다. 그리고 한 템포 늦게 아!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를 뿐. 


어머님, 다음엔 제가 다 알려드릴게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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