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 난 후 좋은 점은 친구가 없어도 괜찮다는 거다.
눈치가 빠르고 예민한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 관계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누가 나에게 배타적인지 누가 나에게 호의적인지 느껴졌으므로 처음엔 그 무리에 끼어 함께 노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안달했고 훗날엔 그 관계에 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다행인 건 무리 속에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더 다행인 건 혼자 있어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라 새 학기가 시작되거나 전학을 가거나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 새로 만들어야 할 친구라는 관계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래서였을까.
쉽게 깊어지긴 힘들어도 한 번 깊어진 관계의 친구는 아주 오랜 시간을 곁에 둘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다들 각자의 사정과 각자의 가정을 꾸려 사느라 자주 만나지 못하고 자주 연락하진 못하지만.
대학 시절 싸이월드가 엄청난 유행을 했을 때 대학 동기의 일촌수를 보고 깜짝 놀랐는데 '어떻게 이렇게 친구가 많을 수 있지?' 궁금했다. 발이 넓고 만나는 얼굴이 아주 다양했고 그에 비해 나는 누구나 예상 가능한 지인들로만 이루어진 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내 스무 살 그 무렵엔 인간관계 또한 스펙이라고 떠들던 시대여서 친구가 별로 없는 나는 문제가 좀 있구나 싶었다.
나와 같은 세대가 아닌 엄마는 내게 항상 어떤 관계나 모임에 소속되기를 추천하셨는데 조리원에 들어갈 때도 같이 애 낳아 키우는 엄마들과 친해지면 좋다, 어린이집을 보낼 땐 함께 등 하원 시키는 엄마들, 그리고 앞으로 보낼 초등학교에서는 반 엄마들과의 관계 생성 및 유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가끔 말씀하신다.
물론 맞는 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 같다.
아는 사람이 많다는 건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우리는 품앗이 육아의 득을 볼 수 있는 세대가 아니고, 대개 어떤 목표나 목적을 앞에 두고 나누는 친분은 그 목표나 목적이 달성 혹은 상실했을 때 관계 역시도 끝나기 때문이다.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20대,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러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 기울이고 영혼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
김영하 작가님 책을 읽다가 엄청나게 공감을 해 밑줄을 좍좍 긋고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내리쳤던 기억이 있어 가져와본다.
마흔이 코앞인 나는,
친구가 없어도 창피하지 않으며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롭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없으면, 영혼이 풍요롭지 않으면 괜찮지 않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아, 그래도 깊은 관계의 친구 한두 명은 인생에서 꼭 필요한 존재다. 이런 친구들은 삶의 주기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 같은 느낌이다.
*본문에 인용한 책
『말하다』김영하.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