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집의 기억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혜 Jan 07. 2022

장가 안 간 아들을 위해 사 둔 집

집의 기억

내 나이와 비슷한 두 번째 우리의 집은 복도식 아파트였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푸른 산이 뻥 뚫린 복도를 통해 바로 보였는데 집에 오는 사람들마다 그 풍경을 칭찬했다. 그 산은 나의 것이 아니었음에도 나의 것인 듯했다. 


 우리가 집을 처음 보러 왔을 때 집주인은 세를 놓기 위해 부엌을 제외한 곳을 손보고 있었는데 도배, 장판, 화장실, 샤시까지 모두 새로 했다. 복도식 아파트라 복도와 맞닿은 방은 단열작업까지 한번 더 확실하게 해 뒀다며 이 집의 진짜 주인아저씨는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주인아줌마, 그러나 늘 사모님이라 칭했던 분은 인상이 좋으셨고 젊은 사람들 취향이 본인들보다 낫지 않겠냐며 도배를 원하는 대로 하라며 샘플을 넘겨주셨다. 우린 우리의 집이 아님에도 우리가 원하는 도배지로 집을 꾸밀 수 있었다.


 그 집은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아들을 위해 사 둔 집이라며 언제 장가갈지 모르니 오래오래 살아달라 하셨다. 나는 처음부터 나와 시작이 다른 사람들, 훗날 이 집의 주인이 될 이름 모를 신혼부부, 그게 내심 부러웠다.







 이사를 하고 그 첫 달에 아이(동동이)가 생겼다. 계획된 임신이었지만 계획한다고 임신이 쉽게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런 임신이 이사를 하고 바로 되자 우리의 두 번째 집은 지인들에게 후한 점수를 받았다. "집이 맞나 보다, 터가 좋은가보다, 그래 그런 집이 있다더라" 했고 나 역시도 좋았다. 그곳에서 10개월 아이를 품으며 참 좋았다. 남편과 손잡고 산책도 다니고 혼자서도 이곳저곳 참 많이 돌아다녔다.




 변화가 없을 것 같은 순간이었지만 아이를 낳고 나는 지독한 산후 우울증을 겪었다. 남편의 일은 특히 바쁜 시즌이 있었는데 아이를 처음 안고 집에 왔을 그 무렵이 특히 그랬다. 어느 날은 12시 이전, 무수한 어떤 날은 새벽 2시이기도 했다. 아침에 현관문을 닫고 나가는 남편이 돌아오기 전까지 저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 문 같았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 감옥에 갇혀 매일 아이와 함께 울고 남편이 돌아오면 남은 눈물을 다 끌어 모아 쏟아내고 아픈 말들까지 토해냈다. 너는 왜 바뀐 게 하나도 없는지, 왜 나만 이렇게 된 건지. 


 그런 날들 속에서 남편은 나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친정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밥이라도 제 때 챙겨 먹고살 수 있지 않겠냐며 그야말로 남편이 계속 쌓을 수 있는 많은 커리어를 포기하고 발령을 얻어냈다.


 우리의 두 번째 집은 1년을 살고 복비를 물고 급하게 떠나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의 세 번째 전셋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