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지심? 부끄러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 친구들 운동화는 거의 모두 스프리스 올스타였다.
나는 운동화나 옷이나 가방이나, 그땐 별 관심이 없었다. 나를 꾸민다는 행위는 나랑 좀 거리가 있었다. 유행이 뭔지도 모르고 메이커가 뭐고 보세가 뭔지, 정말 뭣도 모르는 상태였던 것 같다. 간단히 말해 나이키도 아디다스도 모르는 상태였다고나 할까.
나는 그저 학교를, 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공부하러 다니는 곳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때나 지금이나 깊이있게 생각하기가 매우 부족한 편이다!)
뭘 몰랐을 땐 정말 뭘 몰라서 아무 생각 없이 이거 입고 저거 신고 다녔는데, 문득 어느 날은 친구들 발에 신겨진 그 색색의 스니커즈가 눈에 들어왔다.
'어? 저거 우리 아파트 상가에서 파는 운동화잖아. 예쁘네!'
나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집 앞 상가 신발가게에서 친구들이 신고 다니는 스니커즈와 똑같이 생긴 새빨간 운동화를 샀다.(소녀여......!)
나는 몰랐다.
친구들의 운동화 발꿈치엔 all star, 내 운동화 발꿈치엔 two star라고 쓰여있는 것을, 그 차이점을.
체육대회 날,
우리 반 실장은 달리기를 참 잘했고 우리 반 부실장인 나(별 존재감 없음 주의)는 실장 옆에서 선생님 말씀을 참 잘 들었다.
(우린 같은 아파트 옆 동이었고, 아침마다 학교를 같이 갔고, 친했다. 난 이 친구의 성격이 너무나 좋고 부러웠다. 우리 둘의 조합은 요즘 말로 인싸와 아싸의 조합이었는데, 이 점을 말하는 건 이 친구는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 그저 착했다는 것. 미리 알려드립니다.)
실장인 내 친구는 반대표로 계주를 나갔고,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뛰겠다며 네 운동화가 가벼우면 바꿔 신자고 했다. 그때 난 당연히 아무 생각 없이 운동화를 바꿔 신었다. 가벼운 내 운동화를 신고 잘 뛰어 우리반이 이기면 좋은 일이니까.
바꿔 신은 실장의 운동화는 새하얀 스프리스, 내 운동화는 색깔만 다른(게 아니었던) 빨간색 짝퉁 스프리스 운동화였다. 같은 운동화인데 무게가 뭐 다를까. 나는 응원하면서 생각했다. 뭐가 다를까. 뭐가 다를까. 뭔가 다르다. 다르다. 다르네?
그때 난 느꼈다. 부끄러움을.
저기 1등으로 달리고 있는 실장이 신고 있는 저 가벼운 운동화가 내 것이 아니고, 여기 무거운 이 운동화가 내 것이면 좋겠다고. 이걸 신고 있으니 저 운동화를 신고 있던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뭔가 달라도 한참 다른 것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어떤 순간의 한 장면이다.
나는 그게 뭐라고 부끄러웠을까.
나는 그게 뭐라고 부러웠을까.
모를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알고 나면 새삼 보이는 것들이 많다.
나는 그럼에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게 뭐 어때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넌 너고 난 나고. 내가 못 가진 건 못 가진 거고 그뿐!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는 내 아이 운동화는 나이키 사줄 거야.
그래서 그랬을까.
아이가 없었을 때.
아이가 생겨 뱃속에 품었을 때.
그럼에도 여전히 남편한테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
내가 말하는 나이키 운동화(아는 것 중 이게 최고라는 것도 참...^^)라는 이미지에 열여덟 소녀가 느낀 부끄러움의 서사가 너무 진하게 새겨져 버렸다. (물론 남편은 요즘 애들은 구찌 이런거 신던데? 했지만... 그건 못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