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혜 Dec 03. 2021

나이키 운동화 사주는 엄마

자격지심? 부끄러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 친구들 운동화는 거의 모두 스프리스 올스타였다.


나는 운동화나 옷이나 가방이나, 그땐 별 관심이 없었다. 나를 꾸민다는 행위는 나랑 좀 거리가 있었다. 유행이 뭔지도 모르고 메이커가 뭐고 보세가 뭔지, 정말 뭣도 모르는 상태였던 것 같다. 간단히 말해 나이키도 아디다스도 모르는 상태였다고나 할까.

나는 그저 학교를, 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공부하러 다니는 곳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때나 지금이나 깊이있게 생각하기가 매우 부족한 편이다!)

뭘 몰랐을 땐 정말 뭘 몰라서 아무 생각 없이 이거 입고 저거 신고 다녔는데, 문득 어느 날은 친구들 발에 신겨진 그 색색의 스니커즈가 눈에 들어왔다. 

'어? 저거 우리 아파트 상가에서 파는 운동화잖아. 예쁘네!'

나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집 앞 상가 신발가게에서 친구들이 신고 다니는 스니커즈와 똑같이 생긴 새빨간 운동화를 샀다.(소녀여......!)


나는 몰랐다.
친구들의 운동화 발꿈치엔 all star, 내 운동화 발꿈치엔 two star라고 쓰여있는 것을, 그 차이점을. 





체육대회 날,
우리 반 실장은 달리기를 참 잘했고 우리 반 부실장인 나(별 존재감 없음 주의)는 실장 옆에서 선생님 말씀을 참 잘 들었다.

(우린 같은 아파트 옆 동이었고, 아침마다 학교를 같이 갔고, 친했다. 난 이 친구의 성격이 너무나 좋고 부러웠다. 우리 둘의 조합은 요즘 말로 인싸와 아싸의 조합이었는데, 이 점을 말하는 건 이 친구는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 
그저 착했다는 것. 미리 알려드립니다.)


실장인 내 친구는 반대표로 계주를 나갔고,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뛰겠다며 네 운동화가 가벼우면 바꿔 신자고 했다. 그때 난 당연히 아무 생각 없이 운동화를 바꿔 신었다. 가벼운 내 운동화를 신고 잘 뛰어 우리반이 이기면 좋은 일이니까. 


바꿔 신은 실장의 운동화는 새하얀 스프리스, 내 운동화는 색깔만 다른(게 아니었던) 빨간색 짝퉁 스프리스 운동화였다. 같은 운동화인데 무게가 뭐 다를까. 나는 응원하면서 생각했다. 뭐가 다를까. 뭐가 다를까. 뭔가 다르다. 다르다. 다르네?

그때 난 느꼈다. 부끄러움을. 
저기 1등으로 달리고 있는 실장이 신고 있는 저 가벼운 운동화가 내 것이 아니고, 여기 무거운 이 운동화가 내 것이면 좋겠다고. 이걸 신고 있으니 저 운동화를 신고 있던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뭔가 달라도 한참 다른 것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어떤 순간의 한 장면이다.

나는 그게 뭐라고 부끄러웠을까.
나는 그게 뭐라고 부러웠을까.

모를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알고 나면 새삼 보이는 것들이 많다.


나는 그럼에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게 뭐 어때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넌 너고 난 나고. 내가 못 가진 건 못 가진 거고 그뿐!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는 내 아이 운동화는 나이키 사줄 거야.



그래서 그랬을까. 

아이가 없었을 때.

아이가 생겨 뱃속에 품었을 때.

그럼에도 여전히 남편한테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


내가 말하는 나이키 운동화(아는 것 중 이게 최고라는 것도 참...^^)라는 이미지에 열여덟 소녀가 느낀 부끄러움의 서사가 너무 진하게 새겨져 버렸다. (물론 남편은 요즘 애들은 구찌 이런거 신던데? 했지만... 그건 못사줘......)




매거진의 이전글 다 잘할 건데 왜 못해도 된다고 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