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멋진고먐미 Jan 26. 2024

눈물이 주룩주룩 퇴사 면담
─ 팀장님 편(3)

갑자기 아무 말 대잔치가 되어 버린 퇴사 면담 : 수요 없는 공급 편

[지난 편]



'자꾸 지각을 하게 되니 회사를 그만두겠다'라는 나의 선언을 들은 팀장님의 멍하고 불편한 표정을 보고서야 '아차' 싶었다. 좀 더 멋지고 그럴듯한 말을 했어야 했는데. 아아 최멋고여, 그대는 어째서 말하기 전에 생각하지 않고 항상 말하고 나서 생각하는가?


이대로 '이렇게 지각을 할 바엔 퇴사를 하겠어요!'의 오명을 뒤집어쓴 채 나갈 순 없다. 아무리 남들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살겠다고 결심했을지언정 이렇게까지 모양 빠지길 원하지는 않는다고.


좀 더 볼품 있고 의식 있는 인간처럼 보이는 이유를 대야 한다는 뒤늦게 생각을 하면서, 나는 다음 말을 이어 갔다. 말주변도 없는 녀석이 꽤나 최선을 다한 셈이다.






누가누가 '아무 말'을 잘하나, 진검승부

[제2탄] 아무도 내가 하는 일을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단 말이야


"...제가 올해부터 교육 업무를 맡았잖아요."


2023년 연초에는 대대적인 업무 조정이 있었다. 약 4년 넘게 쭉 맡아 오던 행사 업무를 뒤로 하고 나는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동안 행사 업무도 재미있게 했고 꽤나 성과를 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아무래도 같은 업무를 오래 하니 지겨웠다. 그런 찰나에 교육을 전담하게 되니 반가운 마음이 컸다.


입사하기 전부터 나는 교육 업무를 담당하고 싶었다. 교육은 우리 직업의 전문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핵심 업무였을 뿐 아니라, 서비스 대상자들 입장에서도 (비록 그들이 인지 못할지라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생 때부터 발표하는 걸 좋아했던 나로서는 적성 면에서도 금상첨화라고 여겼다.


교육을 맡으면서 나는 강지훈 팀장님 아래로 팀을 이동하게 되었다. 강팀장님은 10년이나 교육을 맡아 오신 만큼 교육 업무에 대해 큰 애착을 갖고 있는 분이었다. 나는 강팀장님의 지원을 받으며 정말 열심히 일했다.



"정말 잘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유튜브도 하고 퀴즈 이벤트도 하고 서포터즈도 했죠. 심지어 동영상 강의까지 만들겠다고 자진했고요."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나는 올해에 이 모든 일을 자진해서 벌였다. 썩 인기가 좋지 않았던 교육의 인지도와 매력도를 높여보고 싶었다. 교육의 형식도 바꿔 보고, 내용도 바꿔 보고, 홍보 방식도 바꿔 보고. 어떻게든 서비스 대상에게 잘 먹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애썼다.


'교육'이라는 영역을 아주 크게 키우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서비스 대상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들어주길 바랐다'다들 잘 몰라서 그렇지 이건 여러분께 꼭 필요한 내용이에요.'


스스로 불러온 업무량의 재앙에 짓눌려 추가근무도 밥 먹듯 했다. 참고로 우리 회사는 몇 년 전부터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추가근무 수당을 주지 않는다. 공짜로 추가근무를 하면서 나는 입으로는 '블랙기업 같으니라고.' 하고 불평불만을 했지만, 사실 진심으로 불만이 있지는 않았다. 회사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내가 자진해서 벌인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누가 하라 했나? 내가 한다 했지. 내가 한다 했는데 쟤(회사)가 나한테 돈을 왜 주겠어. 이렇게 늦게까지 집에 못 가는 건 다 내 입방맹이 때문인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이건 노예 마인드인가, 주인 마인드인가? 헷갈리는군.





"그런데 10월부터 자꾸 일이 밀리기 시작했어요.
동영상 강의를 어서 만들어야 하는데 도저히 진도가 나가질 않는 거예요."



처음에는 '내가 너무 지쳐서 여유가 없는 것인가, 영상 편집을 처음 해 보니까 부담스러워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확실히 재미있는 동영상을 만드는 일은 도전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 교육 내용을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익히고 활용하게 된다 할지언정,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을 것 같다는 것.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어느샌가 우리의 교육 서비스가 그다지 쓸모없다고, 사람들에게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나조차도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교육에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모으려고 동영상을 흥미진진하게 만들다니. 나는 그런 거짓부렁자 같은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을 더욱 행복하고 지혜롭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진심으로 믿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싶었다. 진실한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점점 더 일에서 멀어져 갔다.


"내가 하는 일이 '수요 없는 공급'이라고 인지하니까 도저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사람들이 원하는 건 이게 아닌데, 하고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팀장님은 '수요 없는 공급'이라는 말에 움찔하며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교육을 오래 담당했던 만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리라.


"맞아, 우리 교육을 사람들이 원하는 건 아니지. 하지만 어쩌겠어.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지. 아무도 안 원한다고 해서 교육을 안 할 수는 없는 거잖아."


맞는 말이다. '이 직업'으로 살고 있는 이상 교육 업무를 안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 직업이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는 무가치합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리고 슬프게도 나는 마음속으로 이 직업이 무가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가 교육을 해야만 회사 사람들에게 우리 부서의 존재의 당위성을 내세울 수 있어. 안 그러면 다들 '너넨 도대체 뭘 하는데? 하는 일도 없잖아.' 하면서 무시한다고."라고, 팀장님은 조금 기운 없으면서도 결연한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강지훈 팀장님은 우리 부서에서 교육 업무를 처음으로 도입해 펼치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대학 전공수업에서 배운 대로 이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으면서. 줄곧 천덕꾸러기였던 우리 부서는 회사의 '강자들'에게 아마 그때 처음으로 인정을 받았으리라.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을 능수능란하게 드나들며 교육하는 그에게 힘 있는 자들의 찬사가 쏟아졌을 것이다. "와, 너희 부서에서 이런 것도 해? 몰랐네!"


그런가. 우리는 그저 '무시받지 않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가. 이 모든 수고와 노력이 고작 '무시받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었던가.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팀장님의 말을 듣자 몹시 슬퍼져서 눈물을 주룩주룩 쏟기 시작했다. 3편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글의 제목과 일치하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물이 주룩주룩 퇴사 면담 ─ 팀장님 편(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