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Pianiste Virtuosité en 60 Exercises
도미파솔라솔파미 레파솔라시라솔파 미솔라시도시라솔……
문자로만 읽어도 어질어질한 이 선율은 하농 1번. 피아노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학생들이 기계적으로 연습하는 곡이다. 우리나라에서 피아노를 잠깐이라도 배워본 사람이라면 하농을 한 번쯤은 쳐봤을 것이다.
바이엘, 체르니와 함께 기초 연습곡 3대 천왕으로 꼽히는 하농. 특유의 딱딱하고 재미없는 멜로디와, 어렸을 적 하기 싫은 마음을 꾹 참고 억지로 연습해야 했던 기억들로 인해 하농은 그리 달갑지 않은 존재로 자리 잡은 듯하다.
오늘은 피아노 전공자의 입장에서 하농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하농은 무슨 뜻일까?
원어 제목은 <Le Pianiste Virtuosité en 60 Exercises>, 해석하면 명 피아니스트를 위한 60개의 연습곡이다. 처음부터 하농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연습곡은 어쩌다가 하농으로 불리게 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이 연습곡을 작곡한 작곡가 Charles Louis Hanon (1819~1900)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정학한 발음은 하농보다 아농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하농은 어린 시절 피아노와 작곡, 오르간을 배웠고, 로마에 위치한 폰티피칼 상트 세실 음악원에 교수로 재직할 때 <하농>을 작곡했다고 한다.
<하농>에는 하농이 직접 쓴 서문이 있다. 그 글에 따르면 하농은 번호가 붙은 각 연습곡의 연주시간을 1분 정도로 보고, 60곡 전부를 연주하는 데 약 1시간 정도가 걸린다며 매일 반복해서 연습하는 것을 추천했다. 또한, 학생뿐만 아니라 연습 시간이 부족한 피아니스트나 피아노 교사도 하루에 두세 시간 정도 연습하면 기량을 유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농 굳이 배울 필요가 있나요??
사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하농을 둘러싼 논쟁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는 그동안 하농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던 터라, 소위 ‘제가 전공한 사람이어서 아는데 하농 칠 필요 없습니다…’라든가 ‘요새 외국에서는 하농 도움 안된다고 말 많음… 한국이라서 전통적으로 시키는 것일 뿐임.’ 같은 류의 글을 보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나도 전공자로서 내 의견을 조심스럽게 피력해 보도록 하겠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고, 자신한테 맞는 연습곡이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면, 무조건 하농을 쳐봐야 한다. 그것도 60곡 전곡을 최대한 배우는 것이 좋다. 40번대 이후로는 전공생들도 치기 어려워하는 곡들이 꽤 있을 정도로 난이도 분배가 체계적으로 되어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농은 손가락의 힘과 독립성도 길러주지만, 무엇보다도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는 뇌의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만약 60곡 전부를 소화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면 웬만한 테크닉이나 기술은 다 마스터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피아노를 배운 지 얼마 안 되었거나 나이가 어린 학생의 경우에는 1~30번대를, 피아노를 높은 수준으로 잘 치고 싶은 사람, 또는 전공생의 경우에는 40~60번대를 충분히 배우고 익히는 것을 진심으로 추천한다.
전공해도 계속 따라붙는 애나벨…이 아니고 하농
하농은 예중, 예고 입시곡에도 포함되어 있다. 예중은 스케일 (39번) 전곡 중 무작위 추첨, 예고는 스케일과 아르페지오 (41번) 무작위 추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조성이 뽑힐지 모르기 때문에, 입시 준비기간 동안에는 어떤 조성이든 능숙하게 칠 수 있게끔 훈련하곤 한다. 피아노과 학생들은 과 특성상 예중 예고 두 번의 입시를 거치면서 스케일과 아르페지오 전체를 머릿속에 기본으로 탑재하고 다니게 된다.
BUT… 입시가 끝났다고 하농이 떠나 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다닌 예원학교에서는 한 학기에 실기시험을 두 번 봤다. 일반적인 실기시험 외에도 기초실기시험이라는 시험이 하나 더 있었다. 기초실기시험은 하농 한곡과 소품 한 두곡을 쳐야 하는, 이름 그대로 기초를 평가하는 시험이었다. 점수나 등수가 매겨지는 것은 아니어서 딱히 부담되는 시험은 아니었지만, 대신 합격/불합격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만약 선생님들의 기준에 못 미치는 연주를 하면 불합격을 받고 재시험을 일주일 뒤에 또 봐야 하는, 생각보다 스릴 있는(?) 시험이었다.
시험곡으로 쳐야 했던 하농은 39번 (스케일), 41번 (아르페지오), 42번 (감 7화음 아르페지오) , 56번 (분산 옥타브 음계)이었다. 39번, 41번은 무척 기본적인 연습곡이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배워왔기에 그리 어렵진 않았다. 42번은 연주하기 불편한 연습곡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할만했다.
문제는 56번이었다. 56번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멈추지 않고 연주해내야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완성하기까지 3개월 정도 걸린 기억이 있다.
이 곡은 전공생 사이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HELL 난이도 연습곡이다. 연주하다 보면 팔이 서서히 굳고 근육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찾아오는데,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해야 하며 소리 톤 또한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나는 방학 때부터 느린 속도로 이 곡을 완주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불필요한 힘이 팔이나 어깨에 들어가지 않게 신경 쓰면서, 그리고 소리는 선명하고 고르게 나도록 반복해서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연습을 위한 Tip
딱 한 가지 피해야 하는 연습방법이 있다. 악보에 있는 음들을 기계적으로 따라 치기만 한다거나, 자신감이 생겼다고 빠른 속도로 속주하면 절대 안 된다!!
손모양은 으레 달걀 쥔 손모양 이야기를 하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건반에 다섯 손가락을 갖다 댄 모양이면 충분하다. 다만 그 자연스러운 모양이 유지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손가락에 힘이 없을 경우 소리를 선명하게 내는 것이 힘들어 손이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거나 양쪽 가장자리로 기울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한 음 한 음 충실히 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러다 보면 시끄럽고 듣기 싫은 소리가 난다. (단숨에 연습 욕구를 떨어뜨리는 주범 중 하나다.) 선명하고 알찬 소리와 레가토, 음악적 자연스러움까지 동시에 소화할 수 있다면 하농으로부터 뽑아낼 수 있는 단물은 다 뽑아냈다고 볼 수 있겠다.
속도는 적당히 느린 속도에서 개인 차에 따라 조금씩 당기거나 늦추는 것을 추천한다. 자신이 테크닉적으로 충분히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농은 기계적으로 속주한다고 해서 도움 되지 않는다. 잘 되더라도 적당히 느린 속도로 손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 리스트 초철기교 같은 곡을 엄청난 속도로 몰아친다면 멋있어 보이는 효과라도 있겠지만, 하농을 속주할 필요는 딱히……없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자신들의 주종목만 하루종일 훈련하지 않는다.
빙상 종목 선수들이 데드리프트를 하거나, 야구선수들이 하체단련을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것처럼,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서는 작품뿐만 아니라 기초연습을 탄탄히 해야 한다.
그렇다고 기초 연습을 하루종일 하라는 뜻은 아니다.
1시간 이내로만 적당히, 그리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연습곡과 연습 방법으로 연습하길 바란다.
cover image : The Keynote by William Arthur Chase (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