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걸린 후로 과거 회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글도 잘 읽고, 잘 쓰고, 공부도 잘했는데.
그 시절의 나는 죽었다.
그리 오래 살지도 않은 내가 내 인생의 리즈시절을 회상하는 꼴이라니, 참으로 우습다. 리즈시절이 벌써 끝났다고 생각하니 앞으로의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고, 모든 의욕이 사라진다.
내가 나의 몰락을 지켜보는 것도 고통이지만, 더 고통스러운 것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평소에 잘하던 것을 못하고, 약간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는 내 모습을 보며 주변인들은 황당해했고, 답답해했다. 전공하고 있던 피아노도 갑자기 잘 못 치게 되면서 전공선생님들 또한 어리둥절해하셨다. 그저 애가 연습을 안 한 거겠지,라고 생각하신 한 선생님은 나를 혼내기도 하셨다. 연습을 왜 안 하냐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학교 성적도 보란 듯이 곤두박질쳤다. 학과 성적도 떨어졌지만, 제일 심각한 건 피아노 실기 성적이었다. 나는 거의 꼴찌 수준의 등수를 받았고, 그 당황스러움은 학교 전공선생님께도 번졌다. 그 당시는 나도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몰랐기에, 이유를 묻는 선생님께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잘하던 것들을, 또는 평상시에 하던 것들을 갑자기 못하게 됐는데, 이유를 모른다. 10년 넘게 전공한 피아노도 갑자기 형편없이 치고, 단순한 암기 하나 못하는 데다가 adhd가 의심될 정도로 집중을 못하고 글도 못 읽는다. 이유는 모른다.
이유를 안 지금은, 죽어버린 과거의 나를 찾으려는 짓을 관뒀다. 그 시절의 나는 끝났고, 이제 새로운 나의 시작이다. 바보가 되고 무능력해진 나라도, 천천히 한발 한 발을 내딛으며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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