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을 조율하며

홍미야, 이젠 널 조율해 볼게

by 클로드

어제 그 아이가 찾아왔다. 홍미.




홍미는 지난달 글쓰기 모임 중 감정에 이름 붙이기 작업에서 지은 내 감정의 이름이다.


홍미는,

감각인지 마음인지 모를 곳이 어지러울 때.

복잡한 바깥세상이 나를 잠식시키려 할 때.

손금 사이로 식은땀이 스며 나옴을 느낄 때.

정신을 붙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이 감정을 어서 벗고 싶을 때.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겉은 평온하고 싶을 때.

그때의 내 감정에 붙인 이름이다.


홍미는 공황의 전조 증상으로 불안감이 밀려올 때의 내 감정이다.




홍미로부터 많이 멀어지고 있었다. 홍미라는 이름을 붙인 뒤로는 불쑥 찾아와도, '홍미야' 하며 인정하고 쉬이 보내주었다. 심장은 두근거릴지언정 어느 정도의 미소로 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제 그 아이가 자주 내 곁을 맴돌았다.


왜 왔을까? 요가 수업에서 어려운 동작이 있었지만 중간까지만 해보고 이내 포기했다. 손발에서 순간 땀이 쫙 났다. 하지만 괜찮았다. 예전 필라테스에서의 트라우마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기억일 뿐, 마음을 흔들지는 못했다.


오후에 집에서 두 시간을 내리 앉아 PC 작업을 하면서 홍미를 느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다가 문득 피로감을 느꼈다. 머리인지 몸인지 모를 곳에 과부하가 올 것 같은 느낌. 하필 아이 학원차 도착 시간이 가까워져 급히 당이라도 채울 요량으로 초코 비스킷을 입에 넣고 후다닥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이 길을 건너는 것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건너면, 건너고 나면 아무리 급한 상황이 와도 집에 뛰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안도감과 단절시켰다.


아이를 기다리며 애써 시선을 멀리 두려고 했다. 건너편 간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떠올랐다. 과호흡을 경험한 그날 밤, 길거리에 주저앉으면서도 길 건너 간판의 글자를 붙잡듯 응시하던 그때를. 이 시선마저 놓아버리면 정말 아득한 어디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그 불안감. 그 기억이 떠올라 간판을 보는 게 괴로웠다. ‘그래, 자연을 보자’ 보행로 화단의 작은 풀잎들을 응시했다. 이름 모를 삐죽삐죽 풀잎들을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홍미를 불렀다. '왔구나, 홍미야. 네가 가는 뒷모습을 지켜볼게.'라고 말이다.


그렇게 그 시간을 풀잎을 보며 버텼고, 어느새 아이 학원 차량이 도착했다. 아이의 말랑한 손을 잡는 순간 홍미의 존재는 잊혀졌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명랑한 엄마로 돌아왔다.


그렇게 저녁 일과를 보내고 쏟아지는 피로감에 아이와 함께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는 새근새근 자는데 나는 또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낀다. 하루 종일 내 곁을 떠나지 않는 홍미를 다시 의식한 듯, 몸은 누워있는데 마음은 정처 없이 배회하고 있었다.


10살 즈음의 기억이 떠올랐다. 잘 먹어도 뭔가 허약하고 걸핏하면 두통을 호소하던 그 시절, 엄마와 함께 간 한의원에서의 이야기가 한 번씩 생각난다. 밤에는 기가 차분히 가라앉아야 하는데 낮과 마찬가지로 둥둥 떠있다고, 기가 상충되어 있다? 이런 표현을 하신 게 생각난다. 그래서 잠을 잘 못 이루는 거라고 말이다.


나는 왜 그 어린 시절부터 자려고 누워서는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의 수다를 떨었을까. 어젯밤의 그것은 감정의 들뜸이었을까 아니면 하루동안 의식한 홍미의 존재적 관성이었을까. 불 꺼놓고 누워서 핸드폰 보는 것은 절대 하지 않겠노라고 며칠 전 다시 다짐했었는데, 할 수 없이 다시 폰 화면을 켰다.


블로그에 들어가 이웃님들의 글을 읽어 내려가며 나의 생각을 쫓아냈다. 그러다 만난 글귀, '뭐든 힘 빼야 한다.' 그렇다. 나는 매사에 안 그래도 될 일에 까지 너무 힘이 들어가 있다. 힘 빼는 게 제일 어렵다. 그런데 그 글을 읽고 잘 때도 힘을 빼야겠구나 싶었다. 잡념을 떨치는 건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누워서 몸에 힘을 빼는 것은 바로 느낌이 왔다. 그렇게 난 팔다리에 힘을 빼고 스르륵 어느새 잠이 든 모양이다. (글을 써주신 이웃님, 감사합니다. 어젯밤 제게 평온을 주셨어요.)


그리고 오늘 개운하게 새 아침을 맞이했다. 어제의 홍미는 어제로 떠나보냈다. 오늘은 그 기억으로 글을 남길뿐 제법 상쾌하게 보내고 있다.


홍미를 만난 지 2년이 되어간다. 그 첫해에는 이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느라 애썼다. 병원도 가보고 심리상담도 받아보았다. 그러면서 많이 치유되었다. 작년에는 새로운 성장에 눈을 뜨며 다른 종류의 활력이 내게 생겨났다. 가끔씩 홍미를 의식할 때가 있었지만 전문적인 도움이 절실한 정도는 아니었다. 많이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홍미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대상화해보고 있다. '왔구나, 홍미야. 그래, 네가 가는 뒷모습을 지켜볼게.' 하면서 말이다.


공황발작을 경험했다는 것은 내 삶을 제법 크게 흔들어놓았다. 글쎄,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내면의 지각변동이 일어난 듯 나는 어떤 부분에서 부서지고 대신 어떤 부분에서는 새롭게 태어났다. 그 시기를 나름의 방법으로 부단히 애쓰며 보냈다. 그 덕에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도 되어가고 있다.


몇 달 전 <공황을 벗는 중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여전히 홍미의 잔상이 남아있다. 어제처럼 전혀 생뚱맞은 순간에 찾아오기도 한다. 심지어 휴직을 하고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맞으며 읽고 쓰며 성장하는 기쁨을 맛보는 요즘에도 말이다.


이제는 이렇게 해볼까 한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기보다는, 힘 빼고 홍미를 대하기로 말이다. 굳이 힘들이지 않아도 되는 일에는 느슨하게 살아볼까 한다. 상담선생님의 마지막 말씀, "보다 느슨하게 살아도 돼요." 어쩌면 내게 딱 맞는 처방을 내려주신 것 같다.


기질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조율할 수 있는 것이다. 일상에 강약을 조절하며, 삶의 리듬을 타봐야겠다. 악기의 줄이 너무 팽팽하면 오히려 제 소리를 낼 수 없다. 현이 떨릴 수 있는 적당한 정도의 긴장감이 딱 좋다.


홍미야, 이제는 너를 조율해 볼게. 우리 함께 삶을 연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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