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가 두렵지만, 무대를 열어봅니다.
이프랜드 도전기
처음부터 발표 불안증을 안고 산건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교내 방송 아나운서도 하고, 교회 성탄 행사에서 사회를 맡기도 할 정도로 스피치에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국어 시간에 일어서서 책을 읽을 때면 한 글자도 틀리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하며 또박또박 읽었고, 또한 그런 저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중학교 수업시간에 발표 불안증을 만났습니다. 한 번의 해프닝일지도 모를 그 일은, 그 후 내내 저를 따라다닙니다. 책 읽기를 시킬까 봐 수업시간에 선생님 눈을 피하고 주눅 들어있기도 했습니다. 늘 피할 궁리만 했습니다. 성인이 되어 회사에 10년 넘게 다니는 지금까지도요.
언제까지나 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피하는 게 참 괴롭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피치 수업도 듣고 낭독 연습도 하며 애써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시낭송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도 했고요.
그런 제가 어제 일생일대의 무대를 열었습니다. 혹시 SK텔레콤에서 만든 메타버스 세상인 이프랜드를 아시나요? 이곳 온라인상에서 아바타로 활동하며 밋업이라는 모임을 열고 소통의 장을 펼칩니다. 지인들이 진행하는 밋업에 여러 번 들어가 구경해 보고 한 번씩 짧은 발표를 해본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참 떨렸고, 이것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이프랜드 인플루언서인 이프렌즈 7기에 도전하였습니다. 이프렌즈가 되면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이 기획한 밋업을 열고 사람들을 초대해서 소통을 이끌어나갑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말로 남들 앞에 나서는 인플루언서에 도전하였을까요?
그 답을 한마디로 내린다면, 저를 브랜딩 하고 싶어 졌기 때문입니다. SNS에서 글을 쓰고 낭독 콘텐츠를 올리며 저의 콘텐츠를 쌓아가고 점차 브랜딩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건 참 두렵지만 제게도 자신을 알리고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가 봅니다. 그런데 한발 한발 나아갈수록 저를 가로막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스피치요. 브랜딩에서 소통은 필수인데, 말이 두려운 저는 자꾸 도전하다 주저앉고 더 멀리 가기를 주저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단을 내립니다. 아바타로 먼저 무대에 올라보기로요.
결심을 하고 나니 이프렌즈 7기로 뽑히는 것에 간절해졌습니다. 기획서를 열심히 작성하고 다른 밋업에도 들어가 보며 팔로워수를 늘려갔습니다. 이프렌즈로 선정되면 약 2달 동안 활동할 수 있으며, 다음 기수는 몇 달의 간격을 두고 뽑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도전은 바로 지금 이어야 했습니다. 3달간의 육아휴직 기간인 지금이 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합격! 이프렌즈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에 마치 입사 합격을 받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순간의 함박웃음을 손바닥으로 덮을 정도로요. 작은 환호성을 저만은 들은 것 같습니다.
이프렌즈가 되면 주 1회 정기 밋업을 엽니다. 50분의 시간 동안 10명 이상의 인원을 모아 자신의 콘텐츠로 강의를 하거나 소통을 나눠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콘텐츠에 대한 발표자료 작성, 배경음악 준비, 영상자료 확보, 콘티 및 대본 작성, 그리고 홍보까지 그야말로 1인 방송국이 되어야 합니다. 업으로나 무엇으로나 이런 삶과는 무관하게 살아왔던 제게는 상상도 못 했던 활동이었습니다.
이프랜드에서 제가 펼쳐나갈 콘텐츠는 <시>입니다. 주제별 시를 함께 낭송하고 거기서 떠오르는 생각을 나누는 참여형 밋업을 기획했습니다. 첫 밋업에서는 드라마 속 시낭송이 등장한 장면을 찾아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했고요. 준비하면서 즐거웠습니다. 딱딱한 업무 발표자료가 아닌 파스텔톤의 아련한 감성이 피어오르는 발표자료를 만들다니요! 새로운 직업을 찾은 듯 설렜습니다.
그리고 어제, 저의 첫 밋업을 열었습니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요동치며 초조해졌습니다. '도망갈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책상 위에 태블릿, 폰, PC의 대본과 음악 등을 세팅해 놓고 시작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저의 밋업을 들으러 와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과연 내가 떨지 않고, 아니 떠는 것을 들키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까' 두려움도 밀려왔습니다.
이프랜드에서는 메타버스 세상의 공간에서 뒤에 큰 화면을 띄워놓고 제 아바타는 무대에 올라 발표를 합니다. 청중들의 아바타는 자리에 앉아서 저를 바라보고요. 게임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화면이 왜 이리도 실감 나던지, 정말 무대에 오른 듯이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준비한 내용을 찬찬히 시작해 보았습니다. 저만의 목소리로 50분을 채운 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중간중간 참여자분들의 소통 시간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생각만큼 활발한 반응을 이끌 수가 없었어요. 그때의 정적이 어찌나 무겁던지요. 진땀 내며 다음을 이어가고 이어갔습니다. 중간에 영상을 감상하는 시간에 잠시 물을 가지러 주방에 갔는데요, 물을 따르면서도 '도망갈까?' 생각이 들 정도로 저는 꽤나 긴장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저는 도망치지 않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후 진행은 감사하게도 참여자분들이 활발히 생각을 나눠주셔서 보다 밝은 분위기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혼자 일방적인 발표가 아닌 서로 주거니 받거니 소통할 수 있어서 여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발표로 팽팽히 당겨진 긴장감이 소통으로 느슨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중간중간 화기애애한 대화도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저의 첫 밋업은 방송사고 없이, 주체 못 할 목소리 떨림 없이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에 저의 요청으로 하트 이모지를 날려주시는 모습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동도 받았습니다. '강연자가 받는 에너지와 감동이 이런 것일까'하고요. 칭찬과 응원의 말씀들이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덕분에 용기 얻어 앞으로 이 활동을 지속해 봐도 좋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50분의 밋업을 마친 뒤 제 얼굴은 무척이나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얼떨떨하고 후련하면서도 짜릿한 기분!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짜릿함이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희열"이었을까요?
발표 불안증을 안고 살던 제가 누가 시키지도 않은 무대를 열고 저만의 콘텐츠를 펼쳐보았습니다. 어제는 제게 잊지 못할 날이 될 겁니다. 그리고 이게 시작이 되겠지요. 이제는 도망갈까 하는 고민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첫 밋업의 희열을 간직한 채 다음 주 두 번째 밋업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으니까요.
발표 불안증은 20년 넘게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두렵지만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했고요. 그런 의무감 때문에 이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더 무겁게 느껴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의 도전은 계기가 달랐습니다. 업을 위한 의무감이 아니었습니다. 순수하게 좋아서 하는 일들로 자신을 브랜딩 하고 싶은 소망이 담긴 도전이었습니다. 두렵지만 설레는! 딱 그런 감정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매주 이렇게 이프랜드에서 무대를 열어보려 합니다. 한 번의 경험으로 긴장감이 싹 사라질리는 없겠지요. 하지만 점점 편안해질 거라 믿습니다. 그러다 보면 두려움은 줄고 즐거움이 커져있겠지요? 그러고 보면 이 과정은 행복으로 가는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다움을 만들어가고 그런 나로 세상과 소통하며 행복하고 싶은 마음이요.
90일간의 육아휴직 중 1/3 지점에 와 있습니다. 남은 기간 온라인 세상에서 제 무대를 열고 콘텐츠를 펼치며 즐거운 소통을 해보겠습니다. 혹시 아나요, 언젠가는 아바타가 아닌 현실의 제가 직접 무대에서 자유로이 말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요.
훗날의 희열을 상상해 보며, 두렵고도 설레는 이 길을 걸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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