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시작 D-1
평소와 같은 출근길이었다. 아파트 입구를 나서 커브진 내리막길을 언제나와 같은 속력으로 부드럽게 내려갔다. 문득 무언가 어색하다.
'뭐지? 아, 라디오를 안 켰구나!'
바로 라디오를 ON 했다. 이윽고 서해 바다의 은근한 파도처럼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밀려왔다.
'아! 나 드디어 휴직이 실감 나는구나.'
그렇다. 오늘은 육아휴직 전 마지막 출근 날이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는 3개월간의 육아휴직을 신청한 상태다. 휴직을 결심했을 땐 무척 신이 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날짜가 다가올수록 기분은 흐려지고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무게감만 느껴졌다. 마무리해야 할 일들, 아이의 방과 후 스케줄, 각종 학원 상담 등 몸도 마음도 바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과 아무리 휴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인사를 해도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출근길, 마치 아침 물안개를 만난 듯 휴직을 코앞에 둔 실감이 피어올랐다. 호숫가 앞에서 큰 숨을 들이마쉰 듯 편안해졌고 무지개를 만난 듯 설렜다. 그렇게 나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휴직 전 마지막 출근길에 고요히 인사를 건넸다.
'이 시간에 이 길은 이제 당분간 안녕.'
그렇게 생각하니 매일의 모든 것들이 벌써 아련했다. 내리막 커브길의 그 곡선도, 좌회전할 때의 핸들링도, 회사 앞 속도를 줄일 때의 느낌까지도. 사소한 걸음걸음들을 곱씹어보게 되었다.
회사에 도착 후 내가 가는 곳은 구내식당이다. 그곳에서 매일 아침식사를 한다. 이제 3개월간은 누가 차려주는 든든한 아침밥도 굿바이구나. 오늘의 메뉴가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맑은 감자국! 국그릇에 포슬한 감자를 듬뿍 떴다.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기 전 휴대폰과 이어폰을 세팅한다. 아침 시간에 무언가라도 공부해 보겠다며 요즘에는 경제 강의를 듣고 있다. 매일 가지는 이 루틴이 오늘따라 신성하게 느껴져 그 움직임도 슬로우 모션인 듯 느리게 흘러갔다. 뜨끈한 감자국은 영혼까지 뎁혀주는 듯했고, 눈앞의 경제 강의는 부족한 지식이 조금조금 채워지는 기쁨을 선사했다. 이것도 한동안 굿바이겠지.
이어서 사무실에 들어가 동료들에게 인사를 했다. 기분 탓이었을까, 평소보다 내 고개는 더 숙여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오랜 인사를 하듯이 말이다.
이후 업무시간은 매우 바쁘게 지나갔다. 마무리할 일들에 분주했고, 나눌 인사들에 종종 걸음으로 돌아다녔다. 업무 마무리에 속도를 가하는 자신을 보며,
'평소에도 이렇게 일했으면 훨씬 성과가 좋았겠는걸?'
하고 씁쓸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회사에서의 당분간 마지막인 하루는 마치 인생을 하루 24시간에 비유한 듯 저물어갔다. 정신없는 일과를 보내고 업무를 마무리하며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는 일련의 과정이 뜨거웠던 내가 서쪽 산 너머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3개월의 시간, 사실 그리 긴 휴직은 아니다. 벚꽃의 찰나와 같은 봄 한철의 시간이다. 돌아와도 많은 것들이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말의 힘은 제법 강하다. 인사를 나누는 눈 맞춤을 기억에 담아두게 된다. 짐을 챙겨 들고 회사 밖을 나서는 걸음 역시 평소와는 다르다. 글쎄, 무겁고도 가볍달까. 마지막의 힘이 이렇다.
그런 생각이 든다. 고작 3개월 떠나는 마지막이 이러할진대, 영영의 이별을 하는 날은 모든 것이 얼마나 짙고 깊을까. 언제가 될지 모를 훗날의 나는 어떤 모습이고 어떤 마음일까. 그때 내가 인사를 나누는 동료들은 누구일까. 차에 짐을 싣고 고개를 들어 다시 한번 회사를 바라볼 때의 마음은 무엇을 닮았을까.
퇴사. 나는 그날을 바라고 있는지 바라지 않고 있는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그 발걸음이 오늘과 닮았기를 바라본다. 애틋함. 그것이면 충분할 것 같다. 시원하고 후련하며 아쉽고 서글플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이 먼저인 애틋함이길 바라본다.
그렇게 오늘, 나는 휴직 전 회사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보냈다. 인생의 축소판을 경험한 듯 퇴사를 간접 경험한 느낌.
한동안 안녕, 애틋한 나의 회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