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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드 Mar 14. 2023

시에 대하여

이과맘, 시인을 꿈꾸다

'시'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어렵다, 지루하다, 난해하다, 재미없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혹은 별생각 없다.


이것이 시에 대한 예전의 내 생각이다. 나에게 시는 교과서에서 시인의 숨은 의도를 찾기에 바빴던 비밀 투성이의 짧은 글이었다. 때문에 일부러 찾아 감상한다던가 시를 써볼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더군다나 뼛속까지 이과라고 생각했던 나는 시, 문학,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지난해부터 시에 푹 빠졌다. 시집을 사 모으고 밤에 시를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다 발견한 주옥같은 시를 필사하고 때로는 나의 시를 써본다. 시낭송 콘텐츠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한다. 시에 관심 없던 내가 대체 어떤 계기로 시와 친해진 것일까?


수강하고 있던 온라인 수업에서 시낭송 미션을 경험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눈으로 읽을 때와 달리 나의 목소리로 읽어 내려갈 때 시의 내용이 마음에 한층 와닿음을 느꼈다. 거기에 잔잔한 음악이 더해질 때면 시는 나의 목소리를 타고 감동으로 마음에 흘러 들어온다. 그 짧은 글이 주는 의미가 결코 얕지 않고 남는 여운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시낭송을 통해 깨달았다.


그러다 글쓰기 모임에서 시인의 시를 오마주 하며 나의 이야기를 시로 써보는 작업을 해보았다. 누군가 그려놓은 밑그림에 나의 색을 입히는 기분! 그렇게 마주한 풍경화는 기존의 시와는 전혀 다른 나의 내면이 담긴 시가 되어 있었다. '아, 나도 시를 써볼 수 있겠구나! 나의 노래는 이런 느낌이구나.' 신선한 감동을 느꼈다. 마치 시인의 옆에 서본 듯 황홀하면서도 친근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오마주 시를 쓴 경험 덕분이었을까? 어느 날은 나의 시를 써보고 싶었다. 그것은 조금은 생뚱맞게도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을 읽은 뒤였다. 그 책을 읽고 있던 시기에 마침 넷플릭스로 <애나 만들기>라는 미드를 보고 있었다. 책과 드라마 모두 우리가 타인을 어떻게 정의하고 해석하는지, 객관을 뛰어넘는 주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고 때로는 무모한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깊은 연결점이 있었다. 

두 작품을 본 뒤 내 안에 주체하지 못할 꿈틀거림이 있었다. 이 느낌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데 어쩐지 시작부터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때 나의 탈출구가 바로 시였다. 한 숨을 시원하게 내뱉듯 한 편의 시를 써 내려갔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시에 담았다. 신기하지 않은가? 시도 글이고 곧 말인데, 나는 무엇 때문에 설명하기 힘든 감정과 감상을 시로는 표현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시라는 것은 차원, 입체감, 표현의 방식 측면에서 머릿속으로 정리되지 않은 무언가를 감각적으로 쏟아낼 수 있는 매개체가 아닐까?


이처럼 오마주 시, 그리고 작품을 감상한 뒤의 독후감 같은 시는 내게 시라는 언어의 색다른 매력을 체감하게 했다. 무엇을 보든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이성으로 해석하고 감성으로 받아들이기에, 인풋은 새로운 아웃풋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복사하면 그대로 나오는 복사기가 아니듯이 '나'라는 상자 안에 들어온 무언가는 '나의 창작물'이라는 새로운 무언가로 재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자연, 일상, 관계, 추억, 감상 등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인풋을 나만의 새로운 언어로 그려내는 것이다. 그래서 시는 낯선 듯 낯설지 않은가 보다. 낯선 표현이 낯설지 않은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언가가 시를 내게 데려다주었다. 그렇다, 시가 내게로 왔다. 우연에서 시작된 시와의 인연을 나는 깊게 이어가고 싶다. 시를 읽고 시를 낭송하며 시를 짓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주 오래도록 말이다. 그리고 내게 찾아온 이 즐거운 만남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향기로운 글, 시가 많은 이들에게 흩날리는 꽃비가 되길 바란다.


이제 시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


공감된다, 내 얘기 같다, 감동적이다, 어떤 면에서 심플하다, 빠르게 깨달음을 준다, 그리고 마음속 무언가를 그려내 준다.


끝으로 위에서 언급한 <타인의 해석>을 읽고 지은 자작시를 아래 소개하며 이 글을 맺는다.



나의 타인


     -클로드-


보고 싶은 대로 봤다.

믿고 싶은 대로 믿었다.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욕심으로 당신을 판단했다.

내게 이로운 방향으로 상황을 판단했다.

당신이 옳다는 게 아니라

당신이 거짓이라는 게 아니라

당신에 대한 내 판단이 옳다고 믿었다


당신을 믿은 게 아니라

당신을 본 나를 믿었다.

당신을 의심한 게 아니라

내 판단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애초에 진실은 중요치 않았다,

내 판단이 옳음을 입증할 뿐.

애초에 진실은 두렵지 않았다,

내가 틀렸음이 두려울 뿐.


홀로라도 고백할 수 있을까,

당신을 향한 나의 해석이 틀렸음을

나의 실수를

나의 오만함을


- “타인의 해석 (말콤 글래드웰)” 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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