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윤인선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추석 기간의 어느 하루 밤이었다.

산동네 가장 높은 곳, 위에서 내려다보면 둥그렇게 만을 이룬 것처럼 보이던 동네, 아랫동네의 왼쪽 골목으로 올라오면 타원형으로 형성된 맨 꼭대기 집의 담을 따라 돌아서 아랫동네의 오른쪽 골목으로 내려오게 되어있는 구조의 동네, 꼭대기 집 담벼락에 우리들은 모여 있었다. 모여서 무슨 놀이인가 했던 것 같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놀다가 타원형을 형성하고 있는 담-그 집은 담이 지붕만큼은 올라와 있었다. 담이 올라온 것인지, 집이 내려가 있는 것인지 구분할 순 없지만-에 걸터앉아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서야 알았다, 어두워진 하늘도 푸를 수 있다는 것을. 마치 바다가 내 머리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던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달이었다. 정말 너무도 둥그렇고, 노랗게 환한 달.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얼마나 서 있었는지 한참 놀던 아이들도 덩달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이들은 금방이라도 머리 위로 내려앉을 것 같은 달을 보며 와~ 와~ 탄성을 질렀다.

그 당시 얼마 전 리바이벌된 김청기 감독의 로봇태권브이가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로봇태권브이는 우리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고 있었다. 우리들은 각자 부모를 조르고 졸라 영화

볼 돈을 얻어냈다. 나는 동생들과 동네 아이들과 함께 로봇태권브이를 보기 위해서 산동네를 내려와 아랫동네를 지나 한참을 걸어 동네에서 유일했던 현대극장에 갔다. 만화영화 상영 내내 요괴들에게 로봇태권브이가 당할까 봐 조마조마했었는데, 특히 비행접시 같은 둥그런 물체가 나타나서 지상에 내려앉을 때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절정에 달해 화장실에라도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달을 바라보면서 잠깐 그런 생각을 한 것도 같다. 저 달에서 지상의 것을 빨아들이는 광선을 내려 쏘면 나도 저 달로 갈 수 있을까? 하고. 달로 가서 무엇이 되겠다거나, 무엇을 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것은 엄마의 배 속에서 둥둥 떠다니다가 좁고 긴 산도産道를 지나 자궁 밖으로 나가기 직전에 보았던 그 빛의 기억 때문에 머리 바로 위에 커다랗고 둥그렇게 떠있는 달을 보았을 때, 어쩌면 저 달을 통해 좀 더 넓은 세상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푸른 밤하늘에 떠 있는 커다랗고 둥그런 달을 보면 멈춰 서게 되고 새로운 희망으로 부풀게 된다.

얼마 전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와 한 잔 하며 주고받은 세상사를 털어버리려는 건 아니었는데 몸은 힘이 들었는지 발걸음이 터덜거렸다. 터덜거리는 발걸음을 주워 담으려고 내려다보는데 갑자기 환한 빛이 쏟아져 내렸다. 달인가 싶어 반갑게 올려다보니 가로등이었다. 요즘에는 자치제마다 경쟁하듯 각양각색의 가로등을 설치하고 있다. 밤에 도착하거나 지나가는 여행지에서 맨 처음에 나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밤을 밝히고 있는 가로등이다. 예전에는 전봇대에 아무렇게 등만 매달거나, 좀 신경을 썼다면 무뚝뚝한 회색 가로등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지자체마다 색다르다. 오밀조밀 귀여운 가로등, 멋스럽게 품위 있는 가로등, 세련된 가로등, 화려한 가로등... 다양하다. 나는 밤의 어둠과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색다른 가로등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한다. 그러나 아무리 다양한 가로등이 도시를 밝히고 있어도 거기에 따뜻한 이야깃거리는 없다. 은은한 달빛 아래서의 가슴 설레는 이야기나 전봇대 가로등 밑에서의 따뜻하고 구수한 사람 사는 냄새는 없다. 내가 시대를 앞서가지는 못할망정 따라가지도 못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촌스런 예전의 전봇대 가로등과 아무 꾸밈없이 둥그렇게 떠 있는 달을 보면 아직도 마음이 푸근하고 이야깃거리가 술술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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