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by 윤인선

특별한 볼 일이 없으면 집 안에 틀어박혀서 글 쓴답시고 컴퓨터 앞에만 웅크리고 앉아 있어서인지 온몸이 결렸다. 오늘은 안 되겠다 싶어 아침밥 겸 점심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동네 목욕탕에 갔다. 목욕탕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런 작은 목욕탕보다는 조금만 걸어가면 있는 사우나를 겸한 대형 찜방이라는 곳에 간다. 그래서 동네 목욕탕은 일요일이 아니면 항상 한산하다.

요즘에는 무엇이든 대형화가 되어서인지 목욕탕도 최첨단 시설과 고급 인테리어를 하지 않으면 손님을 끌 수가 없다. 목욕탕이라는 단어도 요즘 사람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사우나라고 하든가 찜방 또는 찜질방이라고 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직도 목욕탕이 좋다.

때도 불릴 겸 뭉친 어깨도 풀 겸 해서 열탕에 앉아 있는데 나이 든 두 여자가 서로 다정하게 손을 잡고 목욕탕에 들어왔다. 얼핏 보았을 때는 나이가 비슷한 것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한 명은 오십 대쯤 보였고, 또 한 명은 칠십 대가 훨씬 넘어 보였다. 모녀지간인가 보다 생각을 하고 눈을 감았다. 뜨거운 물속에 앉아 있다 보니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살짝 졸았는가 싶었는데 잔잔하던 탕의 물이 흔들리는 바람에 눈을 떴다. 조금 전에 나란히 손을 잡고 목욕탕에 들어온 모녀였다.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눈을 감으려는데 다시는 눈을 감을 수 없게 만드는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오십대로 보이는 딸이 두 손을 모아 물을 담아 미처 물에 담가지지 않은 엄마의 어깨에 부어주기 시작했다. 아주 소중한 무엇인가에 물을 붓 듯 천천히 했다. 한두 번 하다 말겠지 했는데 탕에서 나갈 때까지 계속했다. 아마 물에 담가지지 않은 엄마의 어깨가 식어서 상대적으로 한기를 느낄까 봐 그랬던 것 같았다. 탕 밖으로 나간 모녀는 나란히 앉아 때를 밀기 시작했다. 나이 든 딸이 더 나이 든 엄마의 몸을 씻기기 시작했다. 조금만 세게 만져도 깨질 것 같은 유리그릇을 닦듯이 그렇게 살살 닦았다. 비누를 거품내서 몸을 닦은 후 물로 씻기고 그다음에는 때를 밀었다. 엄마는 딸이 하는 대로 몸을 맡기고 드문드문 무슨 말인지를 했다. 무슨 말인지를 할 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웃음을 머금었다.

두 모녀를 보면서 문득 어릴 때가 생각났다. 한 달에 한 번 일요일에 온 식구가 나들이하듯 가던 곳이 목욕탕이었다. 8시만 넘어도 비집고 앉아 때 밀 자리도 없었던 시절이라서 우리 엄마는 항상 꼭두새벽에 우리 형제들을 깨워 앞세우고는 목욕탕에 갔다. 막내가 남자아이였는데 그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까지 우리와 여탕에 갔다. 목욕탕에 가면 먼저 자리를 잡고 대야와 바가지를 챙겨야 했다. 엄마가 첫째인 나부터 비누로 몸을 씻겨 주었다. 그다음에는 삼십 분 정도 때를 불리기 위해서 뜨거운 물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꼼짝 못 하고 뜨거운 물에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마치 지옥에 있는 시간처럼 느껴졌었다. 어느 정도 때가 불면 엄마는 첫째인 나부터 때를 밀어주었다. 때를 다 밀고 나면 자유였다. 막내까지 때를 다 밀고 나면 엄마는 나를 앞장 세워 우리를 밖으로 내보냈다. 우리는 옷을 입고 우유나 음료수를 하나씩 들고 목욕 후의 개운함을 만끽했다. 엄마의 목욕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때를 밀고 머리를 감고 우리가 목욕을 끝내고도 한참 후에 엄마는 목욕을 끝낼 수 있었다. 엄마는 우리 삼 남매를 다 씻기고 무슨 힘으로 목욕을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딸은 엄마를 다 씻겨주었는지 자신의 몸을 씻고 있었다. 둘러보니 나이 든 엄마는 온탕에 앉아서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내가 나의 엄마를 언제 씻겨준 적이 있었는가 생각해 보았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얼마 전에도 한 동네에 사는 엄마를 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엄마가 내 등을 날아갈 것처럼 시원하게 밀어주었다. 나도 엄마의 등을 밀어주려고 엄마에게 등을 돌리라고 했더니 엄마는 극구 싫다고 했다. 나이 들면 몸에 때도 덜 나온다며 결국에는 때를 못 밀게 했다. 아마도 같이 나이 들어가는 딸의 팔이 아플까 봐 그랬을 것이다.

나이 든 두 모녀가 정겹게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나의 엄마가 생각이 났다. 다음에는 엄마랑 목욕탕에 와서 엄마의 몸에 따뜻한 물을 두 손에 담아 뿌려 주어야겠다. 엄마가 좋아하는 토마토 주스도 사 먹고 시원한 냉커피도 마시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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