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내역

by 윤인선

능내역은 기차가 서지 않는 역이다. 시간이 멈춘 역이다. 시간은 멈추어서 더 이상 이별과 만남, 떠남과 돌아옴을 품을 수 없지만, 공간은 남아서 더 많은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다. 폐역이 된 능내역은 젊은 시절의 성실함을 밑천 삼아 노년에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과 같다. 최선을 다해서 삶을 살아낸 사람은 후회도 미련도 없어서 남은 시간들이 조바심 없이 넉넉하다. 곁에는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머무르고 싶어 한다. 능내역이 그렇다. 그래서 햇빛 좋고, 바람 좋은 주말이면 남편과 능내역 근처에 있는 유명한 찐빵 가게에서 찐빵과 만두를 사 가지고 자주 간다. 거기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곁들이면 이보다 더 좋은 소풍은 없다.

능내역사(驛舍)에는 기차가 달리던 시절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가 매우 작아서 사진 몇 장이 걸려있고 능내역의 역사(歷史)가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몇 장의 사진만으로도 능내역이 역으로서의 임무를 얼마나 충실히 해냈는지 알 수 있다. 작은 능내역은 오고 가는 발걸음으로 한 시도 쉴 틈이 없었고, 수많은 이별과 만남의 아픔과 기쁨을 품어냈다. 입구 반대쪽 문으로 역사를 나오면 오른쪽으로 역사 벽을 타고 2000년대 이전의 학교에서 사용하던 걸상(의자)이 나란히 대 여섯 개 있다. 역사 벽에는 이 마을의 옛 모습을 가늠케 하는 흑백사진이 걸려있다. 역사 바로 앞에는 기찻길이 있고 역사 벽 끝에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 앞에 있는 계단을 몇 개 내려가면 작은 편의점이 있다. 편의점 앞 기찻길 위에 파라솔이 있는 나무탁자가 몇 개 있다. 기찻길 건너편에는 파전, 잔치국수, 막걸리 등을 파는 간이음식점과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그 옆으로 교회가 있고 그 뒤로는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따라 몇 미터 걸어가면 직사각형 나무판에 화살표시가 있고 그 밑에 ‘성당 가는 길’이라고 쓰여 있다.

처음으로 능내역에 소풍 갔을 때였다. ‘성당 가는 길’이란 푯말을 발견한 나는 성당 가는 길? 어디에 성당이 있다는 걸까? 생각하며 남편을 보니, 남편의 눈이 ‘한번 가보자’고 했다. 우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얼마 가지 않아서 남편과 나는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그 성당은 바로 마재 성당이었다. 마재 성당에 갈 때는 차를 타고 능내역 앞 도로로만 다녀서 마재 성당 뒤편이 능내역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 했다.

기찻길 위에 있는 나무 탁자에 앉아 있노라면 간이음식점에서 흘러나오는 7080 노래가 들린다. 다리를 까딱거리고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둘러보면 소풍의 기분에 취해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다. 간이음식점에서 파전에 막걸리를 먹는 사람들, 한 입이라도 놓칠까 봐 아이스크림을 높이 쳐들고 녹아내리는 아랫부분에 연신 혀를 대는 아이들, 이인용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우리처럼 찐빵을 먹는 사람들,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사람들,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할 일을 다 마치고 느긋한 노년의 시간을 보내는 능내역처럼 그들만의 시간을 향유한다. 물론 그들은 주말이 끝나면 삶의 터전으로 돌아간다. 녹록지 않은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은 능내역에서 만끽한 여유이다.

우리는 주로 간이음식점 테이블이나 기찻길 파라솔 아래에서 찐빵과 만두, 아메리카노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다 오곤 하는데, 그날은 자전거 길을 따라 멀리까지 걷고 싶었다. 남편에게 걷자고 했더니 남편은 군말 없이 그러자고 하며 일어섰다. 기찻길과 간이음식점 사이에 있는 자전거 도로에서, 간이음식점을 마주 서서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 잠시 생각하다가 왼쪽으로 길을 나섰다. 사실 왼쪽으로 가든 오른쪽으로 가든 자전거 도로에 파란 선으로 경계표시를 한, 두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걸을 수 있는 보행로를 녹음을 벗 삼아 하염없이 걸을 뿐이었다. 옆에서는 자전거 무리가 지나가고 앞뒤로 쭉 뻗은 길을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꽤 걸었다 싶었을 때 눈이 나쁜 내 시야에 두 명의 아낙네가 들어왔다. 그녀들은 양손에 무언가를 잔뜩 들고 서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나누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몇 걸음 가서 좀 가까워지니 아낙네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훨씬 더 든 노인들이었다. 노인들의 옷매무새는 나를 50년도 더 전의 어딘가로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노인들과 점점 가까워질수록 나는 시간을 넘어 과거의 어딘가로 끌려들어 가는 것 같았다. 일명 몸빼바지에 저고리를 입은 노인들은 우리 옆을 지나치면서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그려 그려, 그랑께 그랑께를 연발하면서 무슨 이야기가 그리 중한지 우리에게는 일별도 하지 않았다. 노인들이 지나간 후에도 그들을 보느라 내 목이 반이나 돌아가 있었나 보았다. 남편이 목 돌아가겠어, 왜?라고 말했다. 요즘에도 저런 옷차림을 하네,라고 혼잣말을 하고 몇 걸음 더 가다 나는 오던 길로 되돌았다. 내가 어찌나 급작스레 홱 돌았는지 남편은 내친걸음을 잡지 못해 한 두 걸음을 앞으로 가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은 자동차처럼 턴해서 내 옆에 왔다. 나는 걸음을 좀 빨리 했다. 남편은 왜? 왜?라고 했다. 저분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서,라고 했더니 남편은 내 팔을 잡으며 남의 얘기를 뭐 하러 엿듣느냐고 했다. 나는 엿듣는 거 아니야, 가까이 가면 저절로 들리는 거지,라고 말했다. 남편은 그래도 이쯤에서 가자라며 노인들과의 심미적 거리를 조절해 주었다. 노인들의 옷매무새는 옆에서 달리는 신형 자전거들, 트렌디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과 묘한 부조화를 이루었고, 마치 능내역사에 걸려 있는 사진 속의 여자들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녀들은 시간이 멈추기 전, 능내역이 활발하게 활동했을 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을 것이다. 옆 마을로 농작물을 팔러 가기 위해 이곳에서 기차를 기다렸을 것이다. 도시로 나간 자식들이 돌아올 때면 이곳으로 마중을 나왔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들도 시집올 때 이곳을 통해서 이 마을로 왔고, 능내역과 함께 늙어 갔고,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끝내고 여생을 보내는 것이리라. 자식이 자라서 또 자식을 낳아서 그녀들을 찾아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노모를 보러 오는 횟수가 줄어서 마음속 가득한 궁금함과 이른 아침 안개 같은 서운함이 일더라도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그녀들도 능내역처럼 인생의 뒤안길에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식들이 삶에 지친 발걸음으로 오면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노인들 뒤에서 천천히 걷고 있는데, 어느 순간 노인들 뒤에 부부처럼 보이는 두 명의 노인이 뒤따르고 있었다. 두 노인은 손을 잡고 느릿느릿 걸었지만 평화로워 보였고, 가끔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두 노인은 노년의 우리였다. 먼 훗날의 우리를 보며 내 얼굴에도 저녁노을 같은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주 잘 살아서 바로 여기에서 만납시다,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남편이 내 팔을 잡으며 이제 가자고 했다. 어느새 출발 지점인 간이음식점 앞이었다. 노인들은 가던 길을 계속 갔고, 아쉬웠지만 나는 남편 손에 이끌려 기찻길을 건너 역을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는데 역사 입구에서 십 여 미터 떨어진 곳에 지난번에 왔을 때는 뼈대만 앙상했던 건물이 완성되어 카페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방이 통유리로 된 카페는 능내역사와 절묘한 부조화를 이루었다. 주변에 능내역과 부조화를 이루는 것들이 무수히 생겨난다 하더라도 능내역은 마지막 힘을 다하여 자신을 내어 놓아 사람들에게 일상의 쉼표 같은 편안한 공간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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