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Rutherford, New Jersey
권총강도사건이 '제대로' '다시' 나에게 시작된 곳은 맨해튼의 Port Authority Bus Terminal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190번 버스를 타고 집인 러더포드와 직장인 맨해튼으로 오가며 출퇴근을 했다. 버스 터미널 안과 그리고 바깥의 사거리에는 사시사철 사람들이 붐볐다. 특히 출퇴근 시간, 이 곳을 거쳐가는 사람들의 수는 '개미떼처럼'이란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도쿄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가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으로 사람들의 입질에 오를 만큼 유명하다. 내 눈으로 본 오늘의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는 30년 전 맨해튼 Port Authority Bus Terminal에게 적어도 통행인의 숫자로는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졍찰의 전화를 받고 "진범이 잡혔다, 유리창 너머에 서있던 용의자들 중 한 명이었다, 나는 그들을 코털이 보일만큼 자세히 보았다, 그러나 범인을 알아보지 못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 참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퇴근시간이 되어 평상시와 다름없이 회사문을 예사롭게 걸어 나왔다. 몇 블록 떨어진 버스터미널 앞 사거리에 서서 신호등을 기다렸다. 건너편의 수많은 인파 중에서 젊은 청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 바베이도스행 비행기표를 문의하던 청년과 같은 또래였다. 총을 들고 'wallet'과 'money'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청년과 같은 또래였다. 남산만 한 내 배를 보고 놀라 벌벌 떨며 '제 할 일'도 제대로 못하고 급히 도망간 그 청년과 비슷한 연배였다. 순간 건너편의 수많은 사람들이 하얗게 사라지고 맞은 편에 선 그 청년 하나만 내 눈에 남았다. 머리와 귓속도 하얗게 비었다. 두발은 땅에 달라붙어 발가락 하나도 뗄 수 없었다. 신호가 바뀌어 건너편 사람들이 죄다 밀려오고 내쪽에서 그만큼 죄다 밀려갔다. 다시 이편과 건너편에 사람들이 모였다. 하얗던 공백이 차츰 사람들과 웅성거림으로 메꾸어졌다. 돈도 제대로 털어가지 못한 초짜 강도와 비슷한 얼굴을 보면 이와 같은 현상이 되풀이되었다. 서너 번 신호를 그냥 흘려보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뽀얀 피부의 초짜 강도가 나타나 내 부푼 배를 찌르며 총을 내미는 환상이 반복되었다. Port Authority Bus Terminal은 출퇴근을 하기 위해 하루에 두 번은 반드시 드나들어야 하는 곳이었다. 나는 만삭의 임산부였고 뱃속의 아기를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던 찾아야 했다.
나와 같은 경우를 위해 뉴욕시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상담이 있었다. 사건 담당 경찰이 진작에 나의 부푼 배를 보고 권했던 프로그램이었다. Madison Avenue의 쾌적한 지역에 자리한 정신상담 클리닉을 찾았다. 예약을 하고 찾아갔을 때 내 자료를 충분히 살펴본 의사가 나를 맞이했다.
"내가 차일피일 미루지 않고 진작에 은행에서 돈만 찾았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 "보통 사람들은 할 일을 미루기 마련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요."-
"아녜요, 그날 돈을 찾았기에 내가 강도의 표적이 된 겁니다. 경찰도 말했어요. 아시아계 재미교포 청소년들로 이루어진 조직이래요, 그들은 그날이 은행에서 돈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인걸 알고 있었데요. 그 정보로 은행 주변에서 한국인이 있을만한 곳을 털은 거지요. 내 탓입니다, 내 탓이에요, 내가 끌어들인, 내가 자초한 일이에요."
- "그렇다면 그날 은행에서 돈을 찾은 사람 모두가 강도에게 당해야 했는데 그건 아니지요. 그러니 당신이 은행에 가기를 미룬 것만이 그 사건의 원인은 아니지요."-
"나는 엄마 자격이 없어요. 뱃속의 아기에게 못할 짓을 했어요. 시간만 되돌릴 수 있다면 뭐든 하겠어요. 그러면 은행엘 제시간에 갔을 테고, 주위의 권고대로 진작에 출산 휴가를 받았을 거예요. 꾸역꾸역 미련하게 이렇게 부푼 배를 한 체로 일 욕심을 부리지 않았을 거예요. 나는 무엇보다 아기를 생각했어야 했어요. 회사에서의 내 입지에 더 신경을 썼어요. 나는 그런 일을 당해도 싸요. 나는 엄마 자격이 없어요. 시간만 되돌릴 수 있다면."
- 부모가 되는 데는 자격이 필요하지 않아요. 운전면허가 아니잖아요. 엄마가 되는 것에 만약 자격이 필요하다면, 이렇게 온 맘과 몸이 아기 걱정으로 꽉 차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엄마 자격이 충분해 보이는데요. 이제 건강하게 낳아서 잘 키울 거잖아요, 그러면 엄마 자격이 넘치는 것 아닌가요?"
'너의 탓이 아니다. 이제 건강하게 낳아서 잘 키우면 된다. 그러니 당신은 더 이상 엄마 자격이니 뭐니를 운운하지 마라', 의사와의 며칠에 걸친 대화를 요약하면 바로 이러하다. 의사와의 상담이 내 죄책감을 극적으로 씻어내주지는 않았다.내 담당의가 촌천살인의 말로 혹은 심금을 울리는 말로 내 맘을 홀라당 뒤집어 바꾸어 준 것도 아니다. 이 세상 모든 헬렌 켈러에게 설리반 선생님이 있는 것이 아니니. 내가 만난 의사는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평범한 조언을 했을 뿐이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마치 신의 선물처럼, 내 마음의 병을 단 한방에 고쳐주는 명의를 만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만난 의사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전문적인 말을 꽤 품격 있게 그리고 친절히 건넸을 뿐이다. 곧 출산휴가가 시작되었고 더 이상 맨해튼의 정신상담 클리닉에 갈 수도 없었다.
내가 사는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새하얀 머리에 허리가 굽은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초짜 강도 또래의 청년을 만날 기회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무엇보다 남산 만한 배를 앞세우고 산부인과를 가는 것 외에는 달리 외출한 일도 없었다. 더구나 버스정거장이 있는 로터리에 사람들이 모여 보았자 서너 명이 고작이었다. 내게 환각을 일으켜 머리가 하얗게 비고 걸음을 뗄 수 없는 현상을 일으키는 '무리속에 서있는 청년'을 마주칠 일이 없었다. 시간은 흘러 11월이 되었고, 우렁찬 울음소리와 튼실한 허벅지의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
출산 휴가를 마친 후 다시 맨해튼의 버스터미널 앞에 섰다. 머리가 하얗게 비고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긴 했으나 신호등을 한두 번 놓치는 것으로 증상이 순화되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제 두 아들은 둔, 출퇴근 시간의 일분일초가 금쪽같은, 워킹맘이었다. 쉴사이 없이 공중에서 떨어지는 공들을 받아 올려야 하는 저글링 선수처럼 곁눈은커녕 눈썹 한올 흘길 여유 없이 시간이 휙휙 지나갔다.
강도사건은 잊었지만 그러나 잊은 것이 아니었다. 열 손가락 중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둘째 아들의 재롱에 더 기뻤고, 둘째 아들이 폐렴에 걸렸을 때 가슴이 훨씬 더 철렁거렸다. 둘째의 실수에 더 아팠고 그의 성취에 더 기뻤다. 둘째의 사춘기에 나는 더 이성을 차릴 수 없었고 그래서 더 많이 아이에게 소리쳤고, 뒤돌아서서는 더 많이 울었다.
시간이 약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동안 그저 편히 앉은 체로 공짜로 세월을 먹은 것도 아니다. 살면서 어떤 일이 벌어질 때마다 아프다. 하지만 호들갑을 떨어보았자 내 진만 빠질 뿐이란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대로를 걷노라면 내 탓이건 남의 탓이건 이런저런 이유로 시궁창에 빠질 때가 허다했다. 그럴 때 한탄을 늘어놓아 보았자 내 발등을 찧을 뿐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은 어쨌거나 다시 그 길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은 엄정했고 여전했다. 다시 올라간 그 길 위에서 뒤처진 걸음을 서두르느라 허벅지 근육만 더 요란하게 불탔고 종아리엔 알통만 더 빼곡히 들어앉았다.
시간이 알려주었다, 처음 맞을 때 아프다, 그러나 맷집이 생겼다고 해서 다시 두들겨 맞았을 때 덜 아프다는 뜻은 아니다라는 것을. 맷집이란 고통에 대한 불감증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순간의 고통을 참으면 그것도 결국은 멎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뿐이라고. 그러니 그저 ‘그러려니’하라고. 일이 닥쳐도 너무 힘 빼지 말라고. 휘청거릴 순 있겠지만 그러나 남아있는 내 눈앞의 가던 길은 계속 가는 거라고.
표지 사진 New York Port Authority Bus Terminal [출처 :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