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Rutherford, New Jersey
행복했던 일들은 시간 속에서 뭉긋하게 익는다. 각 재료들의 빛들은 바래어진다. 구체적인 세부들은 뭉개어진다. 느리지만 마침내 모든 것들은 따뜻하고 온화한 덩어리가 되고 보글거리며 서성인다, 쉬이 가지 않는다. 반면, 고통은 집중하고 예리하며 깊다. 불행의 사건들은 한 올 한 올 꼿꼿이 머리를 들고 퇴장하길 거부한다. 완강하다. 고통스러운 '사고'에 자식에 대한 미안함이 더해져 1989년 그날이 나에겐 여전히 천근만근으로 무겁다.
시작은 맨해튼에 있던 한인은행의 파산이었다. 갖고 있던 현금 전부를 맡긴 그 은행이 곧 파산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달 마지막 주 금요일까지는 원금을 손해보지 않고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일터에서 걸으면 5분 거리에 그 은행이 있었다. 잠시 짬만 내면 손쉽게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돈을 찾아오길 차일피일 미루었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점심을 먹고 돈을 찾으러 갔다. 전재산이었고 제법 큰 액수였다. 간수하기 편할 듯하여 100불짜리 지폐로 받았다. 막상 지폐 위의 '100'이라는 숫자가 적힌 돈다발을 보자 불안해졌다. 나름대로 보안장치를 한답시고, 또한 큰돈이니 대접한다는 생각에 A4 용지로 돌돌 감싸서 가방에 넣었다. 전부 한곳에 두면 안될 듯 하여 돈다발중 조금을 덜어내 다시 종이에 둘둘 말아 장지갑에 넣었다.
퇴근시간을 20여분 남겨놓고 직장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 준비를 시작했다. 금요일이면 퇴근시간은 빨라지고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는 걸음들은 부산스럽기 마련이다. 주말을 잘 보내라는 인사도 목청을 좀 높여야 제대로 맛이 난다. 다소 떠들썩한 와중에 손님 한 명이 들어왔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막 컴퓨터를 끄려던 내 앞자리에 그가 앉았다. 바베이도스(Barbados)로 일주일 정도 휴가를 가고 싶다며 가격과 일정을 물었다. 카리브해의 그 유명한 휴양지로 여행 가기에는 좀 어색한, 어린 나이의 청년이었다. 휴가를 가기에도 애매한 9월 말이었다. 갓 스물은 넘겼을 정도의, 젖살이 군데군데 남아있는 뽀얀 피부의 젊은 이었다.
자기 때문에 퇴근시간이 늦어져서 미안하다며 가격만 대충 알아보려 한다는 그의 말에 서둘러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 사이 동료들은 나를 행해 안됬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하나둘씩 퇴근했다. 바베이도스 항공편 검색이 끝나고 리조트를 입력해 전체 가격을 산출할 즈음 넓은 사무실에는 나, 내 직속 상사, 그리고 내 앞의 손님 3명이 남았다. 그때 또 다른 손님 한 명이 사무실에 들어섰다. 삼십 대쯤으로 보이는 그는 내 앞자리의 손님과 일행이라고 했다. 내가 권한 자리에 앉는 대신 그는 잠바 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총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내 앞자리의 청년을 보았다. 어느 사이 그의 손에도 총이 들려 있었다. 세상의 시간이 순간 멈추었고 모든 소리도 더불어 사라졌다. 희미하게 'Wallet'이니 'money'라는 단어를 들은 듯도 했다. 등 뒤 옷걸이에 외투와 함께 걸려있던 가방을 가지러 가기 위해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고장난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내 모든 관절은 삐그덕 거렸고 호흡도, 손과 발놀림도 제각각 엇박자였다. 청년에게 지갑을 건네주었다. 그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일어서면서 드너난 남산처럼 부푼 내 배를 보고 그가 놀란 것이다. 그때 난 출산을 한 달 반 앞둔 만삭의 임산부였다.
뒤편에서 내 상사의 지갑을 털던 사내가 청년에게 서둘라며 소리친 듯했다. 청년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손으로 떨면서 허둥대며 내 지갑을 뒤졌다. 현실감이 전혀 없는 장면들이었다. 나에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연극이었다. 무대 뒤 편에 서있는 나는 무대위에서 벌어지는 한편의 연극을 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긴 흘렀는지, 얼마나 흘렀는지, 연극이 끝나기는 했는지, 빛과 소리가 문득 쏟아져 들어왔다. 직장상사가 내 어깨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라고 소리쳤다. 여러 명의 뉴욕경찰들이 북적대었고 그들은 무전기로 어딘가의 누군가와 큰 목소리로 통화했다. 건물 밖에는 앵앵거리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는 요란했다.
내 지갑에서 없어진 것은 버스 통행권 두장뿐이었다. 직장이 있는 뉴욕에서 집이 있는 뉴 저지까지 한 달 버스 통행권이 99불이었다. 젖살이 포동포동하게 남아 있는 앳된 청년 강도가 내 지갑에서 털어간 것은 다 쓰고 하루나 이틀 남은 9월 버스 통행권과 미리 사둔 10월 통행권, 그것 뿐이었다. 아마도 강도 초짜인 그는 내 부푼 배를 보고 놀랐을 것이다, A4용지에 감싸인 100불짜리 지폐 뭉치는 미쳐 살펴볼 정신도 없었을 것이다 등등이 경찰의 추측이었다. 현장에서 간단한 진술을 마치고 경찰차를 타고 집으로 퇴근했다. 동네 사람들도 그날 일을 알게 되었다. 뱃속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까부터 그만하기 다행이다 등등 온갖 탄식과 염려를 한 몸에 받았다.
다음 주, 강도사건을 조사 중인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용의자를 잡았다며, 경찰은 나에게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는지 물어보았다. 항공편을 찾아보고 알려주며 10여분 이상을 마주 보고 앉아 있었기에 당연히 기억했다, 여드름 자국 하나 없이 뽀얀 얼굴과 몰캉몰캉 피어오르던 비누향까지 생생했다. 42번가에 위치한 경찰서에서 용의자들을 마주했다. 일렬로 선 용의자들은 두 손으로 번호판을 가슴높이만큼 들고 서있었다. 나는 볼 수 있으나 그들은 나를 볼 수 없는 유리창(half mirror)을 사이에 두고 앞에선 얼굴들을 하나씩 보았다. 기억 속의 얼굴이 없었다. 두 번 보아도 역시 없었다.
내가 잃은 돈은 비교적 미미했고 내 신체에 상해를 입은 곳도 없었다. 1989년 여름의 끝무렵,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 강도사건은 그렇게 끝이 난듯했다.
며칠 후 다시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내가 보았던 사내들 중에 범인이 있었다고, 거기 서있던 이들 중 한 명이 나와 마주 앉아 바베이도스행 항공편을 물어보던 그 젊은이라고, 진범이 거기 있었다고. 강도사건뒤에서 나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지냈었다. 공포에 질리거나 악몽을 꾼적도 없다. 그러나, 내가 강도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고나자 비로소 '권총강도사건'은 시작되었다, 마치 되돌려 감은 비디오테이프처럼.
표지 사진 Barbados [출처 :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