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Country (Part 2)

to Los Angeles, California

by 클라우디아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이삿짐과 함께 부치려던 것이 원래 생각이었다. 이웃들과 작별의 밥을 먹고 친구들과 석별의 술을 마시던 중 누군가의 입으로부터 '자동차 대륙 횡단'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자동차로 미국 대륙을 횡단해볼 수 있겠는가라는 호기를 잔뜩 불어넣은 한 문장의 말이었다. 그 말에 나는 신경을 0.1도 쓰지 않았다.





미국의 대표적인 이삿짐센터 U-Haul [출처 : 구글 이미지]





무엇보다 작은 아들이 막 돌을 지난 때였다. 자동차를 타고 5천 킬로미터를 달린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 (Los Angeles의 뜻 - 천사들의 도시)까지는 비행기로도 3시간의 거리이다. 뻥하고 뚫린 하늘길과 달리 자동차로 미대륙을 횡단한다 함은 도시를 지나고 강과 산 그리고 골짜기를 지나야 한다. 사막을 가로지르고 마지막엔, 록키산맥을, 기어 올라가 다시 기어 내려와야 한다. 그렇게 해야 태평양 연안의 도시, '천사의 영역'에 닿을 수 있다.






미국 대륙횡단의 대표 길, 루트 66 [출처 : 구글 이미지]






이 사람 저 사람이 자동차 대륙횡단에 의견들을 보탰다. 지인들은 흉중에 품었던 '크로스컨트리'에 대한 자신들의 '로망'을 꺼내어 아낌없이 우리를 부추겼다. 그들은 소문으로만 들은 대륙횡단 무용담에서 조금을 덜어내고 조금을 더 채운 후 장밋빛으로 채색하여 우리를 들쑤셨다. 횡단 이야기가 이 입 저 입으로 돌아다니며 덩치를 키우고 모양을 갖추었다. 어, 어, 어 하다 보니 우리 가족의 자동차 대륙횡단이 사실이 되었다. 대륙을 횡단하는 2주간의 루트, 머무를 도시들, 몇 시간을 달리다 얼마나 휴식할 건인지, 중부의 유학 선배 집에 찾아가 며칠간 중간 장비 점검 및 체력 보충 등의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졌다.





대륙횡단 청사진을 받아 드니 출발 이틀 전이되었다. 남편은 마무리 볼일을 보기 위해 맨해튼으로 갔고 나와 아이들은 옆집에서 이웃들과 소복이 한데 모여 점심을 먹었다. 살림살이를 모두 이삿짐으로 보내고 난 후 며칠 동안 이웃들이 돌아가며 우리 식구의 삼시 세 끼를 챙겼었다. 알음알음으로 연결된 어느 유학생 부부가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던 우리집 책장을 갖고 가기 위해 찾아왔다. 나와 그들 부부는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문 높이보다 키가 큰 책장을 옮기기 위해 책장을 기울였다. 남편이 다녔던 대학의 로고가 선명히 찍힌 봉투가 책장 위에서 떨어졌다.




'네가 transfer 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보다도 너와 우리는 연구목적과 방향에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너의 'transfer' 계획에 나와 교수진은 매우 놀랐다. 개인적인 질문이라 조심스럽지만 혹시 재정적인 문제 때문인가? 지금 너에게 학비만 제공하고 있는 scolarship을 확대시키기로 결정했다. 학비에 덧붙여 재정지원을 해주겠다. 너의 아내가 지금 일을 하고 있고 너에게 아이가 둘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지도교수와 관련된 교직원이 내린 결정이다. 그리고 너의 아내가 공부할 계획임을 알고 있다. 너의 아내가 우리 학교에 지원한다면 너에게 주는 것과 같은 종류의 scholarship을 제공할 것이다. 이 편지가 제안하는 것들로 네가 우리 학교에 남게 되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너의 답신으로 우리의 희망이 채워지길 기다린다.'





그 대학의 학장이 남편에게 보낸 편지였다. 편지의 날짜는 그날로부터 넉 달 전이었다.





남편이 학교를 옮긴 이유는 물론 재정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정치사상을 전공하던 남편은 냉전 종식과 이후의 지형변화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미 뉴욕에서 전공에 쏟아부은 4년의 성과는 충분히 거두어들였다고 여길 때이기도 했다.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의 만남이 거듭되던 때였다. 지구 위의 모든 눈들이 그둘의 행보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1989년 12월, 레이건을 뒤이은 아버지 조시 부시 미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몰타에서 만나 냉전 종식에 서명했다. (몰타섬은 1500여 년 전, 서방의 가톨릭 세력과 오스만 튀르크가 맞붙어 수많은 피를 흘린 곳이다.) 남편은 이론에서 노동으로 전공을 확대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1990년, 남편이 여러 학교에 편지를 쓰기 시작하며 'transfer'의 첫발을 떼었다. 1991년 여름, 우리 가족은 로스앤젤레스로 옮겨갔다. 1991년 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라는 간판을 내려지고 세계는 이제 이 나라를 러시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냉전에 굵은 마침표가 찍혔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미국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출처 : 구글 이미지]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미국 41대 대통령 '아버지' 조지 부시, 몰타 회담에서 [출처 : 구글 이미지]





이것들은 당연히 내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학장이 보낸 편지의 존재를, 나는 몰랐다. 학장이 써 보낸 약속들 앞에 서서 이어졌을 남편의 긴 고뇌가 읽혔다. 남편은 키 큰 책장 위에 편지를 누이며 그의 루비콘을 건넜다. 이토록 '매혹적'인 조건들에 눈을 감고 내린 결정이라면 나는 편지의 존재와 내용을 숨긴 그를 비난할 수 없었다. 학장의 편지를 읽고나서, 비로소 나는 'transfer'와 자동차 대륙횡단을 맘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책장 위에서 툭 하고 떨어진 편지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나의 '루비콘'을 건너 로스 앤젤레스를 향해 출발 할수 있었다.







표지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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