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Los Angeles, California
LA로 이사하고 서너 달 후, 큰아들이 Clover Avenue Elementary School에 입학했다.
주마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아들의 학교 Pre-kindergarten 과정은 만 다섯 살이 되면 들어갈 수 있었다. Pre-K학년의 꼬꼬마들은 입학한 첫 주 금요일, 박물관으로 field trip을 갔다. 소풍이라고도, 현장학습이라고도 번역하기 애매한 'field trip'은 공원에 가서 뛰어놀기부터 역사유적지 방문 후 진지한 리포트 쓰기까지 교실 외에서 이루어지는 수업들의 총칭이었다.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큰아들이 박물관 입구에서 첫 번째 열린 문으로 들어가더니 안에서 잠그고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선생님들과 박물관 직원들이 나오라고, 제발 문을 열어보라고 설득해도 안된다고 했다. 밖에서 열쇠로 문을 열 수도 있지만 부모가 와서 아들이 제 발로 걸어 나오게 하고, 집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내가 도착해 아들의 이름을 부르자 안에서 잠겨진 문이 열리고 아들이 나왔다. 아들을 살펴보니 겉으로는 아무 일이 없는 듯했다. 표정도 괜찮아 보였고 묻는 말에 대답도 잘했다. 선생님과 직원에게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거듭 말씀을 드리고 얼른 아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벗어나 집으로 왔다. 왜 있지 않은가? 길 가다 자빠졌을 때, 깨진 무릎에서 피가 철철 흘러도, 남의 시선이 민망해 괜찮은 척 벌떡 일어나 뒷골목을 찾아서야, 그제야 비로소, 고통을 후후 불어내는 그 심정.
박물관에서 문을 잠그고 왜 나오지 않았는지 아들에게 물었다. '그냥'이라고 아들이 대답했다. 아들은 밥도 제 양껏 먹었고 동생하고 잘 놀았고 별다른 일 없이 그날이 지나갔다. 특이한 일 없이 그다음 주 금요일이 되었고 pre-K학년은 이번엔 공원으로 field trip을 갔다. 아들의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들이 쏜살같이 뛰더 가더니 제일 큰 나무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는다고 했다. 워낙 나무가 높기도 하거니와 가지와 잎도 무성하여 고개를 꺾어 살펴보아도 아들의 옷자락만 그 틈새로 간신히 보인다고 했다. 공원 직원이 나무 위로 올라갈 수도 있으나 그 과정에서 혹시 불상사가 생길 수 있으니 부모가 와서 아이를 설득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날, 누군가가 나무 위로 올라가서 아들을 데리고 내려왔는지, 아니면 아들이 스스로 그 공원에서 제일 높은 나무에서 내려왔는지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담임 선생님이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와 함께 집에 가고 싶은지, 친구들과 놀고 싶은지? 잠시 생각하던 아들이 되물었다, 엄마도 여기 있으면 안 되냐고. 나는 공원 한 구석 의자에 앉았다. 저 멀리서 아들이 친구들 틈에 섞였다. 서서히 제정신이 돌아왔다. 긴장이 풀리고 눈물이 흘렀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노라니 목덜미가 축축해지고 쇄골에 눈물이 고였다. 담임선생님이 다가왔다. 나를 진정시키는 여러 말을 했는데 그중 한마디가, 'Oh he is somebody!'였다.
미국 가수 셰어가 1987년 영화 '문스트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그녀의 놀라운 의상만큼이나 짧고 강렬했던 수상소감이 한동안 화제였다. '고전적'인 미모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그녀는 가수가 본업이었다. 그녀의 경력을 언뜻 보기만 해도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설 때까지 그녀가 걸어온 길이 녹녹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수상 소감을 대충 기억하자면 I have always wanted to be somebody. Now I am somebody! 였다. 'somebody'를 단순히 '누군가'라고 번역한다던지 "부정문에는 anybody, 긍정문에는 someboby를 써야 한다."라는 식의 기초 문법적 접근은 상당히 부족하다.
'상당한 무엇, 대단한 무엇, 아직은 명확하지 않으나 되고자 열망하는 무엇'이 가수 셰어가 오스카를 손에 쥐고 포효했던 'somebody'와 근접한 뜻이다. 박물관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사정해도 나오지 않았던, 공원에서 제일 높은 나무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고 애태웠던 내 아들을 가리켜, 담임선생님은, 'somebody'라고 불렀다. 그리고 덧붙였다. 'Oh, he has an amazing talent for language, of course I believe you’ve already known that.' 아들에게 언어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모국어를 빨리 시작하고 글을 빨리 깨치긴 했지만 영어에도 역시 그러한지 나는 몰랐었다. 모국어던 외국어던 언어란 다 한 통속이다부터 담임선생님과 대화가 이어졌다. 내 전공이 영어 영문학이라는 이야기, 우리 가족이 뉴욕에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이야기, 워낙 참을성이 많고 무엇이던 사달라거나 갖겠다고 떼써 본 적이 없는 아들의 성품 이야기 등등을 나누었다. 아들이 뉴욕에서 많은 친구들과 잘 지냈던 이야기, 그중 베프였던 제이슨 형과의 우정 이야기도 선생님께 들려드렸다. 멀고도 먼 곳으로 이사와 친밀했던 그 모든 것들과의 '영영' 이별은 미처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도, 표현할 수도 없는 5살 아이에겐 심각한 스트레스였으리라고, 선생님과 나는 동의했다. 선생님은 자신이 학교에서 내 아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설명해주었다. 세세히 다 기억나지 않은 그 대화를 마치자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내 마음을 꽉 채웠다. pre-K에 이어서 그 뒤 한번 더 아들의 담임선생님이었던 그분의 이름은 Mrs. Janet Brown이다. 그 뒤 아들은 영어능력으로 한 번에 학년씩 두 번 월반했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 영어를 가르쳐 주셨던 매톡스 선생님과 같은 평화봉사단원으로, 바로 같은 해에 Mrs. Brown도 한국에 왔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가 그녀는 선생님이 되고 결혼을 하고 변호사인 남편과 의논 후 한국에서 고아를 입양했고, 그 아이가 큰아들과 같은 학교의 6학년이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천사의 땅'이라는 뜻에 알맞게 Los Angeles에서 나는 두 명의 천사 'Angel'을 만났다. Janet Brown 선생님이 그중 한 분이다.
표지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