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il Money

at Los Angeles, Caliofornia

by 클라우디아





퇴근길, 집을 바로 코앞에 둔 신호등의 빨간불에 차를 세웠다. 뒤에서 달려온 차가 내 차를 박았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아들을 살폈다. 잠시 놀란 정도였다. 자동차의 상처는 살짝 들어간 정도였다. 그쪽도 어쨌든 빨간불에 차를 세우려던 정도의 느린 속도였다.






Traffic Light [출처 : 구글 이미지]






뒷 자동차에서 내려 다가온 운전자는 내 위아래를 재빠르게 훑고 내 손을 잡고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기 엄마가 그렇게 갑자기 차를 세우다니 당신은 운전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인가?, 그가 '선빵'을 날렸다. 외국어인 내 영어는 자연스레 몸에 밴 것이 아니다. 억지로 쑤셔 넣은 내 영어는 몹시 놀라면 심하게 버벅거리고 급하게 서툴러진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상대의 선제공격에 손을 쓰기는커녕 버벅거리고만 있었다. 내 '심약한' 전투력을 파악한 상대방은 언성을 더욱 더 높여 본격적으로 공격을 해왔다. 다다다 다다, 말도 빨리하고 전문 용어도 막 써가며 그가 노린 공격 지점은 두 자동차의 충돌은 앞차 운전자인 '아이 엄마', 바로 내가 급정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찰이 왔다. 한국에서 자동차 사고가 나면 일등으로 현장에 도착하는 것은 견인차이다. 이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늘 어디선가 맴맴 돌고 있던 순찰차가 즉각 사고지점에 도착한다. 경찰은 눈을 데룩데룩 굴려가며 내 차와 상대방 차를 들여다보았다. 말문이 막힌 나를 치어다 보고, 따발총으로 쏘아대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 경찰은 판단을 내렸다. 너는 과실을 인정하는지, 벌금딱지를 받고 아이와 함께 집에 가겠는지?, 경찰이 내게 물었다.





아무리 입은 막혔어도 머리는 어느 정도 돌아가고 있었던 나는 내 과실이 아니라고, 'not guilty!'를 외쳤다. 경찰은 '네가 과실을 인정하지 않으니 jail에 가야 하지만 너의 아이가 곁에 있으니, 오늘은 jail에 상당한 bail money를 내고 집에 가는 게 어떻겠냐?'라고 선심 쓰듯 물었다. jail은 우리말로 파출소 내의 구치소에 해당하고 감옥에 해당하는 영어는 일반적으로 prison을 쓴다. 경찰은 백인이었다. 그 와중에 주고받은 명함을 보니 차사고 상대방의 이름에서 유대인의 냄새가 짙게 배어났다. 신호등에 서있던 내차를 박은 그 운전자의 직업은 로펌의 변호사였다.





300불이 조금 안 되는 보석금 (bail money) 액수를 수표에 써서 경찰에게 건네고 집으로 왔다. 나는 뒷북치는 스타일이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고 차사고를 복기하니 뒷북을 쳐도 도무지 한두 번으론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법정에 출두할 날짜를 알리는 편지를 받았다. 로스앤젤레스 시내에서 바닷가 쪽으로, 동서로 곧게 뻗은 10번 프리웨이가 내가 출퇴근길에 이용하는 도로였다. 10번 프리웨이에서 우리 동네 쪽 출구를 빠져 나와 좌회전을 하면, 바로 코앞에 신호등이 있다. 출구에서 나와 앞에 둔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자마자 그 신호등을 만나게 된다. 동네 주민이 아니면, 그 출구와 신호등에 익숙하지 않으면, 급정거를 하게끔 되어 있는 곳이다. 동네 주민이면 더욱 살살 접근하게 되는 곳이 그 출구와 신호등이었다. 그곳 지리를 모르는, 급한 성미거나 급한 볼일이 있는 타지인이 그 신호등 앞에서 끼익~ 끼익~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었다. 나는 내 몸통의 반만 한 마분지를 사서 아이들의 크레용으로 그곳 지도를 그렸다. 우리 동네 지도와 고속도로에서 빠지는 바로 그 출구와 충돌사고가 났던 바로 그 신호등을 그렸다.





직장 상사께 법정 출두로 결근하게 되는 사정을 말씀드렸다. 상사는 직장 생활 동안 내가 지각이나 결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내용이 중심인 'letter'를 써주었다. 당황하면 짧아지는 내 영어를 고려해 판사 앞에서 나를 변호할 말을 적고 다듬어 시간을 두고 연습했다. 사고 현장에서 총알처럼 쏘아 댔던 상대방의 영어에는 택도 안되지만 그날 내가 버벅거렸던 것을 조금이나마 만회하고 싶었다. 내 키는 작고 영어는 짧아도 그에겐 없는 억울한 마음과 정의를 구하는 마음이 내게 있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입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나를 말렸다. 막상 법정 출두일이 되자 그들이 한입이 되어 외치는 파이팅 소리를 뒷배 삼아 지도를 그린 마분지와 내가 작성한 변론서와 직장상사가 써준 letter을 들고 법정에 갔다. 좁은 방안에 많은 사람들이 복작거렸다. 접촉사고 같은 자잘한 사건들을 한데 모아 한두 시간 내에 짧게 싹쓸이하듯 정리하는 날이었다. 사고 현장에 왔었던 경찰은 껌을 질겅질겅 오징어 씹 듯하며 나한텐 신경조차 쓰지 않고 저쪽에 앉아 있었다. 순찰 중 잠깐 쉴 겸, 나오라니까 오긴 왔다는 경찰의 태도가 멀리서도 쉽게 읽혔다. 사고의 당사자인 그 '변호사'는 심지어 지각이었다.






판사 앞에 서니 역시나 짧은 내 영어는 더욱더 쪼그라들었다. 외운 것을 유창하게 말하리라는 마음을 접고 판사에게 준비해온 것을 읽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판사의 허락을 받고 천천히 나를 변호하는 글을 읽었다. 판사가 내 손을 들어주었다. 내가 이미 냈던 bail money와 내 자동차 수리비와 법정 출두로 내가 직장을 결근해 받게 될 유무형의 손해에 해당되는 숫자를 합한 돈을 받게 되었다. 사고의 당사자인 '미국인'이 법정에 들어섰을 땐 이미 선고를 내리려 판사가 입을 떼고 있을 때였다.





법원으로부터, 왠지 주머니에 넣으면 안 될 것 같은 돈을 받고서 그 돈으로 동네 이웃에게 고기 파티를 쏘았다. 직장에서 회식을 쏘았다. 그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여러 번 쏘았다. 이런 돈은 혼자 꿀꺽하면 배탈이 난다는 것이 내 상식이다.







표지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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