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코로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라우디아 Sep 07. 2020

코로나 - 개꿈


꿈을 꿨다. 내 차를 이용하고, 친구 차를 빌리고, 렌터카를 이용하고,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빌려 보아도  매번 마감시간을 맞추지 못해 사장님에게 대차게 '까였다'.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고개를 푹 숙이고 까이고 또 까이는데 눈물 대신 숨이 가빴다. 숨이 차오른 나는 목을 부여잡고 헉헉대다 잠이 깼다. 점집 1시간 차 인턴도 이 정도 꿈이면 해몽이 가능하다. 목, 금, 토요일 3일째 잠자는 시간, 샤워하는 시간, 밥 먹고 양치하는 시간을 빼고는 줄곧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코와 두 뺨에 도돌도돌 뭔가가 돋기 시작했다. 아침에 240ml씩 두 번 라테를 만들어 먹던 것도 한잔으로 줄였다. 마스크 벗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아들은 자신의 방에, 나는 마루와 부엌 사이 어딘가에, 방문을 사이에 두고 있어도 혹시 몰라, 그 혹시가 무서워서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다. 다이소의 엠플, 키엘의 비타민 세럼, 지성용 토너, 건성용 페이스 크림 등 화장품의 가격이나 종류에 상관없이 뭘 발라도 평생 뽀두라지 한번 나지 않은 무적의 내 피부가 KF94 마스크 3일 만에 뚫리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공항에 동생을 맞으러 나가지 못한 큰아들이 토요일 오전에 집에 들른다고, 나는 그러면 안된다고, 아들은 주장하고, 나는 말리고를 반복하다 내가 항복했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고 대화를 나누면 되는데 왜 못 오게 하냐는 것이 아들의 주장이었고, 너는 직장을 다니니까 만약에 hoxy!!! 라도 만약에 그 악명도 드높은, 공공의 주적 '1호'확진자가 되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거야, 안돼 안돼 절대 안 돼가 나의 만류였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는데 왜 걸리겠냐, 아니야 그래도 혹시 걸리면, 큰아들과 나는 계속 도돌이표 대화를 이어가다 어느 시점에 내가 지쳐버렸다.








자가 격리자의 '동거인'인 나는 어느 정도까지 셀프 방역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 정도면 괜찮을 거야라는 '자기 합리'와 그래도 안돼 더 철저히!라는 결의 사이를 끊임없이 나는 반복한다. 어제 점심에, 뚝배기에 끓인 된장찌개를 들여놓으려 아들의 방 깊숙이 들어갔다. 잘잘 끓는 뚝배기가 너무 뜨거워서, 아들에게 건네주고 받기가 불편해서,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행동이었는데 아들방에서 나오자마자 아차 싶었다. 마치 적진에 멋모르고 뛰어든 라이언 일병의 모습이 아닌가.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꼈지만 아들의 방문턱을 넘은 몇 초, 그 사소한 것들이 내 불안 신경세포를 건드린다. 잠깐 마트에 다녀오기도 그러하다.





어제 점심 아들 식사





아들이 귀국하면 2주 동안 나도 '준 자가격리'에 들어갈 준비를 했었다. 모든 외출을 취소하거나 연기했고, 식료품이나 공산품도 미리 구비해두었다. 해산물도 듬뿍 사다 손질하고 소분하여 냉동고에 넣어 두었다. 콩나물, 두부, 고기처럼 저장기간이 짧은 식재료는 가까운 마트에서 살 생각이었다. 이제 그마저도 불안하다. 마스크를 쓰고 긴치마에 긴팔 소매의 옷에 반드시 장갑을 끼고 마트에 간다. 마트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장 볼 품목을 종알종알 외운 후 누가 볼세라 순식간에 물건을 집어 들고 시선을 내리 깔고 계산을 하고 쏜살같이 집으로 귀대한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 '당신 자가 격리자 아니야!"라며 손가락질하는 듯하다.





집으로 오자마자 온 사방에 소독제를 뿜어댄다. 코로나에 걸리기 전에 저 소독제에 질식할 지경이다. 숨 쉬는 것이 이렇게도 신경 써서 행할 일이었던가. 음식을 할 때 보통 때도 간은 잘 안 보지만 아들이 오고 난 후 음식의 간을 보지 않는다, 마스크를 벗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미리 준비해둔 밑반찬에 메인 두 가지 정도를 더해 상을 차린다. 동생에게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기여코 큰아들이 집에 온다기에 고기를 좋아하는 두 형제를 위해 슴슴한 소고기(왕창) 뭇국과 매콤한 두부조림을 만들었다. 두부조림 냄비 바닥에서 자글자글 끓는 양념장을 두부 위로 하염없이 끼얹고 있는데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더니 큰아들이 들이닥쳤다.





동생에게 꼭 응, 이 시점에 응, 줘야 할 물건이 뭔지 보니 두서너 점의 옷이었다. 뉴욕에 대량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자 작은 아들은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학교를 마쳤다. 6개월 동안 집콕하며 그가 얻은 것은 향수병과 더불어 몸무게였다. 동생과 화상 통화등 평소 소통이 잦은 큰아들은 급격히 늘어난 동생의 몸무게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나 작은 사이즈의 옷 = 코로나 사태 이전의 몸에 맞는 사이즈의 옷을 사 와서 주며 얼른 부푼 살을 깎고, 자가격리 무사히 끝나고 멋지게 입으라고], 이것이 내가 그렇게 말려도 기어코 집에 와서 동생을 봐야겠다고 주장한 큰아들의 빅픽쳐였다.





작은 아들은 자기 방에서 바깥 = 서쪽을 향한 창문을 열어 놓고 홀로, 남편과 큰아들과 나는 마루 식탁 =  동쪽을 향해 나란히 앉아 점심을 먹었다. 밥 숟가락을 놓자마자 얼른 가라고, 좋은 말로 할 때 얼른 가라고, 큰아들을 쫓아냈다. 설거지를 마치고 잠시 쉬는데 오전보다 숨이 더 가쁘고 목이 아픈 듯 만 듯하다. 잠시 누웠다가, 일어나 이것저것 집안 정리를 했다가, 또 잠시 누워 쉬어 본다. 손소독제로 두 손을 마구 비벼댄다. 설거지하느라 주부 습진 걸리는 것이 아니라 손소독제 습진이 걸릴 지경이다. 마당에 널린 빨래를 걷어온다. 저녁밥을 준비해 먹는다. 목이 계속 아픈 듯 만듯하다. 컨디션이 좀 가라앉는 듯하다. 코로나 증상에 관한 기사를 뒤지고 검색한다. 열이 나는지 어떤지 계속 이마를 만져 본다. 덜컹 겁이 난다. 이걸로 가당키나 할까 싶으면서도 약상자를 뒤져 면역에 좋다는 스피루니나 몇 알과 비타민 씨 두 알과 타이레놀을 찾아 삼킨다. 아, 혹시 열이 나면 증세가 발현되도록 그대로 둬야 하나, 타이레놀로 열만 가라앉히면 오히려 잠복기가 길어지나? 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을 하며 이 생각 저 생각이 이어져서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그동안 아들이 얼마나 집 밥이 먹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에 6, 7첩 반상, 9첩 반상을 차렸었는데, 방 안에 갇혀 서성거리다 잠이 들고 깨어나 밥을 먹고 또 서성거리다 잠을 자는 아들은 소화가 안 되는 듯 연신 위아래로 트림이 심하다. 일단 삼시세끼 아들의 식사량을 좀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을 억지로 청해 본다.




오늘 아침 아들 식사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 36.5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