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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udine Apr 18. 2024

요즘의 식사

한 가지 음식으로 사는 일상

사람이 고양이처럼 한 가지 음식으로만 살 수 있을까?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요즘의 나는 그렇게 지내고 있다.

몇 달을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하다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뭘 먹어도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다 보니 세 달 정도 사이에 근육과 머리카락이 사라져 가고

눈도 침침해지고 피부는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지방간까지 생길 것 같아 고민하고 있는데 한국의 지인이 식사대용 환자음료를 먹어보라고 했다.

몇 년 전 입원했을 때 병원에서 식사와 함께 나와서 먹어봤다가 느끼한 맛에 바로 치워버린 기억이 있어서 내키진 않았지만, 그래 검색이나 해보자 하고 찾아봤다.

예상외로 다양한 제품들이 있었고 다들 26가지 비타민 미네랄에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완벽한 비율 등을 내세우며 완전식품이라고 광고하고 있었다. 식사대용식에 있어서 유럽 시장이 한국 시장보다 훨씬 활성화되어 있었다. 나처럼 아픈 사람들이 주 고객은 아니고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나 건강을 많이 신경 쓰는 사람들, 환경주의자들이 주 고객인 듯했다.

그 중 제일 맛있어보이는 것을 클릭했다. 독일 제품 yfood, 디자인이 알록달록 예뻤다.

알파인초코, 헤이즐넛, 카페 콜드브루, 베리, 바나나, 솔티드캐러멜, 바나나, 바닐라, 코코넛, 망고 등 맛도 참 다양했다.

500ml 한 병에 500칼로리라 한 병만 마셔도 든든하고 영양소를 다양하게 채울 수 있다 하니 한 번 시도나 해보자 하고 곧바로 주문을 했다. 일주일이나 걸려서 택배가 도착했고, 그 이후로 나는 살았다!


제발 무사히 소화돼라 간절히 바라며 한 병을 조심스레 나눠마셨고, 구토를 하지 않았다.

설사도 점정 줄어 하루 스무 번쯤 화장실을 가야 했던 것을 이제는 다섯 번 이내로 간다.

그것만으로도 정말 살 것 같다.

고칼로리가 몸에 들어가다 보니 조금씩 기운도 생겨서 논문 초안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매번 삼십 분이면 지쳐서 쉬곤 했는데 기운이 생기니 몇 시간이고 편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맛이 좋다.

크리미 하고 달달하고, 건강식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정크푸드라고 해도 믿을 만큼 그냥 맛있는 셰이크 같다.

한 병 한 병 사라질 때마다 아쉬워서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도 자꾸 추가 주문하게 된다.

지금은 베간 버전세트와 제일 좋아하는 맛인 크레이지 코코넛 번들과 새로 시도해 보는 펑키 피넛 번들이 오고 있다.


+ 내 소화력이 좋아졌나 싶어 오늘 평소 좋아하던 다른 음식을 시도해 보았으나, 한 입 먹고 여지없이 무너졌다. 입맛이 쓰다는 게 어떤 것인지 확실히 깨달았고 복통을 얻었다.

한국에 가서 입원하기 전까지 앞으로도 고양이처럼 내 액체사료만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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