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힘든 날

20170918

by 도대영

피곤한 월요일의 꿀 같은 전담 시간, 할 일이 산더미였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딸내미와 안해 뿐이었다. 오늘부터 딸내미가 엄마 없이 혼자 어린이집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시간도 두 시간으로 늘었다. 잘하고 있을지 걱정이 돼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어린이집이 끝났을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야, 지연이 어때?”

“엄청 울었지. 사실 오늘 설명을 안 해주고 중간에 슬쩍 나왔거든, 울까 봐. 처음에는 안 울고 잘 놀았대. 그런데 십 분 정도 지나고 나서부터 자지러지게 운 거야.”

“아이고, 놀랐나 보다.”

“그렇겠지. 심하게 울어서 결국 어린이집 선생님한테서 연락이 왔어. 그래서 조금 일찍 데리고 나온 거야.”

“그래, 처음인데 그 정도면 됐지.”

역시나 울었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그것보다 더 큰일이 있었어.”

“큰 일? 무슨 일?”

큰일이라는 말에 놀라서 되물었다.

“지연이가 또 엘리베이터에 갇혔어.”

“어? 어... 쩌다?”

순간 목구멍을 넘어오는 ‘뭐!’라는 말을 간신히 참으며 되물었다.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집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을 못 한 거야. 그래서 내가 열림 버튼 눌러 놓고 순식간에 뛰어서 확인했거든. 정말 1초나 됐을까? 그런데 그 사이에 문이 닫힌 거야.”

“그래서?”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니까 놀라서 얼른 따라서 뛰어갔지. 그런데 우리가 21층이잖아. 도저히 못 따라잡겠더라고. 그래서 결국 18층에서 기다려서 올라오는 걸 다시 탔어.”

“지연이는 괜찮았어?”

“엘리베이터 문 두드리며 엄마 찾고 난리가 났지. 유모차에 타고 있었는데 내가 벨트를 안 잠겄었거든. 그래서 내려왔나 봐.”

“어… 음… 어…”

순간 정적이 흘렀다. 평소의 나였다면 적절한 대답을 하거나 자연스러운 시간 확보 멘트를 했을 순간이었다. 하지만 내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미쳤나 봐 진짜.”


안해는 커다란 자책과 약간의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표정인지, 어떤 마음인지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 뒤에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로 이어졌고 통화는 끝났다.

저녁에 바쁜 일들을 제쳐두고 서둘러 퇴근을 했다. 딸내미는 울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안해는 사그라든 잿불처럼 옅은 색깔의 표정이었다.

“미안 여보, 놀랬지?”

안해는 또다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미안할 게 아니라고 말한 뒤 딸내미를 안아 주었다.

“우리 오늘 외식 하자.”

그래야 할 것 같은 저녁이었다. 동네의 맛있는 파스타집으로 향했다. 딸내미는 신이 났는지 연신 장난을 치며 음식을 먹었다. 찡했다. 딸내미 손을 씻기기 위해 둘이 화장실로 향할 때 물었다.

“지연아, 오늘 엘리베이터에 혼자 남아서 무서웠어?”

“응! 아! 엄마, 어어어~.”

딸내미는 손가락으로 식당 투명 유리 밖으로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엄마가 없었다는 의미로 손과 고개를 도리질했다.

“우리 딸 많이 무서웠겠다.”

“으응……”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조그만 꼬맹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공포를 잘 알기에 가슴이 아려왔다.

“엄마가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니고 실수하셨대. 엄마도 엄청 놀라셨을 거야.”

“응.”

“엄마 용서해줄 수 있을까?”


딸내미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엄마, 휴~우~”

저건 안도하는 모습인 건데?

“아, 엄마가 ‘휴~우~ 다행이다' 하셨을 거라고?”

“앙!”

그래, 안해는 얼마나 놀랐을까? 사색이 됐을 안해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내가 놓친 거였다. 돌아가는 길에 안해에게 말했다.

“여보, 아까 많이 놀랬지?”

“엄청 놀랬지, 내 잘못이야.”

“아냐, 여보 잘못 아냐.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잖아. 일부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래도.”

“아까 내가 여보 놀란 거부터 읽어줬어야 하는데 그걸 못했어. 미안해.”

“아냐, 나는 그래도 괜찮아.”

“뭘 괜찮아, 사실 자연스럽게 공감이 돼야 하는데 너무 놀래서 입이 안 떨어졌어.”

“그런데 아까 있잖아.”

안해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응?”

“평소에 여보였다면 공감을 해줬을 텐데 안 해줬잖아. 그 순간 ‘아, 내가 엄청 큰 실수를 했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정말 내가 미쳤나 봐.”

“아냐, 미안해. 사실 내가 어릴 때 엘리베이터에 갇힌 적이 있거든. 그게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어. 지연이가 같은 경험을 했을 거라 생각하니까 순간 너무 놀랬나 봐.”

그렇게 힘든 하루가 저물어갔다. 나에게도 안해에게도 딸내미에게도 긴 하루였다.

T.E.T, PD, NVC 등 많은 곳에서 공감적 듣기(적극적 경청)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경청은 내가 진심으로 가능할 때 해야 한다. 간혹 연습을 통해 기계적으로 경청을 하는 사람들을 본다. 상황에 적절한 반응이지만 그들이 놓치는 게 있다. 우리는 언어적 표현보다는 비언어적인 표현에서 더 많은 메시지를 읽는다는 것이다. 마음이 따르지 않는데 형식적으로 하는 경청은 거짓 경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관계를 망친다. 도저히 경청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자기 조절을 하며 감정의 온도를 낮추는데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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