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느끼다

20180119

by 도대영

최근에 많은 일들을 겪었다.

딸내미와 함께 하는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딸내미는 괌 체질이었다. 아름다운 모래사장과 시원한 바다를 원 없이 누볐다. 어쩌면 얘는 바닷가에서 살기 위해 태어났나 싶을 정도였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힘들었지만 무척 행복하고 즐거웠다. 도지연 접대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날부터 어려움이 다가왔다. 안해가 독감에 걸린 것이다. 딸내미를 격리시키고 안해를 보살폈다. 집안일을 했다. 뱃속의 토리를 걱정하며 얼른 낫기를 기도했다. 그러다 결국 딸내미까지 독감에 걸렸다. 마침 빡빡한 강의 일정이 시작되던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격리에 들어갔다. 안해는 아픈 몸으로 딸내미까지 돌봐야 했다. 나는 강의 때문에 집을 떠났다. 가족이, 특히 아이가 아프다는 게 얼마나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지 실감했다. 속이 아프고 가슴이 아렸다. 애처로움과 불안함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시간이 흘렀고 집안의 건강함은 돌아왔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 드라마에서나 봤던 그런 장면, 그건 픽션이 아닌 팩션이었다. 힘들어하는 안해 곁을 지키며 다독이고 있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지만 마음은 조금씩 피어날 기미가 보인다. 그 과정에는 딸내미와 뱃속의 토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끝없는 후회와 괴로움을 토로하던 안해도 딸내미의 밝은 얼굴과 위로를 볼 때면 웃음을 되찾았다. 우리는 있다 없고, 없다 있을 수 있는 것을 잃었지만 결코 없어지지 않을 힘을 발견했다. 그래서 아이를 보며 살아간다는 말을 하나 싶었다. 이 조그만 아이가, 아직 본인 앞가림도 잘 못하는 미숙한 존재가 누구보다도 큰 힘을 발휘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굴곡 없는 인생은 없다. 누군가에게는 롤러코스터고 누군가에게는 시냇물이지만 부침으로 가득한 게 인생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꼭 무언가를 크게 잃는다. 사람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시간이나 건강일 수도 있다. 인생에는 치트키가 없기에 아픔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 조르바가 하느님은 악마보다 반 벌거충이 원숭이를 더 싫어한다고 소리쳤 듯, 심적 성장 없는 젊은 날의 성공가도는 오히려 큰 독이 될 수 있다. 나는 그 값을 어린 시절부터 치러 봤고 안해도 치르고 있다.

하지만 괜찮다. 그 가시밭을 빠져나오게 손 잡아 줄 가족이 함께 있으니까. 뻔한 주말 가족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며칠 전에 본 영화 [코코]가 가슴을 찡하게 울린 이유를 공감할 것 같다. 가족이니까. 모든 이해관계와 상황을 떠나 내 편이 되어주는 가족이니까. 세상 제일 든든한 백, 울타리니까. 그리고 아이를 낳기를 너무나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둘째까지도 말이다. 예상되는 어려움은 예상 수준이거나 그 이하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행복은 그 이상이다. 아이는 우리가 낳았지만 우리에게 행복을 낳은 것은 아이들이다.

그래 괜찮다. 충분히 괜찮다. 함께라면 너무나 괜찮다. 다시 걸어가자. 손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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