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몫이 있다

20180124

by 도대영

요즘 딸내미는 말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간단한 문장 구성 정도는 어렵지 않은 수준이다. 놀라운 것은 표현력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사고의 성장이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 장난을 할 수 있다. 본인이 하루 전에 한 이야기를 기억해낼 수 있다. 타당한 이유를 들어 본인의 주장을 펼친다. 부모의 말이라도 납득하지 못하면 거부한다. 이렇게 아이는 커간다.

소통이 원활해지다 보니 관계의 양상도 다양해진다.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옳다고 믿는 양육 방식을 실행하고 있다. 요즘 딸내미와 만들어가는 습관은 정리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그래서인지 몰라도(확실한 근거는 아니다.) 현재의 딸내미는 책 광이다.(현재라고 붙인 이유는 미래는 모르니까^^) 독서광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본인이 글을 읽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신성욱 작가님의 강의를 들으며 독서에 대한 생각이 바뀐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책 읽어요~’가 하루에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다. 주말에 온종일 함께 있으면 2~30번쯤은 읽어준다.(요즘 추구하는 바는 읽어주는 것보다 책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책을 정리하는 게 만만치 않다. 그래서 몇 번 그대로 뒀다. 그러다 보니 딸내미는 원하는 책을 찾지 못하거나 책에 발을 부딪히기도 했다. 특정 책을 읽고 싶어 하면 본인이 찾아오도록 했다. 정리되지 않은 책더미에서 그 책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버지, 도아조요~(도와줘요).”

“그래, 도와줄게. 그런데 지연아, 책이 이렇게 많이 쌓여 있으니 아버지가 찾기 어렵다. 정리하기도 힘들고…… 지연이가 도와줄 수 있을까?”

“...... 네!”

그렇게 몇 번 함께 책을 정리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딸내미는 어김없이 상어 책을 들고 왔다. 요즘 한참 고래상어에 빠져 있다.

“책 읽어줘요~”

“그래~ 그런데 지연아, 책 읽기 전에 아버지가 물어볼 게 있어.”


딸내미는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우리 이 앞에 무슨 책 읽었는지 기억 나?”

“쭈쭈, 아아!”

젖을 먹는 포유류 책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지? 그런데 그 책이 지금 어디에 있니?”

“저~기 있어요.”

“그래, 바닥에 있네. 나중에 상어 책이랑 저기 있는 책들 다 정리하려면 아버지 힘들 것 같아. 원하는 책을 찾기도 힘들고.”

딸내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 감정에 공감했다는 신호다.

“그래서 말인데, 책을 읽기 전에 앞에 읽었던 책을 정리해두면 어떨까?”

“네!”

“고마워. 아버지가 정리 도와줘도 될까?”

“네에~”

그렇게 우리는 함께 정리했다. 몇 번을 반복하면서 우리의 약속이 만들어졌다. 책을 읽기 전에는 앞에 읽은 책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장난감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과정을 반복했고 딸내미는 점차 정리에 익숙해졌다. 매번은 아니지만 장난감의 종류가 바뀔 때는 앞의 장난감들을 정리했다. 가끔은 정리를 즐기는 듯도 했다. 마지막에 레고 장난감을 가지고 논 뒤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면


“아아~ 레고 정리해요~”


라고 먼저 말한다. 무겁기도 하고 시간도 제법 걸리지만 딸내미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자신의 것은 자신이 책임지는 아이가 되어 간다. 그 모습을 보면 무척 뿌듯하다. 딸내미가 우리가 옳다고 믿는 행동을 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고 스스로의 과업에 도전하는 게 좋아서다. 아니라고 생각하면 끝까지 고집 피우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우리 딸내미는 자신의 두 발로 세상에 설 수 있을 것 같다.

아들러는 아이가 추구하는 가장 큰 가치는 소속감이라고 했다. 그리고 소속감은 주어지는 게 아니고 획득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가 소속감을 획득하는 확실한 방법, 가정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과제에 본인이 도전하는 것이다. 부모는 그 과정을 돕기만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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