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7
오늘은 오랜만에 안해가 공부하는 날이다. 나의 바빴던 방학 일정과 딸내미의 사회생활(어린이집) 덕분에 오롯이 둘이서만 하루를 보내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이래서 아이들이 크면 각자의 생활 때문에 시간 보내기가 힘들다고……(응?)
둘이서 보내는 하루는 항상 즐겁다. 물론 안해의 고충을 십분 이해하게 되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둘이서 아침을 먹은 뒤였다.
“지연아, 아버지 이제 웅~ 청소할 건데 괜찮아?”
“아가(자기를 지칭하는 말)도, 아가도!”
그러더니 냉큼 거실 팬트리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청소기가 그 안에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청소기를 꺼내며 물었다.
“지연이 것도 꺼내 줘?”
“네!”
딸내미의 완소 아이템인 뽀로로 밀대를 꺼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청소기 전원을 꽂고 있을 때였다.
“이게 뭐지?”
펜트리를 살펴보던 딸내미가 무언가를 꺼내 들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괌에서 사 온 마카마디아 과자였다! 꿀땅콩보다 고소하고 풍부한 맛 때문에 우리 부부가 사 온 것이었다.
“지연아, 그건……”
“먹어요! 먹고 싶어요!”
딸내미는 이내 그게 먹는 거라는 것을 눈치챘다. 표지에 그려진 마카마디아 그림을 통해 추측한 듯했다. 잔걸음으로 다다다~ 뛰어 오더니 나에게 마카미디아를 내밀었다.
“까주세요.”
‘하아…….’
순간 고민했다. 어떡하지? 과자가 아까운 건 아니었다. 너무 달아서 고민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 과자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소유의 개념이 명확히 잡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딸내미, 이거 먹고 싶어요?”
“네에!”
“그랬구나. 그런데 아버지는 줄 수가 없어.”
딸내미가 세상 가장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건 엄마 과자거든. 엄마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아.”
하지만 과자의 유혹은 너무 컸다.
애닯팠다. 그래도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나는 딸내미를 안아주며 말했다.
“지연이가 엄청 먹고 싶구나?”
“네에!”
“그래, 그렇겠다. 그래도 지연아, 물건은 주인 허락을 받고 가져야 해.”
딸내미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나는 순간 어제의 경험이 생각났다.
“지연이 어제 제나가 지연이 목도리 가져갔던 거 생각나요?”
“네에.”
“그때 지연이 엄청 속상했었지? 그래서 울었잖아.”
그때로 돌아간 딸내미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연이가 이걸 그냥 먹으면 엄마도 속상할 거야.”
시무룩해진 딸내미는 고개를 숙였다. 튀어나온 입이 감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 엄마 나중에 오시면 먹어도 되는지 여쭤볼까?”
“네!”
희망을 얻은 딸내미는 눈이 반짝 빛났다. 그러더니 다시 팬트리로 달려갔다. 손에는 마카마디아 몇 개가 더 들려져 있었다.
‘왜 더 꺼내 온 거지?’
나는 딸내미가 그만큼 먹고 싶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였다.
“아가, 난나 먹어요(나눠 먹어요.)”
“나눠 먹을 거라고?”
“네!”
그리고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봉지를 하나 씩 잡고 놓기 시작했다.
“아버지 꺼~ 엄마 꺼~ 토리꺼~ 아가 꺼!”
“우와, 지연이 가족끼리 나눠 먹고 싶었구나?”
“네에!”
“그런데 지연아, 엄마가 나눠 먹기 싫다고 하시면 어떡하지?”
딸내미의 미간에 다시 주름이 졌다. 그리고 대답했다.
“아가, 엄마 난나요~ 엄마, 아가 난나요!”
“아, 지연이도 엄마한테 나눠주니까 엄마도 나눠주실 거라고?”
“네!”
기특했다. 뱃속의 둘째를 가족에서 빠뜨리지 않고 떠올리는 모습도 고마웠고 평소에 나누는 걸 인식하는 모습도 사랑스러웠다. 나는 웃으며 청소기를 시작했다. 딸내미도 뽀로로 밀대를 밀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마카마디아를 꼭 쥔 채로.
그렇게 청소가 끝난 뒤 창가에 앉았다. 넓은 창을 통해 햇살이 스며드는 이 자리는 우리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 곳이다. 딸내미가 빠져 있는 고래 책을 한참 읽고 있을 때였다. 안해에게서 페이스타임이 왔다.
“지연아~!”
“(지연아, 엄마한테 아까 그거 물어보자.)”
“엄마, 아가 이거 먹어요?”
딸내미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마카미디아를 들이밀었다. 애절하게 바랄 때 사용하는 ‘한 번만 스킬’(손가락으로 숫자 1을 만든 뒤 미간에 대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전문 기술, 만 5세 이상 사용 금지)이 발동되었다. 안해는 이내 상황을 눈치챘다.
“그거 먹고 싶어요?”
“네에……”
“먹어요, 그럼.”
“우와, 지연아. 엄마가 먹으라고 하셨어!”
“우와~!”
나는 딸내미에게 들리게 큰 목소리로 다음 말을 이었다.
“엄마, 지연이가 이거 너무 먹고 싶었는데 엄마 거라서 물어보려고 기다렸어요.”
“우와, 진짜? 지연아, 고마워. 엄마한테 물어봐줘서.”
“네에~”
딸내미는 드디어 마카미디아를 입에 넣을 수 있었다. 기다린 만큼 달콤한 순간이었다.
[긍정의 훈육]에서 제인 넬슨은 만 3~4세부터 본격적으로 나눔 능력이 시작된다고 했다. 만 2세 이하의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논리로 관점을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발달과정상 그렇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은 ‘지금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한다. 그래서 ‘친구에게 나눠 줘야지!’라고 타이르거나 가끔은 힘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명백한 오해다. 아이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시기에 맞는 발달을 이룬다. 오히려 조급한 것은 부모다. 그때는 도덕적으로 타이르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것이 좋다.
우리 딸내미도 얼마 전까지 자기 물건을 친구에게 빌려주지 않았다. ‘싫어!’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울기도 했다. 나누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명확했다. 하지만 안해는 고맙게도 타이르기보다는 아이의 수준을 존중하고 다른 시도를 했다. 다른 장난감을 주거나 똑같은 걸 두 개 주면서 친구에게 나눠주게 했다. 그렇게 딸내미는 나눔을 연습하게 되었다. 지금도 나눔이 능숙한 것은 아니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은 아빠에게조차 한 입도 주지 않는다.(자기 배가 어느 정도 찰 때까지는^^) 그래도 가끔 이렇게 스스로 나누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 자신의 길을 자신의 속도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오늘 딸내미에게 시도한 건 만족 지연 연습이기도 하다. 만족지연 능력이 삶의 성공과 연관성이 높다는 ‘마시멜로 효과' 실험은 너무나 유명하다. 부모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그럼 오늘의 경험이 우리 딸이 만족지연 능력이 높다는 희망찬 증거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일단은 아직 너무 어리다. 마시멜로 실험은 만 4세 이상의 아이들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마시멜로 실험은 후속 실험들이 무척 많으며 다양한 변수들이 만족지연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했다. 즉, 타고난 만족지연 능력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후속 실험에서 도출된 중요한 요인이 바로 ‘신뢰'다. 신뢰 관계가 있는 아이 집단과 불신 관계가 생긴 아이 집단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더니 신뢰 관계 집단의 아이들이 압도적인 수치로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렸다. 만족지연 능력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와 전략이다. 이 둘은 변화 가능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소통이 가능한 순간부터(어쩌면 그 이전부터) 신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약속'과 관련된 신뢰다. 간단하게 말해 아이와 약속한 것은 무조건 지킨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는다.(예를 들어 비싼 장난감을 사달라 조르는 아이에게 ‘내일 사줄게.’라고 달랜 뒤 빠져나가는 것 등) 특히 안해는 이에 대한 믿음과 프라이드가 강하다. 딸내미에게 ‘엄마는 약속하면 꼭 지키는 거 알지?’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실 오늘의 시도도 그것의 연장선이다. 기다리면(마카미디아를 먹지 않고) 시도할 수 있고(엄마에게 물어 봄), 시도하면 결과(마카미디아를 먹게 됨)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연습한 것이다. 이렇게 점차 신뢰라는 포인트가 쌓일수록 관계는 단단해진다. 그리고 위기가 올 때도 든든한 포인트 덕분에 쉽게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