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rible twos

20180210

by 도대영

Terrible twos


미운 두 살을 표현하는 말이다. 미국은 만 나이를 사용하니 우리나라로 따지면 ‘미운 세 살' 쯤 되겠다. 전 세계적으로 아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미운 짓을 하나 보다.

오늘은 우리 딸내미에게도 그런 날이었다. 고집을 부려 외출을 막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아니 아니'가 수 십 번은 튀어나왔고 울음 섞은 ‘엄마~’로 안해를 힘들게 했다.(감정을 표현하는 울음이 아니라 상대를 조종하려는 울음이었다.) 대박은 옷 갈아입기였다. 옷 갈아입는 걸 즐기는 아이가 어디 있겠냐만은 평소 딸내미는 유별나지는 않다. 하지만 오늘은 절대 협조하지 않겠다고 마음이라도 먹은 듯 버텼다. 차분히 설명도 하고 약속도 했지만 거부했다. 이틀 째 입은 내복이기에 갈아입어야 했다. 급기야 뽀로로까지 동원했지만 실패했다. 옷을 갈아입으며 뽀로로를 보기로 했기에 중간에 노트북을 덮었다. 딸내미는 울었다. 안해의 목소리도 점차 올라갔고 내가 시도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하루를 보낸 뒤 잠자리에 들 때였다.

“지연아, 이제 옷 갈아 입자.”

“아니 아니. 싫어.”

“이렇게 더러운데 갈아입어야지. 크롱 병균이 아프게 할지도 몰라.”

“싫어. 안 갈아입을래.”

“바지는 갈아입었는데 왜 윗도리는 안 갈아 입어?”

“(바지는 아까 응가했을 때 내가 응가 묻었다고 하면서 갈아 입힌 거야. 엉덩이 씻는 타이밍에.)”


실랑이는 계속되었다. 안해는 엄청난 인내력을 발휘했지만 그마저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나는 약속이 있기에 그냥 힘으로 갈아 입힐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안해가 여자 아이인지라 내복을 강제로 갈아 입히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해서 하지 않았다. 급기야 안해는 무서움을 선택했다.

“지연아, 혹시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나 친구가 옷을 벗겨? 아니면 만져?”

“아니.”

“하아… 그럼 왜 옷을 안 갈아 입어!”

안해의 목소리에 놀란 딸내미는 눈이 토끼만 해졌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울음을 참고 있는 것이었다. 억지로 웃으며 말이다.(우와, 고집…..)


“안 갈아입으면 어쩔 수 없지. 아빠, 지연이는 옷이 더러워서 같이 잘 수 없으니까 저기 아래쪽에 따로 이불 깔아주세요.”

“네.”

나는 안해의 말대로 따로 이불을 깔았다. 그때부터 딸내미는 울음이 터졌다.

“싫어 싫어! 아가 여기서 잘래.”

“그럼 옷 갈아입을 거야?”

“아니 아니.”

그 뒤로도 몇 번 물었지만 대답은 바뀌지 않았다.

“아빠, 불 꺼주세요.”


나는 불을 껐다. 그러자 딸내미는 울며 베개를 들고 내 옆에 누웠다. 나는 딸내미를 안았다. 딸내미는 더 큰 목소리로 서럽게 울었다. 한참을 토닥이자 울음소리가 잦아졌다.

“지연아, 같이 자고 싶어?”

“네.”

“그럼 옷 갈아입을까?”

“아니.”

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딸내미를 따로 편 이불에 눕혔다. 그러자 딸내미는 다시 큰 소리로 울며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딸내미를 안았다. 침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안해도 고민하는 눈치였다.

“(여보, 한 번 더 눕히고 돌아오면 그냥 모른 채 두자.)”

“(알았어.)”

한 번 더 시도했고 딸내미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그리고는 이내 잠이 들었다. 한참을 울었으니 지쳤으리라. 적막이 찾아온 뒤 우리는 함께 누워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딸내미 진짜 대박이다.”

“그러니까. 나 쟤랑 힘겨루기 해서 진 거야?”

“지연이가 눈치 없이 고집부리는 아이가 아닌데 이상하네. 좀 걱정된다.”

“나도 그래. 혹시 무슨 일 있나 싶어서.”

“내일 내가 물어볼게.”

“내가 좀 심하게 몰아붙였나? 사실 그냥 입고 자게 해도 되는 건데.”

“그럴 수도 있지. 엄청 더러운 것도 아니고. 옷이야 내일 내가 목욕하자고 하면 벗을 테니까.”

“아 근데 저 조그마한 꼬맹이한테 지는 것 같아서 싫었다고.”

“그래, 아무튼 고집 진짜 대박이야.”

“지금 우리 생각대로 대화로 키워야겠어. 누르면 엄청 엇 나갈 스타일이야.”

“아 피곤해.”

그렇게 우린 잠자리에 들었다. 엄마 아빠 닮아 고집이 세다는 딸내미와 함께.

긍정의 훈육에서 강조하는 단호함은 일관성이다. 동의를 하고 정해진 것은 반드시 밀고 나가는 것이다. 나는 이 단호함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래서 가끔 함정에 빠진다. 아이의 요구에 휘둘리지 않고 밀고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 그래서 동의의 과정이 있었는지 잊는 경우도 있고, 동의를 했다면 매우 강한 드라이브로 밀어붙이기도 한다. 그때 상황의 흐름이나 상대의 감정을 잠시 놓친다. 그럴 수도 있지만 더욱 민감하게 캐치해야 하는데 말이다. 부모니까.

‘아이의 필요에는 모두 응답하되 요구에는 모두 응답하지 말라.’는 제인 넬슨의 말처럼 그 균형을 잡는 것이 어렵다. 지금 아이가 약속을 안 지켰다고 커서 계속 약속을 안 지키는 건 아닌데 말이다. 다행인 것은 긍정의 훈육 조차 완벽함의 표현이 아니라 성장 과정의 반성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마음 무겁게 잠들어도 내일은 웃으며 사랑을 표현할 것이라 믿는다. 완벽함보다는 경향성을 믿는다.

PS. 다음 날, 벨루가랑 목욕하자는 말 한마디에 딸내미는 쉽게 내복 윗도리를 벗었다. 목욕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가 우려했던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딸내미 그냥 윗도리 갈아입기 싫었어?”

“응.”

“그럼 똑같은 핑크 내복 사주면 갈아입을 거야?”

“아니.”

하아…… 너무나 솔직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어이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미운 세 살. 아니, 어려운 세 살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꿀 같은 마카마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