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3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집을 나섰다. 딸내미 병원을 들렸다 어린이집에 데려다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가, 할머니 친구 선생님, 안 울어요.”
나서기 전부터 딸내미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할머니 친구 선생님(소아과 선생님이신데 연령대가 할머니랑 비슷해 그렇게 부른다.) 병원에서 진료받을 때 안 울었다고 엄청 자랑했기 때문이다. 오늘이 그걸 증명할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우와, 진짜? 그럼 오늘 아버지한테 보여줄 수 있어?”
“응!”
우리는 포무도 당당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날씨도 어느 정도 풀렸고 노랫소리도 흘렀다.
“도지연, 들어오세요.”
드디어 딸내미 진료 차례가 되었다. 우리는 대기실에서 나오던 뽀로로를 뒤로한 채 진료실로 들어갔다.
“아가 언니 안 울어요!”
“자기가 이제 누나라서 안 운대요.”
“어머, 그래? 얼마나 씩씩한지 볼까?”
의사 선생님은 침착하게 진료를 시작했다. 나는 딸내미 앞에 앉았다. 딸내미 눈빛에서 단호한 결의를 느낄 수 있었다. 청진기로 심장 소리를 듣고 귀를 살폈다. 딸내미의 표정에는 미동도 없었다.
“우와, 우리 지연이 진짜 안 우네? 대단하다!”
이제는 하이라이트, 콧물을 뽑는 시간이었다. 콧물 흡입기는 특유의 감각 때문에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다.(사실 어른인 나도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아빠, 이것 봐요. 지연이 안 울어요.”
“응!”
딸내미는 꽤 길어진 흡입에서 꿋꿋하게 버텼다. 그리고 진료가 끝났다.
“우와, 우리 아가씨 진짜 하나도 안 울었네. 대단해!”
의사 선생님이 지연이를 안아 주셨다. 지연이는 내려와서 당당하게 말했다.
“아가, 토리 누나, 안 울어요!”
“응? 뭐라고?”
“아, 자기가 토리 누나라서 안 운대요.”
안해가 딸내미의 말을 해석해주었다.
“지연이 선생님에게 토리 소개해 드릴 거야?”
“응!”
그 순간 딸내미가 갑자기 안해의 티셔츠를 걷었다. 그리고 안해의 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토리!”
당황한 안해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 틈을 타 딸내미는 안해의 히트텍 마저 걷어버렸다. 맨 살이 드러났다.
“토리 여기 엄마 배에 있어요!”
우리는 모두 웃음이 터졌다. 부끄러워진 안해는 얼른 딸내미에게 나가 있으라고 손짓했다. 나는 딸내미의 손을 잡고 진료실을 먼저 나왔다.
어린이집에 딸내미를 데려다준 뒤 안해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여보, 나 아까 많이 창피하더라.”
“그랬겠다. 나도 갑자기 그럴 줄은 몰랐지. 엄청 웃겼어.”
“여자 선생님이니 망정이지 남자 의사였으면 어쩔 뻔했어.”
“그러니까. 동생을 엄청 자랑하고 싶었나 봐^^”
당황하던 안해의 모습이 또 떠올라 웃음이 났다. 병원을 당당히 이겨내는 또지의 성장이 놀라웠고 예측할 수 없는 아이의 행동이 즐거웠다. 이게 아이 키우는 재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