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0
요즘 딸내미는 해양 생물에 푹 빠져 있다. 특히 상어와 고래를 좋아한다. 동물 전집의 상어 책과 중고 서점에서 사 온 고래 책은 하루에도 몇 번 씩을 읽어달라고 한다. 나도 고래랑 상어를 좋아하기에 읽는 것은 나의 몫이다. 상어 캐릭터를 보고는 안해가 ‘고래네.’라고 하니까 ‘아니야, 저거는 고래 상어야.’라고 말해 안해를 놀라게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야금야금 집 안에 친구들이 생겼다. 처음에는 딸내미가 ‘혹등고래랑 범고래 온다!’라고 외친 게 시작이었다. 어느새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가정한 역할놀이를 할 수 있게 된 우리 딸, 집 안을 헤엄치는 혹등고래와 범고래가 단짝이다.(물론 상상 속의 존재다.) 식탁에서 밥을 먹을 때도 고래들은 발 밑에 와 있다. 혹등고래를 위해 아버지와 둘이 나란히 앉아 새우 낚시를 한다. 그러던 중 내가 인터넷에서 고래, 상어 물놀이 장난감들을 발견했다. 그 무렵 목욕을 싫어했던 딸내미가 떠올랐고 멋진 방법이 되리라 생각했다. 백상아리가 오고 돌고래도 왔다. 고래상어, 펭귄 등등 친구들이 속속 도착했다. 딸내미의 목욕 거부는 완전히 사라졌다. ‘목욕할까?’라는 말에 옷을 훌렁 벗고 먼저 뛰어간다. 물론 손에는 친구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아쉬움이 하나 있었다. 딸내미가 제일 좋아하는 건 혹등고래. 그런데 혹등고래는 아무리 뒤져도 물놀이 장난감을 찾을 수 없었다. 마트, 인터넷 쇼핑몰, 심지어 아쿠아리움까지 뒤져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흔한 인형조차 볼 수 없었다. 목욕을 하면 범고래를 신나게 헤엄치게 하며 ‘혹등고래는 어디 갔지?’하는 딸내미의 표정을 더는 참기 힘들었다. 나는 여기저기 구글링을 했고 결심했다.
“여보, 나 택배함 좀 다녀올게.”
“택배? 택배 시켰어?”
“응, 중요한 거야.”
나는 무인 택배함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더 빠른 속도로 돌아왔다.
“딸내미, 아버지가 선물 가져왔지요~”
“선물? 뭐야?”
딸내미는 상기된 내 얼굴을 보며 의아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박스를 뜯기 시작했다.
“짜잔~ 이게 뭐게?”
“우와, 범고래다!”
같이 주문한 작은 사이즈 범고래가 먼저 나왔다. 딸내미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바다코끼리!”
“바다코끼리다!”
그 뒤로 벨루가가 나왔다. 드디어 마지막이었다.
“지연아, 이것 봐.”
“우~~~~ 와~~~”
딸내미 눈 앞에는 늠름한 혹등고래 한 마리가 나타났다. 피규어 사이트를 뒤져 찾아낸 혹등고래는 제법 그럴싸한 모양이었다. 딸내미는 폐활량을 자랑하 듯 긴 감탄의 소리를 냈다.
“엄마, 이것 봐요! 혹등고래예요!”
“우와, 진짜 혹등고래네?”
딸내미는 방방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니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이내 딸내미는 친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목욕을 하고 나면 일광욕을 시켜주고, 기가 막히게 줄을 맞혀 세운다. 뽀뽀도 해주고 아침에 일어나면 인사를 한다. 정성을 가득 먹는 친구들이었다.
한 참을 정리하다 딸내미가 갑자기 뛰어 왔다. 그리고 내 다리를 껴안더니 외쳤다.
“아빠, 고마워요!”
감동이었다. 이 맛에 옛날 아버지들이 퇴근하면서 그렇게 무언가를 사 오셨구나 싶었다. 딸내미는 다시 고래들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반전의 한 마디를 날렸다.
아, 이럴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