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31
며칠 전, 안해를 기겁하게 하는 일이 있었다. 딸내미가 누가 버린 자전거를 주워 온 것이다.
“이게 뭐야?!”
“야, 좋다고 내리지도 않더라.”
“아무리 그래도 누가 버린 걸 주워 오면 어떡해.”
딸내미를 두둔하는 어머님을 쳐다보는 안해의 눈초리가 날카로웠다. 그럴 만도 했다. 자전거에는 폐기물 스티커까지 떡하니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연아, 엄마가 새 자전거 사줄게. 이거 버리자.”
“안돼. 이거 탈 거야.”
이미 자전거에 꽂힌 딸내미는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안해는 포기하지 않았다. 두 모녀는 참 닮았다. 그리고 주말, 안해와 나는 딸내미를 데리고 백화점을 향했다.
“지연아, 여기 예쁜 핑크 자전거가 있어. 우리 자전거 볼까?”
안해는 바쁜 걸음으로 딸내미를 이끌었다. 딸내미도 일단은 신났다. 그리고 도착한 장난감 코너, 그런데 딸내미가 탈 만한 자전거가 없었다. 실망한 엄마는 점원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딸내미는 달랐다. 금세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쇼핑 시작했다!’
그리고 금세 콩순이 냉장고 앞에 섰다.
“엄마, 이거 사주세요.”
“응?”
방심하던 엄마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말로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가격도 꽤 비싼 장난감. 그리고 약속하지 않은 충동적 구매는 허용하지 않은 게 우리의 원칙이었다. 일단 내가 나섰다.
“지연아, 이 장난감 많이 가지고 싶구나.”
“응.”
“그런데 지연아, 가지고 싶다고 바로 가질 수는 없어. 하지만 엄마가 방금 사준다고 약속했으니까 사줄게.”
“진짜?”
“대신 이거 말고 따로 주문해줄 거야. 그럼 월요일날 집에서 받을 수 있어. 왜냐하면 여기 있는 걸 지연이가 가져가면 다른 친구들이 만져 볼 기회가 없잖아. 그럼 속상하지 않을까?”
“그럼 택배 아저씨가 가져와?”
“그럼.”
옆에서 안해가 나섰다.
“맞아, 그리고 장난감은 약속하고 왔을 때만 사는 거잖아. 다음에 약속하고 와서 장난감 또 사자.”
“응, 그래.”
딸내미는 순순히 장난감을 놓았다. 역시 힘보다는 설득이 통하는 아이였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 짓고 걸음을 옮겼다. 건너 매대에서 유아용 신발을 팔고 있었다.
“어? 이거 괜찮은데?”
안해는 관심을 보이고 쇼핑을 시작했다. 사이즈는 있는지, 다른 색상은 없는지 직원에게 물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딸내미가 안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나는 놀랐다. 딸내미의 의도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해는 점원이랑 이야기하느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그냥 약속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딸내미가 안해 손을 끌기 시작했다.
“엄마, 가요.”
“응? 지연아, 어딜 가자고?”
“가요. 가요. 약속했어요.”
“그러니까 어디를?”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알려줬다.
“여보 방금 지연이랑 약속했잖아.”
“응?”
“아까 장난감은 약속하고 왔을 때만 사는 거라고 말했잖아. 그래서 얘 지금 여보랑 약속한 거야.”
“뭐어?!”
그랬다. 장난감을 당장 가지고 싶었던 딸내미는 혼란을 틈 타 냉큼 안해와 약속을 한 것이었다. ‘눈 뜨고 코 베인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런 딸내미의 기지가 귀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어느새 이렇게 커버린 걸까……
결국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감은 주문하기로 했다. 돌아오는 엘리베이터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봤지? 이제 얘랑 말할 때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어, 그래야겠어. 깜짝 놀랐다니까? 말하면 잊어버리지도 않아.”
“우리가 그렇게 키웠잖아. 말하면 꼭 지켜야 해.”
“그러니까.”
우리의 방식이 부모가 ‘편한’ 방법은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다. 힘으로 누르거나 달래면 더 편할 테니까. 하지만 이 시기에만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더 컸을 때는 원칙을 가지고 대화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 아이가 힘에 눌리거나 말한 걸 지키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원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