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1
퇴근 후에 강의가 있었다. 선생님들의 열기에 피곤했지만 행복하게 마쳤다. 강의가 끝나고 핸드폰을 켰더니 안해로부터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내용은 또지가 처갓집에서 놀다 손목을 다쳤다는 거다. 넘어졌는데 그 뒤로 손목을 꼭 잡고 다닌다고 했다. 울면서 심각한 얼굴. 웬만큼 아픈 건 툴툴 털고 일어나는 스타일이라 이 정도 반응은 무척 심각할 가능성이 컸다. 놀란 안해와 장모님께서 병원을 데려갔고 의사는 몇 번 만져본 뒤 접골로 손목을 치료해주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장모님께서 사색이 되신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얼른 가겠다고 말한 뒤 차를 몰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모님 진짜 많이 놀라셨겠다.’
장모님께서는 여장부 스타일이시다. 시원시원한 성격에 솔직하시며 뭐든지 척척 해내신다. 우리도 또지를 낳고 난 뒤 더 자주 신세를 지고 있다. 감정 표현을 크게 안 하시지만 나는 장모님이랑 따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속으로 감정을 많이 느끼시는 스타일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만 표현하지 않으실 뿐.
그래서 꽃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예쁜 꽃다발을 하나 만들어 들고 갔다.
장모님께서는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그 대처 과정에서 또지가 얼마나 영민한지를 강조하셨다. 말씀하시는 내용에는 없었지만 목소리, 말투에서 많이 놀라셨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장모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 ‘애 본 공은 없다.’ 아이는 오롯이 부모의 몫인데 여러 여건 때문에 주변 가족들의 신세를 질 때가 있다. 우리 부부는 그것이 당연하지 않고 고맙고 죄송한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더 노력한다. 안해가 가끔 툴툴대기는 하지만 나보다 더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이 안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아버지, 장인 장모님 생각은 그렇지 않으신가 보다. 당신 자식의 자식이라 더 귀하고 애달프고 소중하신 듯하다. 이래서 부모의 은혜는 죽을 때까지 이어지나 보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이는 부모만 키우는 게 아니다. 아이는 가족의, 마을의, 사회의 사랑으로 크는 거다.
PS. 모든 문제 해결에는 공감이 먼저다. 그것은 아이든 어른이든 마찬가지이다. 문제 해결은 ‘격려’하면 되지만 그것은 공감이 우선되어야 가능하다. 행동은 받아들이지 않되 감정은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