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글 말고 능글

20180522

by 도대영


요즘 딸내미는 장난이 무척 심해졌다. 비글을 넘어 이제는 ‘능글'이 가득하다. 성장하면서 제법 맥락을 파악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향상되었다. 눈치가 생겼으며 텍스트 대화가 아니라 실제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가끔은 눈에 보이는 능글맞음이 너무나 귀엽다.

주말에 아웃렛에 갔다. 필요한 옷도 사고 기다렸던 빙수도 먹었다. 그리고 딸내미에게 예전에 약속했던 장난감을 사주기로 했다. 우리가 종종 들리는 장난감 전문점에 갔다. 가기 전에 무엇을 살 건지, 어떻게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연아, 지난번에 아버지가 약속했으니까 오늘 슈퍼윙스 장난감 하나 살 거야. 뭘 골라도 좋은데 한 개만 사는 거야.”

“응, 알았어.”


딸내미는 한참 빠져 있는 슈퍼윙스 변신 장난감을 하나 더 가질 생각에 들떴다. 장난감 가게는 천국이었다. 다양하고 화려한 장난감들로 가득했다. 슈퍼윙스 캐릭터들도 자리 잡고 있었다.


“딸내미, 여기 슈퍼윙스 친구들 있다. 누구 살지 한 번 살펴볼까?”

“음……”

“우선 여기 도니! 도니 있네?”


도니는 지연이가 가지고 싶어 하던 캐릭터였다. 그래서 먼저 권했다.


“음…….”


하지만 의외로 딸내미는 고민을 했다. 나는 혹시나 싶어 다른 캐릭터들도 권했다.


“여기 지연이가 없는 것들 아버지가 다 빼볼게. 우주에서 날아오는 샛별이도 있고, 에이스도 있네. 봉반장도 있고 다 알지 할아버지도 있다. 지연이 누구 고를 거야?”


덥석 도니를 고를 줄 알았던 딸내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관심사가 그새 또 이동한 모양이었다.


“지연아, 천천히 생각해보고 올까?”

“음…… 아빠, 그런데요.”

“응?”


딸내미의 질문이 이어졌다.


“내일은 우리 무슨 슈퍼윙스 사러 올까?”

“응? 뭐라고?”

“슈퍼윙스.”


내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내가 들은 내용이 정확했다. 고민하던 딸내미는 은근슬쩍 떠 사고 싶다는 의중을 비춘 것이었다. 그 생각을 이렇게 돌려 말하는 게 놀랍고 신기했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니었다.


“지연아, 우리 내일은 안 올 거야. 오늘 사는 장난감 가지고 놀다 나~중에 혹시 기회가 생기면 그때 또 사줄게.”

“그래? 알았어. 그럼 샛별이!”


딸내미는 하얀 로켓 모양의 캐릭터를 샀다. 그리고 무척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다. 딸내미와 함께 인형 놀이를 하고 있었다. 딸내미는 아기 판다를 맡았고 나는 아빠 판다였다.


“아빠, 아빠.”

“응, 아기 판다야.”

“미끄럼틀 탈래요?”

“그래.”


우리는 팬더곰이 되어 신나게 인형 놀이를 했다. 그러던 중 딸내미가 말했다.


“아빠 팬더곰~”

“응, 그래~ 우리 아기 팬더곰.”

“슈퍼윙스 하나 사러 갈까요? 도니고 없고 다 알지 할아버지도 없는데.”


어제 산 슈퍼윙스 이야기가 또 나왔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응? 어제 사면서 이야기했었잖아요. 슈퍼윙스를 또 사자고?”


나는 일부로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딸내미가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 아기 팬더곰이 말한 거잖아. 나 말고 아기 팬더곰.”


딸내미는 능청을 떨며 아기 팬더곰을 내밀었다. 자기가 한 말이 아니라 아기 팬더곰이 한 말이라는 의미였다. 나는 그 능청에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FM 같은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원칙과 약속은 언제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답과 공식 대로만 풀리는 게 인생이라는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강팀은 매년 우승이고 약팀은 매년 꼴찌일 텐데. 그래서 다양한 시도를 하며 그 시도들은 변칙적이고 지극히 AM이다. 목적지향적인 그 태도가 때로는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도 하고 우리를 성장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융통성과 시도는 맥락을 읽고 활용할 줄 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하나의 인격체로, 독립적인 생명체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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