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1
하루 종일 외출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하고 지친 우리를 맞이한 건 집안일들이었다. 나는 지연이 저녁을 먹이고 안해는 빨래를 널고 있었다. 오늘 메뉴는 고기와 밥, 그리고 김이었다.
“지연아, 밥도 한 입 먹을까?”
“으으!”
딸내미는 고개를 저으며 밥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고기만 냉큼 집어 먹었다. 딸내미의 밥 롤러코스터가 또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도 아침에는 밥을 잘 먹고 점심 때는 거의 먹지 않았다. 그리고 맞이한 저녁상에서 딸내미는 고개를 젓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나 먹었을까? 그래도 고기 흡입 사이에 간헐적으로 밥을 먹더니 이제는 아예 밥을 입에 대지 않기 시작했다. 여러 방법으로 유혹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우선 고기라도 먹이자는 생각에 고기를 내가 먹이기도 하고, 딸내미가 스스로 먹게 했다. 그렇게 얼마를 먹던 딸내미가 양손으로 고기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지연아, 고기를 주무르지 말고 하나 씩 집어 먹어요. 아니면 포크로 먹든지.”
하지만 고기를 주무르는 게 재미있었는지 딸내미는 나를 힐끗 보고는 다시 고기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음식으로 장난하는 모습에 나는 안 되겠다 싶었다. 접시를 내가 들고 하나 씩 먹이려고 하는 순간 고기를 주무르던 딸내미의 양손이 더 빨라졌다. 그리고 고기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말했다.
“지연아, 지연이가 흘렸으니 지연이가 고기 치워요. 이렇게 손으로 주워서 여기에 담으면 돼.”
아직 어려 무언가를 많이 흘리는 딸내미. 그럴 경우 화를 내거나 다그치지 않지만 행동에 책임은 지게 한다. 그래서 흘린 것을 줍게 하거나 함께 줍는다.
“으하헤헤으후~”
하지만 딸내미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소리를 내더니 바닥에 떨어진 고기를 주워 먹고, 손으로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일단 지저분한 것을 처리하고 설명하자는 생각에 나는 바닥에 묻은 기름기를 닦으며 고기를 치우려 했다. 그때였다.
‘탕 탕 탕 탕탕탕'
소리에 돌아보는 순간 내 어깨에 무언가 부딪혔다. 그것은 또지의 물컵. 딸내미가 물을 마신 뒤 물컵을 바닥에 던졌고 튕긴 물컵이 내 어깨에 맞은 것이다. 그 소리에 빨래를 널던 안해도 놀라 쳐다보았다.
나는 잠시 후 딸내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지연아, 물건을 바닥에 던지면 물건도 아파. 그리고 지연이가 던진 물컵에 아빠도 어깨를 맞아서 아프고 속상해.”
“으하헤헤~”
딸내미는 여전히 딴청이었다.
“여보, 무섭게 하지마.”
내가 관철하기를 할 거란 것을 직감한 안해는 딸내미가 무서워할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나에게 말했다. 나도 무섭게 할 생각은 없었다.
“우선 물컵부터 주워서 상에 올려놓을래? 그리고 아빠 아프니까 ‘호~’ 해주고 사과해주세요.”
나의 말에 딸내미는 힐끗 물컵을 보았다. 그러더니 다른 곳으로 휙 걸어 가버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런 딸내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안해가 나섰다.
“지연아, 아빠가 지연이가 던진 물컵 때문에 아야하셨대. 그래서 사과해야해. 우선 책임을 져야 하니까 물컵부터 주워서 살살 놓자. 힘들면 엄마랑 같이 할까?”
그리고는 딸내미 손을 잡고 쓰러져 있는 물컵을 향해 걸어갔다. 그 순간.
“꺄아~!”
우리의 기대와 달리 딸내미는 물컵을 다시 발로 차 버렸다.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지켜보았고 딸내미의 손은 잡고 있어 훈육 Zone에 있던 안해는 다시 딸내미를 물컵으로 데려갔다.
“지연이 발로 차지 말아요. 손으로 주워요.”
“으으으~”
딸내미는 이번에도 줍지 않고 발로 컵을 건드렸다. 그리고는 엄마 손을 놓고 다른 장난감으로 향하려 했다.
안해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무서운 목소리를 내며 딸내미 엉덩이를 팡팡했다. 하지만 내공이 강해진 우리 딸내미, 울지도 않고 몸을 뒤척이며 버티고 있었다. 점차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던 우리는 순간 빠져나와 알게 되었다. 딸내미와의 힘겨루기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지연이 지금 사과할 마음이 없구나. 컵을 줍고 사과할 준비가 되면 와.”
그렇게 우리는 함께 빨래를 널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부러 딸내미를 쳐다보지 않았다. 안해가 나지막이 말했다.
“힘겨루기 맞지?”
“응.”
“왜 미안하다고 안 하려는 거지?”
“이제 본격적으로 자기 고집이 생기는 거겠지. 그냥 말하기 싫은 걸지도 몰라.”
그때였다.
‘쾅쾅쾅!’
딸내미가 장난감 밀대로 바닥을 치며 우리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본 우리는 반응하지 않고 다시 빨래를 너는데 집중했다.
“왜 저렇게 쿵쿵대는 거야.”
“관심 끌기.”
예상했던 관심이 없자 딸내미는 슬그머니 장난감을 놓았다. 쿵쿵 소리는 더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참을 맴돌더니 빨래 건조대를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는 빨래를 너는 우리를 흉내 내며 빨래를 만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힐끔힐끔 우리 얼굴을 살폈다.
“뭐 하는 거지?”
“빨래 너는 걸 도우면서 잘 보이고 싶나봐.”
안해는 일이 풀리겠다 싶었는지 딸내미를 향해 말했다.
“지연이 아빠한테 사과할 준비됐어?”
이어서 나도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지연아, 아까 아빠 아팠어. 어깨 호~ 해주세요.”
하지만 딸내미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소파 위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연이가 아직 준비가 안 되었구나. 그럼 준비되면 말해.”
그렇게 딸내미와 우리 간의 총성 없는 불편한 심리전이 이어졌다. 딸내미는 봉봉이(자신이 타고 다니는 이동 식 케리어)를 타고 달려와 부딪히기도 하고 칭얼대기도 하고 주변을 맴돌면서 계속 관심을 받으려 했다. 우리는 두 어 번 더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딸내미는 거부했다.
“지연이 준비됐어? 된 거야?”
안해는 딸내미가 속으로는 안쓰러웠는지 점차 사과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나는 안해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더 시간을 길게 봐도 될 거라는 신호였다. 안해는 이내 이해하고 TV와 집안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쯤 더 흘렀다. 안해는 소파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었고 나는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때 딸내미가 그림책을 한 권 들고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는 쭈뼛쭈뼛 책을 내밀었다. 연신 내 손에 책을 들이밀고 있었다.
“지연아, 책 읽고 싶어요?”
“앙.”
“알았어 읽어줄게. 그런데 아빠 어깨 아팠는데 사과해주세요.”
그러자 딸내미는 얼굴을 내 어깨에 들이밀더니 연신 ‘호~ 호~’ 하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입술이 동그랗게 말려 작은 입김을 뿜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던 안해는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나도 너무 기뻐 지연이를 꼭 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우와, 지연이가 호~ 해주니까 아빠 이제 하나도 안 아프다. 사과해주는 거야?”
딸내미는 나를 보며 고개를 까딱했다. 이건 딸내미의 사과 방식이었다. 나는 가뿐해진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책을 읽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침대에 함께 누웠다. 안해가 딸내미 약을 가지러 간 사이 말했다.
“지연아, 아까 아빠한테 사과해줘서 고마워. 사과하는 건 엄청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그걸 지연이가 해내다니. 사랑해.”
“앙!”
“그럼 우리 기념으로 춤출까?”
“앙!”
딸내미는 가장 좋아하는 상어가족 사운드북을 들고 왔고 우리는 침대에서 상어 가족 노래에 맞춰 신나게 춤을 췄다. 곧 약을 가지고 온 안해까지 합류했다. 우리는 이렇게 신나는 가족이었던 것이다.
“여보.”
“응?”
“지연이가 이 상황을 다 이해했을까?”
“그럼. 세세한 부분까지 다는 아닐지 몰라도 흐름이나 느낌은 다 이해했지. 그리고 지금의 경험이 감정이랑 엮여서 고스란히 뇌에 저장되는 거야.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보면 기억 구슬이 감정의 색깔을 입고 저장되듯이.”
“혹시 너무 애 의지를 꺾은 거는 아닐까? 정답은 없으니까 모르겠다.”
“정답이 없으니까 옳다고 믿는 걸 실천하는 거지. 그리고 나는 우리 방법이 나쁘지 않은 거 같아. 적어도 아까 화를 내거나 다그치지 않았잖아.”
얼마 전에 친한 육아 동기들로부터 지연이가 울거나 원하면 너무 들어주는 것 같다는 말을 들어 머리가 복잡해져 있던 안해는 오늘 일로 더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안해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관철하기는 단호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방법이고 아이가 울거나 떼를 써서 무언가를 얻는 경험을 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에는 동의해. 하지만 그들이 본 건 그 ‘행동' 뿐이잖아. 관철하기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전제 조건이 있어. 여보는 그 사람들이 말한 상황에서 지연이한테 허락해준 내용이 정말 들어주면 안 되는 걸 들어준 것 같아?”
“아니, 그건 아닌데.”
“관철하기는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해. 하나는 (지금 지연이에게 100%는 어렵겠지만) 결정할 때 아이와 함께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예 : 하루에 과자를 몇 개까지 먹을까? (논의 후) 두 개까지 먹는 걸로 정했다.) 두 번째는 정해진 건 아이랑 부모 함께 예외 없이 지켜야 하고.(울건 떼를 쓰건, 부모의 감정이 어떻든). 예를 들어 조금 전에 고구마를 먹는 상황에서도 그래.”
그전에 우리는 딸내미에게 고구마를 간식으로 줬다. 안해는 친절하게 껍질을 벗겨 줬지만 딸내미는 숟가락으로 떠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숟가락을 주었고 안해는 딸내미가 달라고 한다고 너무 들어준 거 아닐까라는 질문을 했다.
“그 상황이 왜?”
“여보 생각에는 손으로 먹는 것만 되고 숟가락으로 먹는 건 옳지 않은 방법이었어?”
“음…… 아니, 그건 아닌데?”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숟가락으로 먹든 손으로 먹든 크게 상관없다고 판단했지. 그래서 들어준 거야.”
“하지만 손으로 먹어야 된다고 부모가 말한 상황이잖아.”
“아이들이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안 돼’래. 부모는 아이에게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지시하는 거지. 그리고 다른 방법에 대해서는 ‘안 돼'라고 하는 거야. 그러다 보니 아이는 스스로 방법을 찾기보다는 부모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그 과정에서 최선은 아니지만 효과가 있는 차선책들은 사라지게 되는 거지. ‘손으로 먹는다'는 방법은 최선의 방법일 수는 있지만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거든. 여보 육아 동기들이 걱정한 건 어떤 부분인지 알아. 아이가 울음이나 떼를 통해 무언가를 얻는 경험을 하는 것에 대한 우려지. 나도 동의해. 하지만 그전에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 부모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들이민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해. 선택이 전제되지 않은 관철하기는 T.E.T에서 말하는 제1의 방법, 즉 부모가 힘으로 아이를 이기는 것밖에 안 돼.”
“흐음……”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기준과 다른 기준을 보면 ‘저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한 것일 가능성도 크고.”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말 어렵다. 아이가 하나의 인격체로 커 갈수록 더 많은 고민이 생긴다. 나도 관철하기에 대해 강의에서 많이 이야기하고 다니지만 정작 내 아이가 고집을 피우자 순간 감정 온도가 훅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육아에서 옳다고 믿는 게 있다. 바로 믿음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 방식이 나쁘지 않다는 믿음, 아이에 대한 믿음, 그리고 함께 하는 배우자에 대한 믿음이다. 그럼 최선의 방법이 아닐지 몰라도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