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9
“심심하다.”
오늘 최고의 유행어였다. 우리는 소래습지생태공원을 걷고 있었다. 날씨는 좋았고 평화로웠다. 지연이는 소풍을 핑계 삼아 군것질에 매진했다. 하이라이트는 우산 모양의 별사탕. 걷는 내내 그걸 먹느라 앞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지연아, 이제 그만두고 걷다가 심심하면 또 먹는 거 어때?”
라고 말했다. 그러자 지연이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떼었다. 그러더니 1분쯤 지났을까? 크게 외쳤다.
“나 심심하다! 하나 먹어야겠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우리는 알면서 속아주었다. 그렇게 심심하다는 말을 몇 분 간격으로 들으며 출입구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때 딸내미가 옆 공터에 관심을 보였다.
“지연아, 내려가서 놀고 싶으면 놀아도 돼. 놀까?”
“응.”
아래로 내려갔다. 원형의 공터에는 꼬마 몇 명이 놀고 있었다. 제일 큰 여자 아이(2학년쯤?) 주도 하에 고만고만한 꼬마들이 잠자리채와 공으로 신나게 놀고 있었다. 딸내미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연아, 같이 놀아 보고 싶어?”
“응.”
지연이는 수줍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엄마랑 같이 가서 놀자고 말해볼까?”
“엄마가……”
“같이 가자.”
쑥스러웠던 딸내미는 엄마 손을 잡고 무리로 향했다. 그리고 수줍지만 당당하게 말했다.
“나 한 번만 같이 놀아도 돼?”
그러자 무리의 리더 격인 여자 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여러 번 같이 놀아도 돼. 이리 와서 같이 피하기 게임하자.”
딸내미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여자 아이가 잠자리채를 장애물처럼 돌리자 딸내미는 냉큼 점프를 했다. 하늘에 닿을 듯 진지하고 열심히 뛰었다. 몇 번 하자 요령이 붙었는지 제법 박자도 잘 맞추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공 뺏기도 하고 장애물 피하기도 하며 놀았다. 딸내미의 얼굴에서 점점 긴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리들이 부모의 외침 하에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잠시 우리 곁으로 와서 사탕을 하나 먹은 지연이는 당황했다. 같이 놀아야 하는데 떠나는 분위기였다. 지연이는 그 무리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망설이며 섰다. 애처롭게 무리 쪽을 바라보며, 한 발을 뗄까 말까 고민하며. 뒷모습만으로도 지연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망설여질지, 얼마나 간절한지. 하지만 우리가 해줄 건 없었다. 그 발걸음은 지연이의 몫이었다. 우리는 애처롭게 뒤에서 지켜봤다. 사실 지연이는 유독 처음에 다가가는 걸 어려워했다. 성향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신경이 쓰였다. 이번에도 망설임과 아쉬움이 남으리라 생각했다.
그때였다. 예상과 달리 지연이가 성큼성큼 무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뭐라고 열심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지연이를 처음 본 아이들 엄마가 지연이에게 질문을 시작했고 지연이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작지만 옹골찬 목소리였다. 멀리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남자아이 하나가 지연이에게 과자를 주었다. 지연이는 고맙다고 하더니 홱 돌아서 우리에게 뛰어 왔다. 받은 과자를 전리품처럼 치켜든 채로. 얼굴에는 만족감과 설렘이 넘쳤다. 미소가 만연한 그 얼굴에 우리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이거 친구가 줬어요!”
“그래? 우와, 좋겠다. 그럼 지연이도 이거 친구한테 선물로 줄까?”
지연이가 하루 종일 보물처럼 아끼던 우산 별사탕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지연이가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응!”
그리고 번개 같이 사탕을 들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발걸음 하나하나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무리에 도착한 지연이는 친구에게 사탕을 건넸다. 그리고 멋진 언니에게도 권했다. 멀어서 대화 내용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언니는 지연이의 사탕이 몇 개 없는 걸 보고 먹는 척만 하고 돌려준 것 같았다. 한참을 이야기하던 지연이는 다시 몸을 돌려 우리에게 뛰어 오고 있었다. 얼굴에 행복이 가득했다. 뛰는 발걸음, 표정 하나하나에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딸내미는 달리기를 채 멈추기도 전에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부끄러웠지만 용기 내서 하나 줬어요!”
순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슬로 모션이 일어났다. 슬로 모션과 스케치 기법의 앙상블이었다. 맑고 푸른 하늘과 회색의 보도블록을 뒤로한 채 지연이가 장면의 중심에 있었다. 발걸음 속도가 느려지며 섬세한 숨소리, 기쁨에 찬 눈동자가 그림처럼 다가왔다. 모든 것이 완벽한 장면이었다. 신나게 달려오는 딸내미를 그대로 끌어안았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딸내미를, 이 순간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딸내미를 한참 안고 있었다. 이대로 좋다 싶었다. 어쩜 저렇게 예쁜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토록 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겨우 한 발 짝 걸어가 만났지만 지연이에게는 겨우가 아닌 엄청난 한 발 짝이었다. 아이가 성장하는 걸 본다는 건 부모와 교사만이 가진 최고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지탱하는 증명을 아이가 해내고 있었다. 내 눈물은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복잡 미묘한 감정이었다. 어쩌면 평생을 이런 경험 하나로 살아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자리를 떴고 딸내미는 못내 아쉬워 뒤를 따랐다. 지연이는 언니에게 진짜 사탕을 못 준 게 아쉬웠던 것 같다. 냉큼 매점으로 가서 하나 더 사더니 언니를 찾기 시작했다. 언니를 찾아 사방팔방 헤매다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딸내미 표정은 애절함 그 자체였다. 어쩌면 무리에게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이 아이에게 비교할 수 없는 소속감과 만족감을 줬을지 모르겠다. 물론 지연이도 또래 무리에서 잘 논다. 하지만 그건 어린이집 엄마들끼리 만든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노는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양식장에 풀어놓은 물고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경험은 정말 낯선 대상에게 용기 내어 다가간 것이었다. 세상을 오롯이 혼자 마주한 경험, 그 벅찬 시간을 딸내미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 상징인 언니를 그리워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앞으로도 딸내미에게 많은 경험이 생길 것이다. 그중에는 힘든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발로 세상에 한 걸음을 떼는 순간의 감동을 가슴에 새겨 두는 게 부모의 역할이다. 그 한순간을 놓치지 않고 간직하리라 마음먹은 하루였다.
딸내미, 너는 우리에게 정말 감동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