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지의 첫걸음

20170809

by 도대영

최근 또지의 로망이 있다. 바로 킥보드. 힘찬 발구름으로 대지를 가르는 언니, 오빠들의 모습에 또지는 흠뻑 매료되어 있다. 놀이터에서 놀다 언니 것이라도 보면 한 번 몸을 실어보고 싶어 안달이다. 물론 스스로 타지는 못한다. 또지는 탑승하시고 엄마나 아빠가 밀고 다녀야 한다. 킥보드라기보다는 수레에 가깝다. 그래서 사고 싶은 걸 미루다 미루다 할머니가 사주시기로 해서 기다렸다.

약속은 약속이기에 백화점으로 향했다. 일단 한 번 보게 할 의도였다. 점원과 이야기를 하며 옆을 보았는데! 또지가 혼자서 시승용 킥보드를 타고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발을 구르며 유유히 나아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타지 못했는데. 안전 헬멧까지 갖추고 나니 당장에 대지를 가를 기세였다. 그렇게 또지의 첫 라이딩이 시작되었다.

아파트 단지로 무대를 옮겼다. 또지는 부푼 마음을 안고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킥보드가 나아가지 않았다. 당연했다. 백화점 바닥은 미끄러웠고 아파트 단지는 벽돌이라 거칠었으니까. 계속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자 또지는 지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놀이터의 놀이 기구로 달려갔다.

감동적이고 멋진 첫 장면이 되려면 딸내미가 여기서 위기를 극복하고 라이딩을 즐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두기로 했다. 방치하려는 게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잊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다. 킥보드를 타리라 생각하지도 못한 또지가 킥보드를 자기 힘으로 탔다. 자신의 한 걸음을 스스로 내디딘 것이다. 부모가 욕심이 나는 순간이 있다. 우리 아이가 시행착오를 할 것 같거나, 혹은 조금 도와주면 더 빨리 해낼 것이라고 판단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부모의 판단이 옳을 가능성도 크다. 더 빠른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성장면에서는 의문이다.


긍정의 훈육에서는 ‘자연적 결과'를 이야기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자연적 결과의 광팬이다. 안전에 큰 문제만 없다면 자연적 결과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빠른' 방법이 아니고 좋은 방법이다. 빨리 가면 빨리 도착할 수 있지만 자연적 결과로 가면 성장하며 갈 수 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은 이 방법이 사실 무척 어렵다. 부모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는 건 쉽다. 기다리는 건 어렵다. 그래서 그 길을 더 가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지받는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