쳐다보세요

20170825

by 도대영

딸내미가 커가고 있다. 눈치 뻔하게 행동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딸내미와 요즘 실랑이하는 주제가 있는데 하나는 물건을 던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얼굴을 찰싹 때리는 것이다. 그때마다 안해와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지만 원칙은 같다. 지속적으로 하는 것과 소리 지르지 않는 것이다.

오늘은 상갓집에 간 안해를 빼고 딸내미와 둘이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밥도 맛있게 먹고 산책 겸 모험놀이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날이 좋아 더 늦게까지 놀고 싶었지만 딸내미가 땀띠 때문에 기저귀를 안 입은 상태라 집으로 올라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쉬움이 남아 딸내미를 안고 거실 창 밖을 구경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딸내미도 신이 났는지 연신 웃고 노래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지나칠 때 사달이 나는 법, 흥분한 딸내미가 장난을 치며 두 손으로 내 뺨을 찰싹 때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이 커지며 딸내미를 쳐다봤다. 딸내미도 아차 싶었는지 민망해하며 다른 장난으로 주의를 끌려고 했다. 나는 딸내미를 보며 말했다.

“도지연(우리는 왜 꼭 엄하게 말할 때는 성을 붙일까?), 아버지(요즘 아버지라고 부른다.) 뺨 때려서 아버지 아프고 속상해. 어제도 엄마 뺨쳐서 안 그러기로 약속했었는데?!”

가급적 피하려 했지만 내 목소리가 낮고 분명 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딸내미는 멈칫하더니 내 목을 감싸 안으며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울음소리가 묘했다. 템포까지 듣자 알 수 있었다. 상황을 모면하려는 의도와 과장이 섞인 울음이었다. 마치 연기를 못하는 아이돌 배우가 주말 드라마에서 우는 장면 같았다. 간간히 한쪽 눈을 떠 내 상태를 살피는 모습이 창문에 비쳤다. 그 모습이 엄청 귀여웠지만 웃을 수는 없었다. 울음으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둘 수는 없으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등만 토닥였다. 그러자 점차 진짜 울음이 섞이기 시작했다. 감정이라는 게 참 묘하다. 가짜로 시작하더라도 어느덧 자기감정에 빠지게 되니 말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나는 상황 전환의 기회를 만들기로 했다.

“아까 아버지가 목소리 낮게 말해서 무서웠어?”

“앙.”

이제 딸내미의 ‘앙'은 우리가 말하는 ‘응'과 뉘앙스와 소리 모두 똑같다.

“속상했겠다.”

“앙. 으아아아앙.”

그렇게 조금 더 울고 난 뒤 진정이 되었다. 나는 됐다 싶어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지연아.”


딸내미는 내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 대답이 없었다.


“도지연 대답하세요.”

“......”

창문에 비친 딸내미 얼굴을 봤다. ‘삐침 + 멍’이랄까? 나는 내 말을 듣는다는 걸 표시하게 하려 했다.

“지연이 아버지 쳐다보세요.”

“......”

“어, 아버지 눈 보세요.”

하지만 딸내미는 여전히 보지 않았다. 내 감정의 온도가 올라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얼른 나를 쳐다봐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고 아름답게 마무리를 할 수 있는데. 협조가 없으니 물러서기도 어려웠다.

‘어떻게 하지? 내가 몸을 잡고 내 눈을 보게 할까? 목소리를 다시 깔아야 하나?’

그때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어느 장소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롤플레잉을 하고 있었다. 내가 비난받으며 혼나는 학생 역할이었는데 선생님이 나에게 똑바로 쳐다보라고 윽박지르던 장면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선생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롤플레잉인데도 시선을 계속 피하게 되었다. 귀에는 뻔히 들리는데 눈은 따라가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에게 무시하냐며, 어디 딴짓이냐며 더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아닌데.


‘그래, 혼나는 것 같은 상황에서 쳐다본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

나는 더 이상 쳐다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등을 토닥이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지연아, 아버지가 지연이가 미워서 그런 게 아냐. 지연이가 다른 사람 뺨을 때리는 행동이 싫어서 그런 거야. 왜냐하면 사람이 얼굴을 맞으면 아프기도 하고 기분이 엄청 나쁘거든. 그건 아무리 친한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누구라고 안 돼. 다른 사람이 지연이한테 해서도 안 되는 거고.”

지연이는 답이 없었다. 다음은 안 하겠다는 다짐을 약속으로 받는 차례였다. 하지만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아버지는 지연이가 앞으로 누구의 얼굴이나 머리도 때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부탁할게.”

그리고 다시 등을 토닥였다. 딸내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사랑해.”

나는 작게 속삭였다.

“앙.”

드디어 딸내미도 대답했다.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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