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20170904

by 도대영

딸내미를 씻기고도 한참을 놀았다. 책방에서 그림을 그렸다. 한참을 논 뒤 딸내미는 엄마 손을 잡고 잠자리로 향했다. 나는 할 일이 있어 오늘은 함께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우선 샤워를 하는데 안해가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오빠, 얼른 와봐!”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안방으로 향했다.

“지연이가 너무 기분 좋은 말을 했어.”

“뭔데?”

“지연아, 해봐.”

딸내미는 방바닥에서 뒹굴거리며 나를 향해 말했다.

“아빠 채꼬!(최고)”

“우와!”

너무 기뻐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 채꼬! 하부지 채꼬! 하무니 채꼬!”


딸내미는 연신 최고 퍼레이드를 펼쳤다. 그런 딸내미가 너무 예뻐서 참을 수가 없었다. 볼에 뽀뽀를 하며 말했다.

“지연아, 지연이가 최고라고 해줘서 아빠 정~말 행복해!”


딸내미는 뽀뽀가 귀찮았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얘 너무 예쁘다.”

안해도 지연이가 사랑스러운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오늘도 아름다운 밤이 깊어 갔다.

요즘 지연이가 정말 정말 사랑스럽다. 고집이 생기면서 곤란하거나 힘들게 하지도 하지만 동시에 행복하게 하는 말과 행동을 많이 한다. 상큼한 웃음, 바쁜 발걸음 하나하나 예쁘다. 더듬거리는 말로 본인의 생각을 나타낼 때는 그렇게 아름답고 고마울 수가 없다. 아이가 커간다는 것이 부모에게 어떤 행복감을 줄 수 있는지 ‘이해’가 아니라 ‘느끼’고 있다. 설명할 수 없는 충만함, 그것이 요즘의 일상이다.

흔히들 아이는 3~4살일 때 제일 예쁘단다. 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성장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부모에게 한 없는 사랑을 표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건 아니다. 태어나서, 아니 뱃속에서부터 2년가량을 어떻게 보냈는지가 지금의 성장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가시적인 피드백이 적어 ‘일방적인 희생’이라 여겨지는 그 시간이 지금의 밑거름이었을 것이다. 안해와 나는 그 갑갑했던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시간과 마음을 쏟아부었고, 방식을 공유했다. 이건 지금도 유효하다. 아이는 자양분을 먹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감동이다.

안해는 요즘 에듀콜라에 육아 관련 글을 쓴다.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무척 고민한다. 쉽게 쓰이는 글이 어디 있겠냐만은 찌푸려진 미간만큼이나 신중하고 진지하다. 그리고 글로 표현되지 않은 생활 속 고민은 더 깊고 알차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안해가 더 좋고 고맙다.

앞으로 더 많은 갈등과 위기가 생길 것이다. 아이는 커갈 테고 부모를 닮아 자기 생각이 단단할 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뻔한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계속 고민하고 대화하고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의 행복이 불안하기보다 충만한 이유는 우리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완벽을 향해 함께 노력하기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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