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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Nov 05. 2022

* 보이는, 보이지 않는.. (2022.11.05.토)

보이는보이지 않는.. (2022.11.05.) *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반 아이 중에 아주아주 노란색의 안경테를 쓴 A가 있었다. 안경을 쓰는 학생이 많지 않았었는데 A의 그 샛노란 안경테는 아직 안경을 쓰지 않았던 내 눈에 아주 신기하게 보였다. 대부분 할머니가 쓰는 색상으로 생각되던 노란테 안경을 쓴 A를 더 자주 몰래 훔쳐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앞이나 옆에서 보았을 때 빙글빙글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아주 두꺼운 안경알 때문이었다. 눈이 나쁘면 안경알이 두껍다는 것과 그래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느낌을 준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학기 초에 어느 초등학교를 나왔는지 조사했던 것 같은데 A가 B부속초등학교를 나왔다는 것이 또 신기했다. 그때까지 ‘부속초등학교’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부속초등학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니는 공립이 아니라 ‘사립’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사립은 등록금이 엄청 비싸다는 것도... 물론 그 당시 언론에서 들었던 리O초등학교나 숭O초등학교 같은 이름은 익숙했지만 그 학교들이 사립인 줄은 몰랐었다. 그때 생각했다.     


 - 부속초등학교에서는 배우는 것이 좀 다른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두꺼운 안경알이 들어간 샛노란 안경테를 쓴, 거기에 작고 빼짝 마른 몸매의 A는 내 눈에 더 별종으로 보였었다. A를 아우르는 이 모든 것들은 그녀가 왠지 공부만 할 것 같은 느낌을 주었고 그래서 조금 긴장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 공부 잘하는 애 같은데..??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알았다. 그 모든 것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나의 기억 속의 A는 조용하고 착하고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닌, 별 특징이 없었던 무난한 학생이었다. 물론 나 또한 조용하고 착...은 아니고 공부는 뭐 하는 만큼 좀 했었고 또, 별 특징이 없었던 학생이었지만....   

  

   일반 공립학교를 다니면서 배우는 것과 보통 ‘그들만의 리그’로 불리는 분류된 이들이 다니는 사립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아마 그 옛날시절에도 무척 달랐을 것이다. 지금은 더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공립학교에서 얼마 안되는 육성회비를 못내서 혼났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시대였을텐데 그 시절의 사립초등학교는 대부분의 사람은 꿈도 꾸지 못하는 귀족학교였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더 하겠지..     


   알고 있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모두다 공립학교 선생님인 지금, 사립초등학교에 다녔던 그때의 A가 가끔 떠오른다. 그녀의 샛노란 안경테도... 안경을 벗었으면 엄청 예뻤을 것 같은 A가 왜 내 기억 속에 있는 걸까...

     

   중학교 1학년 때의 A가 나에게 확실하게 알려준 것이 있다.     


 -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누가 들으면 우스운 말일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아마도 무언가 대단하다는 것이 있다면 일단, 멈칫하며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이는 것 이면의 것을 보려고 하는 습관이, 그때부터 생겨난 것 같다.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좋다고 하는 것이 있다면 일단 이렇게 생각한다.     


 - 내가 직접 확인하겠어....

 - 보이는 것 말고 다른 것을 보겠어...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명성과는 다른 것들을 직접 확인한 경우가 많았고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늘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아이러니라는 것과 또 성경적이라는 것을 늘 깨닫는 것도 신기하다.

     

   성경에서 보이는 하나의 특징이 있다면 이것이다.    

 

 - 보이는 것, 예상했던 것을 벗어나는, 놀라운 삶으로의 인도함     


   첫째가 축복을 받는 것이 당연함에도 다른 이가 축복받는 것, 적은 숫자의 군대로 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는데도 엄청난 숫자의 군대를 이기고 승리하는 것, 가난하게 태어나서 그러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데도 그것을 넘어서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것, 병을 얻어서 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 병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 1+1은 2가 되어야 하는데 100이 되거나, 100+100은 200이 되어야 하는데 0이 되거나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일들이 성경에 적혀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할 뿐이다.      


   아쉽고 안타까웠던 결말을 예상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놀라운 결말로 나타난다는 것... 이걸 믿어야 하는데!!! 살아가고 있는 ‘과정’ 중에는 이것을 깨닫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 같이 어렵다는 것이, 인생을 다 살아본 다음에야 이것을 쪼금 알게 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외모라든지, 성격이라든지, 재능이라든지, 부모님이나 집안이라든지... 태어나기 전에 내가 ‘선택’했던 외모, 성격, 재능, 부모님이나 집안이 아닌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보았더니 지금의 내가 되어 있는 것..     


   그러니, 예쁘고 잘 생겼다고, 누구하고나 원만한 성격이라고, 노래를 잘한다고, 따뜻하고 사랑 많은 부모님이거나 세상 누구나 알 수 있는 명문가 집안이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인양’ 자랑스러워 하고 우쭐대는 마음을 갖는 것은 사실, 적당하지 않다. 내가 무언가 애써서 얻은 것이 아닌, 그냥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니, 더 겸손하고 감사하게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뜻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겠지...     

  

 - 나에게 왜 이런 놀라운 것들이 주어졌을까...

 - 나에게 주어진 이것들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이니, 화려하고 부러워할 만한 것이 자기에게 주어졌다면 그 이면이 ‘empty’ ‘빈 껍데기’가 아니도록 무언가 채워야 하겠다. 어렵고 힘든 일일 수 있다.     


   또 만약, 그렇게 내세울 것이 없고 오히려 숨기고 싶은 것들이 ‘어쩔 수 없이’ ‘하늘의 뜻’으로 나에게 주어졌다면, 일단은 속상하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생각해야 한다.


 - 나에게 왜 이런 안타까운 것들이 주어졌을까...

 - 나에게 주어진 이것들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한다.     


 - 나에게 주어진 이 안타까운 것들로 무엇을 꿈꿔야 할까...     


     

   이번 주 금요일 채플에 C목사님이 오셔서 본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셨다. 들으면서 생각했다.   

  

 - 저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 오셨을까...

 - 하나님은 계속 이런 식으로 일하시는구나....

 -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말해 주어야 할까...     


   옛날과 달리 풍족한 아이들이 많은 요즘의 우리 학교에서, C목사님의 가정사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모르겠다. 공감이 되었을까... 그 안타까움이 전해졌을까... 그 아픔과 상실과 슬픔이 느껴졌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설법과 유머로 가득찼던 목사님의 설교 중에 갑자기 나온 드라마틱한 가정사에 아이들이 일순간 집중하는 것을 보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채플 다음 시간에 D학급에서 이렇게 말했다.     


 -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들에 자랑스러워하거나 낙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좋은 것들이 주어졌다면 감사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기를요. 만약 초라한 것들이 주어졌다면 그걸 통해서 더 놀라운 것들이 인생에서 펼쳐질테니, 절대로 포기하거나 낙담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거든요!     


   수행평가를 좀 일찍 끝내고 5분 정도 하는 내 말에 아이들의 눈이 반짝거렸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이 있어서, 말하는 내가 더 힘이 났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분명하게 깨달은 한 가지..     


 - 오히려 아주 작고 초라한 것을 통해 더 놀라운 삶이 펼쳐진다는 것...


   요즘 내 눈에 보이는 녀석들에게 이걸 직접 말해주고 싶다. 또 때때로 힘이 빠져 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작은 바람도 가져본다..     


   확실하게 차가워진 초겨울 저녁이지만 예상을 뒤엎는 훨씬 더 따뜻한 겨울이 되기를 바라보며... 몸도 마음도...     


***********************    

 

*** 몇 명과 이야기하다가 이런 이야기가 오갔다.     


 - 늙지 말아요 E선생님..

 - 그건 불가능하죠....우리 모두...     


 내가 말했다.     


 - 본 것도 못 본 것처럼 해 주면 되지 않을까요..

   서로의 나이듦에 대해 예쁘게 바라봐 주도록 해요..     


 F가 말했다.     


 - 선생님은 늙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건가요..

   겉모습이 늙는 것보다 생각이 늙지 않도록 해야 해요..     


 ‘보이는 겉모습’ 늙는 것이 더 걱정인 나에게 F는, ‘보이지 않는’ ‘생각이 늙지 않는 것’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뭐라고 했더라....     


*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아직 늙지 않은 것이 아닐까...


<그대> 라는 노래..


https://han.gl/ldl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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