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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Nov 12. 2022

* 러브레터 – 너에게만 말하는건데.. *

* 러브레터 – 너에게만 말하는건데.. (2022.11.12.토) *

러브레터 – 너에게만 말하는건데.. (2022.11.12.) *      


 - 일하지 않고 (너랑) 이야기만 하면 좋겠다...    

 

   언젠가 (투덜거리며 하는) 나의 이 말에 A가 말했다.     


 - 일을 하지 않으면 되잖아..

 - 아?????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런 놀라운 방법이~~?? *^_^*...      


    

  - 짜증 나...     


   편한 마음으로 별생각 없이 이런 말을 했었나 보다. 이걸 들은 B가 며칠 뒤에 말했다.     


 - 말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건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해..

 - 나 원래 말이 거친데, 바른 말 고운 말을 골라서 하려니 너무 힘들어...



   1학년 아이들이 채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물론 부담스러워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디서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 인양 매주 금요일 채플 시간을 기다린다. 채플 시간에 학급이 성가를 맡게 되면 담임선생님이 기도하게 되는데 그날은 내 옆에 앉았던 C 선생님이 기도를 맡았다. C 선생님을 보며 내가 말했다.     


 - 선생님.. 앞에 나가면 목소리가 떨릴텐데..

 - 그러니깐요...

 - 나랑 좀 이야기하고 가면 떨리는 게 약간 덜하지 않을까요..??

 - 네 선생님~~     


   평상시는 괜찮은데 앞에 나가서 말할 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알고 있는 내가 C 선생님과 조금 수다를 떨었다. 그날 C 선생님은 아무런 떨림 없이 대표 기도를 마치셨다. 예배 후 C 선생님이 말했다.     


 -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가서 그랬는지 하나도 안떨렸어요...

 - 그런 것 같았어요~~*^_^*..          



   이야기하는 것보다 글로 쓰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원래 말이 많은 편이 아니고 그래서 말주변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다 보니 말에 실수가 많다. 모두 다 알고 있듯이 써 놓은 글은 계속 읽으면서 수정하면 되지만 한번 내 입을 통해서 나간 말은 수정이 어렵다. 그래서 더더더 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늘 생각한다.     


 - 그때 왜 그렇게 말했을까...

 - 이 말을 했었어야 했는데..

 - 아니, 차라리 말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수다떨기’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절망했었다. 이야기를 하려면 알고 있는 게 있어야 할텐데 알고 있는 것도 없고 내 이야기를 하는 법도 모르겠고 또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단지 그냥 듣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어디 가서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거의 듣기만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랬으면 좋겠다. 말하지 않고 듣기만 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으니 내가 ‘선택한’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게 되는데 그 이야기가 삽시간에 온갖 곳으로 퍼져나갔던 기억도 있다. 한번 내 입을 통해서 나간 말은, 내가 딱 한 명에게만 이야기했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전파된다는 것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운 사실...     


   내가 1학년 1반에서 담임을 했었을 때 우리 반에서 오전에 있었던 일을 그 날 오후, 3학년 아이가 와서 이야기했었던 적이 있다.      


 - 선생님, 선생님 반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서요???     


   내가 얼마나 놀랐던지... 어디서 들었는지 물으니, 매점, 복도, 오다가다...들었다고 했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카풀에서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입학한 1학년 아이들에게 늘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 우리 학교는 굉장히 작은 곳이예요.. 기숙사도 있고 하루내내 학교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죠....     


   D에게 들은 이야기 하나. D를 포함한 3명은 누구에게 요모조모 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 입이 무거운 사람들인데, 전혀 관계없는 E에게서 본인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 어디서 누구에게 들은 것인지 알아보았으나 끝내 그 3명은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만 확인했다고 했다. E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 제발, 다른 사람, 제 3자의 이야기는 하지 말고, 나와 너의 이야기만 하면 안될까...

 - 아니면, 좋은 이야기만 하던가.. 그렇지 않은 내용은 함구하면 안될까..

 - 왜 모여서 다른 사람 이야기들을 하는걸까....     


   사람들은 ‘어디선가 들어서 알고 있는 어떤 (비밀스러운) 사실’을 말하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 아닐까.. 사실, 너만 알고 있는 것도 아닐텐데, 그러니 들은 내용을 가만히 알고만 있으면 안될까...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말고...그도 알고 있을 수 있으니...     


   언젠가 F가 말했다.     


 - 너랑 G랑은 스타일이 완전 다르던데??

 - 알고 있어..

 - 그런데 이야기가 돼??

 - 그렇지 않으면 혼자가 되어야 하잖아...     


   또 H가 말했다.     


 - 네가 좋아하는 I가 굉장히 부정적이던데???

 - 그러지 않았는데 사람이 바뀌더라....          


   스타일도 다르고 부정적인 사람으로 바뀐 이와 함께 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혼자인 것 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던 적이 있다. 물론 힘든 일이었고 언젠가부터는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학교소식의 끝’인 나이기에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아마도 나까지 알고 있는 사실이라면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하면 틀림없다. 그래서 지금도 기도한다.     


 - 제가 몰라도 되는 것은 듣지 않게 해 주세요.

 - 꼭 필요한 것만 알았으면 좋겠어요.

 -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신중하게 해 주세요...

 - 그리고 가능하면...다른 사람 이야기는, 특히 좋지 않은 이야기는 전하지 않아 볼게요..     


   그러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J에게 해 본다.     


 - 내가 너를 믿고 너에게 말했던 K에 대한 내 불편한 감정, 네가 K에게 말했더라..?? K가 알고 있던데.... 그래서 우리는 완전히 끝났어...     


 - 들었던 말을 그냥 알고만 있어야 했어..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물론..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어.. 사실 나도 어제 너의 이야기를 L에게 하기는 했어...뭐.. 좋지 않은 말도 있기는 했어.. 그래도 네가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할거라면, 나를 걱정하는, 좋은 이야기만 해 주었으면 해.. 부탁해도 될까... 아마...어렵겠지? 아니 그냥 내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말아 줘....나에게 들었던 이야기, 그냥 지워줄 수 있겠어? 나도 네 이야기, 하지 않을게.. 어려울까? 어렵겠지??? 말하는 것을 너는 좋아하니까...        


  

 - 너에게만 말하는건데..     


   얼마나 달콤하고 유혹적인 말인지... 마치 나에게만 특별히 말하고 부탁한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른 이들에게도 이야기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느낌이란....     


   그러니 예전의 M에게 이야기해 본다.     


 - ‘너에게만 말하는 건데’라는 느낌을 갖게 하지 마..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말해야 해.. 아니면, 진짜로 나에게만 말해야 하고...     


   요즘 내가 주로 하는 생각..     


 - 언제나,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만 집중하기로 할게요...     


   혼자 살아야지만 가능한 이야기, 절대로 되지 않을 이야기를 여기에 적어본다....     


***********************


***몇 주 전에 연극공연을 보았다. 나만 빼고 모든 사람이 문화생활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든 좌석이 매진이어서 평일 금요일 저녁으로 어렵게 예매를 했다.     


   제목은 <러브레터>... 딱히 끌리는 제목이 아닌, 너무도 너무도 진부한 제목이었지만, 등장하는 노(老) 배우들의 이름을 보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중년의 배우들과 노년의 배우들 공연 중 선택해야 했는데, 당연히 아주 연세가 많으신, 79세와 81세 두 배우의 공연으로 선택했다.      


   10대에 만나서 50여 년 동안 330여통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우정과 사랑을 키워온 두 남녀의 이야기였는데, 서로에게 관심이 있고 사귀기도 했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과 결혼을 했는데도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계속 편지 왕래를 하면서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전하고, 결국에는 ‘너를 사랑해..’를 확인하게 되는 스토리...   

  

   다른 공간에 앉아 있는 듯, 각각의 의자에서 앞만 보고 앉아있는 두 배우가 서로가 주고받았던 편지를 읽는 것으로 100분이 채워진다. 



   아무것도 안하고 편지를 읽는 억양만으로 객석을 꽉 채웠는데 졸던 사람들이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서 재미있었던 연극이었다.     


   직접 말하는 것보다 편지로 내 감정을 더 솔직하게 잘 쓰는 나로서는 ‘너에게만 말하는건데’로 가득찬 그 편지 내용들이 공감이 되었다. 50년 동안 330통이라면, 매주 2~3통의 편지도 써봤던 나에게는 많은 양은 아니었다. 나는 매일이라도 편지 쓸 수 있는데....     


   무엇보다 50년 동안 인연을 지속해 왔다는 것이 더 신기했던 사실.....     


   누군가와 50년 동안의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까..???     


* 연극 <러브레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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