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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Dec 03. 2022

* Yes!!! (2022.12.03.토) *

* Yes!!! (2022.12.03.) *     

 

 - 아직 얼음이 있네..?

 - 선생님! ‘벌써!’ 라고 해야죠..

 - 아! 그렇군! 내가 지금 3월인 줄 알았어..     


   내년 수련회를 위해 현장답사를 같이 온 A선생님이 흐르는 강을 보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많지 않은 물이 흐르는 강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3월 말이어도 살얼음이 곳곳에 있었는데 12월 초 밖에 되지 않은 지금도 벌써 상당히 많은 얼음이 있었다. 띄엄띄엄 있는 그 얼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멈춤 없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는 강물에 눈길이 갔다. 얼음을 피하지 않고 요리조리 얼음과 돌덩이 사이사이로 막힘없이 흐르는 강물....

          

   B가 말했다.     


 - 내년에 성가대 파트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이 있었고, 셀모임장도 해달라고 하던데 어떻게 해야 할지 기도해 주세요..     


   내가 말했다.     


 - 둘 다 하면 좋겠지만 성가대 파트장을 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C가 말했다.     


 - 성가대 간식을 담당하는 봉사부장을 하라고 하시는데, 그게 굉장히 힘들고 바쁜 일이거든요... 그런데 저는 저에게 들어오는 부탁은 모두 ‘Yes!’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하겠다고 했어요...           


   수능 감독을 모든 선생님이 가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변수가 많아 신경을 써야 하는 힘든 일이기 때문에 조금 연세 있으신 선생님들은 빠지게 된다. 나도 그 기준에 조금씩 근접해 가고 있었는데 올해에는 D선생님 선에서 조절된 것 같았다. 놀라서 D선생님에게 질문했다.     


 - 선생님은 이번에 왜 가지 않아요??

 - 나도 몰랐는데, 가지 않게 되니까 갑자기 늙은 것 같아...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 내년에는 가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 할 수 있을 때 모두 다 하세요..

   하나님 앞에서는 Yes 밖에 없으니깐요...     

     

   무언가 속상해하는 나에게 E가 말했다.     


 - 너무 힘 빼지 마세요.. 물 흐르듯이 받아들이세요...       

   

   어떤 일로 눈물짓고 있는 나에게 F가 말했다.    

 

 - 속상해 하지 마....주시는 대로....

 - ...주시는 대로..

 - 사실 누가 해도 상관없잖아...          


   명언이나 인생의 한 줄 같이, 멋진 문구들을 읽으면 고개가 끄덕여지고 이런 삶을 살아야겠다고 쉽게 수긍이 되지만 실제로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이론으로 머릿속에 쉽게 넣는 것과 달리 그것을 나의 삶과 직접 연결시키는 과정은 무척 아프고 힘들고 거부하고 싶을 때가 훨씬 더 많다.      


   거절하고 싶은 그 뾰족한 것들을 그냥 두 눈 꼭 감고 모르는 척 있는 힘껏 껴안아서 나를 찌르는 그 잠깐을 참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대부분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이 너무 힘들다. 가능하면 회피해서 마음이라도 편하면 좋겠는데, 회피한다고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고, 그냥 받아들이기에는 무언가 마음이 불편하고, 그렇다고 억지로 인위적인 힘을 써서 방향을 바꾸려는 것은 너무도 큰 힘과 억지스러움이 들어가고...          


   제안받은 것에는 모두 ‘Yes’를 하겠다는 C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 E나, 주시는 대로 받으라는 F나, 할 수 있을 때 모든 것을 하라는 엄마나, 한 달 동안 있었던 이 모든 일들의 요약 단어는, Yes...    

 

   어떤 일을 언제까지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못하게 되는 때가 온다는 것, 그러니 가능하면 내 앞에 주어진 일들을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주시는 대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해 보지만, 사실 쉽지 않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어떻게 흔쾌히 Yes의 삶을 살 수 있을까...      


*******************     


   *** 올해 7월 말에 출간되었던 내 책, <슬기로운 학교생활 2021>의 출판사 대표 F에게 홍보 영상을 찍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깜짝 놀라서 이틀 동안 답변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 진.짜. 찍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하지...

 - 그런데 Yes라고 해야 하지 않아??

 - 문자적인 대답은 Yes이지만, 그런데....정말 하기 싫은데...     


   이틀 만에 F 대표에게 이렇게 답변했다.     


 - 심각하게 고민해 봤는데요, 일단 저에게 제안이 들어온 것은 Yes 하기로 생각은 했어요...그래서 찍기는 할게요.. 그런데,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네요..ㅠㅠㅠ     


   학교로 찾아온 F가 이렇게 말했다.     


 - 저희 출판사에 속한 작가분들이 800여분이 되는데요, 그 중에서 3분을 뽑은 것이고 그 중에 한 분이세요...

     

   처음 듣는 그 설명에 정말 깜짝 놀랐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사실, 너무도 바쁘고 정신없는 일들 속에서 겨우겨우 숨만 쉬면서 살아 내고 있는 요즘에 또 하나 새롭게 치고 들어온 일이어서 만약에 가능하다면 진짜로 피하고 싶었고 매몰차게 거절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수락을 했다 완전 어렵게.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두 분 작가를 찍고 왔다는 9명의 촬영팀이 오후 7시30분부터 시작해서 오후 9시까지는 끝내보기로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날씨는 갑자기 추워졌고 멀쩡하던 내 피부는 그날따라 좋지 않았고 옷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이것저것 챙겨야 하는 업무가 많았던, 도착한다는 오후 6시30분까지 문서작업을 하며 업무를 하던 그날, 겨우겨우 예상했던 시간에 촬영을 모두 마쳤다. 오후 9시에 촬영을 끝내고 촬영팀과 모두 박수를 쳤다.     


 - 이렇게 빨리 끝내다니!!!          


   인터뷰 내용을 미리 받았고 답변을 준비했는데 그 중에 몇 가지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이렇게 대답했다.   

  

 - 전문적으로 글만 쓰고 싶다는 생각을 더 간절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작년과 올해, 글을 더 많이 쓰고 있습니다.. 지금은 에세이 형식의 글을 쓰고 있는데, 좀 더 준비해서 ‘음악’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이것이었다.     


 - 언제부터 글을 쓰셨나요..

 - 1997년도부터 25년 동안 써 왔고 지금도 매주 쓰고 있습니다.     


   ‘25년’이라는 말에 9명 모두 깜.짝. 놀라는 모습에, 내가 더 놀랐다.     


 - 왜 작년 책을 묶었나요..

 - 원래 1997년도 것부터 차례로 묶고 싶었지만 너무도 방대해서 일단 작년 책만 묶자고 생각했습니다.

 - 왜 작년이었을까요...

 - 작년에 의미있는 만남들이 있었습니다. 

 - 어떤 만남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의미있는 만남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 만남 이후 작년부터 제 글이 좀 더 깊어졌고 달라졌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드는 일들이 있다.     


 - 생각지도 않은 이런 놀라운 일들이 내 삶에 찾아오다니!     


   1999년부터 15년 동안 전문 출판사인 G와 중고등학교 음악교과서를 저술하던 일, 2008년 11월 한달 동안 학교를 빠지고 하지만 월급을 받으며 일본에서 한 달을 보내게 되었던 일, 2022년 7월 책을 출간하게 된 일, 그리고 이번에 홍보 영상을 찍은 일도 그렇고.. 물론 가장 큰 일은 대학교에 합격한 일과 지금의 우리 학교에 다니게 된 일이 가장 크지만 말이다.     


   모두다 ‘Yes’를 했기에 가능했던 일들...     


   자연스럽게 또 자신있게 큰 목소리로 ‘Yes!!!’를 외쳤으면 좋으련만 대부분의 경우 엄청난 고민과 갈등과 불안 속에서 자신없이 말끝을 흐리며 소심하게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yes.....’라고 했던 일들이었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에 ‘Yes!!!’를 외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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