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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Dec 17. 2022

* 돕는 손길 (2022.12.17.토) *

 돕는 손길 (2022.12.17.) *      


 - 앞으로 학교에 며칠 더 나와야 하는지 알아요??     


   학교 공사로 인해 여느 해보다 일주일 늦은 3월7일에 개학을 했기에 내년 1월13일에 겨울방학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한 달을 더 출근해야 한다는 (아득한) 생각에 날짜를 세어 보았더니 5주, 즉 25일을 나와야 했고 학교 행사로 인해 2일을 더 나와야 하는 나로서는 총 27일을 출근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 아!!!!!!!!!!!!!!!!!     


   정.말. 외마디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A의 학교는 석면공사로 인해 2달 하고 10일, 즉, 70여일의 방학을 다음 주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얼마나 부러운지....     



   일반적으로 2학기 2차 지필고사가 끝난 이후 겨울방학을 하기 전까지의 시간은 생활기록부와의 전쟁이다. 보통 겨울방학까지 작성하던 예년과 달리 마감 기한이 점점 빨라지는 추세다. 그러니 선생님들이 얼마나 바쁘고 정신이 없는지 모른다. 올해는 특히 1월 초에 모든 것을 마감한다고 일찍부터 공지가 되어서 마음이 더 바쁘다.     


   학급 학생들의 활동을 정리해야 하는 담임 선생님, 과목별 세부특기사항(세특)을 작성해야 하는 교과 선생님, 동아리 활동을 써야 하는 동아리 담당 선생님들 등 모든 교사가 총출동이 되는데, 예년보다 생활기록부의 양이 많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모든 것을 전폐하고 생활기록부 작성만 하면 그래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연말의 온갖 행사와 더불어 신입생을 위한 업무 준비까지 해야 하는 나로서는 1분 1초가 아깝고 소중한 때라고 할 수 있다.     


   갑자기 무언가를 후다닥 해버리는 것을 잘하지 못하고 심적으로 부담을 갖는 특성이 있어서 무엇이든지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는 나는, 1학기 교과세특은 이미 1학기에 끝냈고, 2학기 내용은 10월부터 준비해 왔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쏟아지는 일들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나서 조금이나마 편하게 숨을 쉬기 위해서라고나 할까...     


   혼자서 한 학년 전체의 과목별 세특을 쓴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28년 동안 이 일을 어떻게 해 왔나 싶다. 정성껏 써 주던 예년과 달리 힘이 부치는 것을 점점 더 느끼고 있는 것이 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일단 과목별 세특을 작성해야 다른 일들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기에 지난 주까지 이 일에 매달렸고 끝내 버렸다. 아쉬운 점이 너무너무 많았지만 더 이상 힘과 정성을 쏟을 여력이 나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올해는 특히 12월 말에 학년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고 1월 초에 있을 신입생 연수와 신입생 수련회 준비까지, 내가 매일 작성하는 세부계획서와 체크해야 하는 준비사항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정말 말 그대로 ‘머리가 터질 지경’ 이었다. 내가 해야만 하는 신입생 관련 일과는 별도로 5개의 학년 프로그램을 세세하게 준비해야 했다.      


   B에게 말했다.     


 - 아....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선생님...

 - 선생님들에게 나눠서 맡겨...

 - 다들 바쁘신데요...

 - 맡기면 잘 하실거야...

 -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고 영 못하겠으면 맡겨 볼게요...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고요...     


   나처럼 일이 쏟아지고 있을 담임선생님들에게 또 다른 일을 맡기는 것을 차마 할 수 없었기에 일의 90%까지 완성해서 세부적인 몇 가지 사항을 준비해 주시도록 해 보았다. 그런데! 나의 걱정과 달리, 내가 부탁을 드리자마자 담당 선생님들께서 즉각! 움직이셨다.     


 - 선생님! 이건 이렇게 할까요??

 - 선생님! 이렇게 저렇게 하기로 했어요!

 - 선생님! 저희가 이렇게 준비하면 되겠죠???     


   1학년 임원들인 클래스 서포터즈 아이들을 불러서 일일이 체크하시는 선생님들을 보며 나는 크게 감동했다.     


 - 아! 정말 좋은 선생님들을 보내주셨어!     


   아마도 나라면 이렇게 반응했을 것이다.     


 - 아??? 제가요???? 저도 완전 바쁜데..ㅠㅠㅠ...    

      

   아침에 출근하는 1시간 10여 분의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상념에 빠지기도 하지만 최근에 내가 빠지지 않고 하는 일은 이것이다.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내 머리 위 허공에 오른손 손바닥을 위로 올리고 말한다.     


 - 하나님... 오늘 하루를 올려드립니다....오늘 하루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날이 되게 해 주세요..   

  

   그 다음은 오른손 손바닥을 아래로 해서 내 머리 위에 안수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 하나님... 너무너무 부족하오니, 특별한 지혜와 특별한 명철과 특별한 창의력을 부어주시고, 특별하게 돕는 손길과 특별한 배려와 특별한 사랑과.....을 주시옵소서..      


   늘 기도하는 단어 중 하나는 ‘돕는 손길’이다. 돕는 손길이 있어야만 가능한 삶이라는 것을 매번 깨닫는다. 누군가를 ‘돕는 손길’은 차마 되지 못하지만, 나를 도와주는 ‘돕는 손길’을 매번 구한다는 것이 죄송하고 안타깝고 미성숙한 일이라는 것에 또 한번 고개가 숙여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강하게 기도한다.   

  

 - 돕는 손길을 주세요...     


   눈을 감았다가 뜨면 모든 것이 끝나있고 방학식 날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11월부터의 프로그램들이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진행되어가며 연말을 향해 가고 있다.      


   언젠가는, 결국에는 끝나겠지...어떻게든.....      


*****************



***12월 학년 프로그램의 첫 번째 시작인 학부모 연수가 금요일 저녁에 진행되었다. 그 전날의 폭설로 길이 미끄럽고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매서운 날씨였기에 더 걱정이 되었지만 감사하게 잘 마무리 되었다.     


   강사를 섭외하는 일, 현수막 2개를 제작하는 일, 물과 음료수를 챙기는 것들도 중요했지만 우습게도 내가 잊지 않고 챙기려고 했던 중요한 일은 이것이었다.     


 - 2시간 전에 히터 켜 놓기 - (추운 건 정말 싫으니까)

 - 방송반 챙기기 - (도와주는 아이들인데 뭐라도..)

 - 선생님들 식사 챙기기 - (밥이 제일 중요하니까)

 - 연수물 제대로 프린트 해 놓기 - (이걸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종이를 버렸는지)

 - 학교 홈페이지에 공지 띄우기 - (일단은 알려야 해) (놓치지 말아야지)

 - 끝나고 사진 올리기 - (기록해 놓아야 해)     


   1시간 30분 강의를 의뢰했건만 2시간 10분동안 열정적인 강의를 하신 외부 강사 C선생님을 보며 깜짝 놀랐고, 생각지도 못한 쓰레기통을 만들어 온 D선생님, 행사가 끝난 뒤 과감하게 현수막을 뜯어내고 정리하던 E선생님, 현수막을 예쁘게 달아준 F선생님, 여기저기에 장소 위치를 붙여준 G와 H선생님, 물과 커피를 살뜰하게 주문하고 챙겨준 I선생님, 강대상 위치를 보고 같이 옮겨준 J와 K선생님, 인쇄물을 배부하고 학부모들을 안내한 L과 M선생님, 저녁 6시부터 밤10시까지 모두 참석해 준 11명의 방송반 학생들과 지도하신 N선생님, 그리고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왔다갔다 하시며 도움을 주신 후집사님, 꽤 긴 시간 자리에 함께 해 주신 교장선생님과 모임 끝날 때까지 함께 해 주셨던 교감선생님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O가 말했다.     


 - 1학년 담임선생님들이 굉장히 많이 남으셨던데, 함께 하시는 걸 보니 너무 좋던데!       


   무엇보다도 밤 10시10분, 모든 행사가 끝난 뒤 그 텅빈 공간을 정리하고 나 홀로 내려오는 것을 상상하며 쓸쓸해 했던 내 생각과 달리 1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끝까지 함께 해 주셨다는 것에 진심으로 큰 감동을 했다. 내가 이 날을 제일 꺼려했던 것은, 12월의 추운 날, 행사가 끝난 뒤의 그 썰렁함을 나 혼자 느끼게 될 것 같아서였으니까....     


   겉으로는 멀쩡하고 당당해 보이지만 늘 다른 이의 돕는 손길을 간절하게 바라는 부족한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했던 학부모 연수....     


   이제, 또 다른 돕는 손길을 기도하며 다른 업무에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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