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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Jan 21. 2023

* 같이 칼춤을 춰줄 망나니 (2023.01.21.토)

같이 칼춤을 춰줄 망나니 (2023.01.21.) *      


- 나는 왕자는 필요없어...

  나와 같이 칼춤을 춰줄 망나니가 필요해..

- 내가 할게...그 망나니!          



   푸치니의 마지막 작품이면서 미완성작인 오페라 <투란도트>의 맨 처음 부분에는 투란도트 공주가 낸 문제를 맞추지 못해서 무릎을 꿇고 사형을 기다리는 왕자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때 등장하는 공포스러운 사람이 바로 ‘망나니’다.     


 - 망나니 : 사형을 집행할 때에 죄인의 목을 베던 사람    

 

   거구의 몸집과 비슷한 사이즈의 어마어마하게 큰 칼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사형을 집행하려고 등장하는 대머리의 망나니의 모습이 첫 장면부터 등장하면서 문제를 못맞추었다고 진짜로 사람을 죽이는 일을 시행하는 투란도트의 차갑고 냉정한 모습을 그대로 대변해 준다. 점점 긴장감이 고조되는 합창 음악이 클라이맥스로 다다를 때 망나니가 휘두른 칼에 왕자가 쓰러지면서 첫 장면이 끝난다.       


   

   온갖 종류의 학폭을 겪었던 주인공 A가 처절하게 외롭고 긴 시간 동안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치밀한 준비를 마치고 가해자들에게 나타나 하나씩 복수하는 드라마 B에서 나온 대사 중 한마디가 내 마음 속에 박혔다.   

  

 - 나는 왕자는 필요없어...

   나와 같이 칼춤을 춰줄 망나니가 필요해..     


   가해자에 대한 복수를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온 A 앞에 전혀 예상치 못하게 나타난 C가 만약 실제 현실에서였다면 당연히 도망을 갔거나 A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했을 것이다. 모든 감정이 사라져서 메마르고 건조한 A와는 사뭇 다른 성격을 지닌 C의 대답은 의외였다.     


 - 내가 할게...그 망나니!      


   얼마나 부러운 말이었던지! 그는 A를 변화시키려고 그 어떤 조언을 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평가하지도 않았으며 단지 A의 아픔을 알아보았고 공감했으며 함께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고데기로 지져진 A의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안타까운 마음으로 살며시 덮어주었고...        


  

   몇 년 전 언젠가 D에게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제가 직접 말해야 할 것 같았어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내 말을 들은 D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렇게 말했다.     


 -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 부끄러우니까요..

 - 왜????     


   난 그때의 D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의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 그런 말을 안하려고 했다고?? 당연히 했어야 하는 거 아냐?? 부끄럽다고??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그때 D는 이렇게 말했다.     


 - 버텨... 버텨야지...     


  나에게 왜 그랬냐고 되물어주지 않았던 D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집에 와서는 이 문구가 생각이 났다.     


 -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에스겔 16:6)          


   좋은 모습만 보여 주기를 바랐지만, 나의 속상하고 부끄러운 온갖 이야기도 할 수 있었던 D가 있어서 애써 버틸 수 있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그 상황을 버티기 힘들지 않았을까..         

 

   평생 홀로 ‘복수’를 계획했던 A에게 ‘같이 칼춤을 춰줄 망나니’가 되기로 결정한, ‘왕자’같이 나타났던 C와의 만남 같은, 그런 대단한, 멋진 만남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칼춤을 추는 망나니와 같은 삶이라도 누군가와 함께 추는 칼춤이라면, 해 볼만하지 않을까....     


   그때 내 속 이야기를 했었던 D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나랑 같이 칼춤을 춰줄 망나니’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랑 같이..’ 무언가를 할 수는 있었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었던 아픔을 겪은 A의 복수극에 C는 어떤 역할을 할까.... C는 A의 아픔을 이해했겠지.. A의 복수가 어떻게 펼쳐지든지 C를 만난 A의 삶은 이미 완성작...성공작.... 그녀의 차가운 눈빛에 따스함이 스며들고 있었으니까....     


 *****************     


*** B드라마의 첫 장면에서 나왔던 음악..     


 멜로디와 반주가 마음속 깊이 들어왔다.      


 노래도, 반주도, 직접 하고 싶게 만드는 음악...   

  

https://han.gl/RS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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