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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Apr 01. 2023

* 같은 경험하기 (2023.04.01.토) *

같은 경험하기 (2023.04.01.) *      


 - 저희 29기는 이제 수련회, 청포대, 대천, 스카이바이크, 갯벌, 세족식 등의 명사만으로도 끝도 없이 펼쳐질 아름다운 이야기를 평생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심각하게 학교 일을 함께 이야기하던 A와의 대화 중 일부분.     


 - 이런 학교 일을 집에서도 이야기 하나요?

 - 이런 이야기를 왜 해?

 - 아니 그래도 고민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요??

 - 뭐하러 해….

 - 그렇긴 하죠….     


  하루 내내 있는 학교에서의 온갖 일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이야기하며 공감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단편적인 몇몇 이야기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함께 겪은 것이 아닌 이상 겉핥기식의 수다로 끝날 수 있으니…. 나 또한 학교에서의 일을 집에서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오래전 어떤 어려운 프로젝트를 함께 하게 된 B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 너랑 이렇게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정말 좋아!!!      


  B도 좋았었을까….     


  내년에 개교하는 학교를 보여주겠다고 C 목사님의 차를 타고 우리 학교 정문(이라고 나중에 붙여졌을)에 도착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1994년 8월 15일로 기억하는데 그날 나는 하얀 원피스 정장에 깨끗한 여름 구두를 신었었다. 차에서 내린 나와 엄마에게 C 목사님이 양팔을 벌리고 한곳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 이곳입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서 목사님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는데 그곳에는 뻘건, 그야말로 뻘건 흙더미 동산이 있었고 건물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어떤 건물도 없이 중장비만 있었던 그곳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C 목사님이 올라오라고 하셨다. 나는 하얀 구두가 뻘건 흙에 푹푹 들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보면서 어렵게 어렵게 동산에 올랐다. 지금의 우리 학교가 세워진 그 동산이었다.     


  내년 3월에 개교한다는 학교가 8월에도 지어지지 않았으나 그곳을 가리키며 ‘바로 이곳!’이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C 목사님의 굳건함에 매혹(?)되었던 나와 같은 기수의 선생님들, 원년 멤버 1기 선생님들은, 다른 기수와 확연하게 다르다.     


  아무것도 없는 곳, 아무것도 아니었던 곳, 건물이 아닌 흙더미를 보고 시작했던 사람들이기에 1기는 특별하게 생각된다. 그래서 그 이후에 오신 분들이 학교에 대해 쉽게 비판하는 것에 대해 나는 굉장히 굉장히 불편해했고 엄청 싫어했다.     


 - 저분은 왜 저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걸까….

 -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해 본 경험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1기가 서로를 잘 챙겨주고 애틋하게 생각하며 친밀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1기’라는 말에는 굉장히 깊은 의미가 있다.      


 -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믿음으로) 왔고, 바닥에서부터 시작했고, 즐거움, 기쁨, 아픔, 슬픔과 고통, 그 모든 과정을 함께 해 왔어.     


  나에게 ‘1기’는 그런 의미다. 무엇보다 즐거움을 함께했던 사람들이라기보다, 고통과 슬픔과 상처를 함께 겪어온 사람들이라는 것. 특히 유명한 곳이어서  온 것이 아니라 무명(無名)한 곳에 믿음으로 왔던 대단한 사람들 가운데에 내가 함께 속해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1995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되었던 수련회가 2023년 올해 다시 시작되었다. 어느 학년이나 3월이 가장 바쁜데 신입생은 더더 정신없는 때가 3월이다. 올해는 새롭게 전국연합학력평가와 기초학력평가까지 실시되어서 더 바쁘게 느껴졌다. 거기에 3년 만에 진행되는 수련회까지 있었으니, 정말 눈을 감았다가 뜨면 모든 것이 끝나있기를 바랐던 3월이었다고나 할까….     


  멈추었던 수련회를 다시 준비하면서 장소와 프로그램을 모두 바꾸었다. 즉, 항상 강원도로 가던 수련회 장소를 충청도로 바꾸었고 스카이바이크, 갯벌체험 등 체험하는 프로그램들이 새롭게 들어가게 되었다. 작년 11월부터 내내 준비해 온 수련회를 어제까지 무사히 마치면서 3월이 끝났다.      


  아쉬운 점이 무척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수련회 중에서 담임선생님들의 직접적인 참여와 지도가 가장 많았던 수련회였고, 그래서 1학년 담임선생님들의 연대가 더욱더 끈끈해졌으며 마치 우리가 수련회를 직접 하고 온 듯한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바라만 보던 관망자가 아니라, 참여하고 토론하고 의논하고 고민하던 적극적인 참여자로서의 수련회였다.     


- 저희 29기는 이제 수련회, 청포대, 대천, 스카이바이크, 갯벌, 세족식 등의 명사만으로도 끝도 없이 펼쳐질 아름다운 이야기를 평생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퇴소 예배 때 내가 했던 기도문 중 일부분이다.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모른다. 처음부터 설명해야 아주 조금 알아들을 수 있는 어떤 이야기가 단순한 명사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이해되고 공감되며 같이 웃고 울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동문’ ‘같은 기수’라는 말에 담겨있는 의미가 얼마나 심오하고 귀한지, 이번 29기 아이들이 알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토록 오래 준비해 왔던 수련회를 감동적으로 뿌듯하게 끝내게 됨에 감사드리며, 새로운 4월을 맞이하는 토요일이다. 4월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같이 경험하게 될까 기대해 보며….     


****************     


*** 몸이 묵직하고 다리가 뻐근했던 오늘, 오후에 D에게서 전화가 왔다.     


 -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네??

 - 그럼요!

 - 아니 힘들어서 뻗어있을까 하고 전화했지!

 - 오전에 어디 나갔다가도 왔는데요! 괜찮아요!     


  E에게 말했다.     


 - 우리 이제, 4월에는 아무 것도 하지 말자!     


  주변에서 그렇게들 걱정하던 수련회, 수련원을 떠나기 전 찍은 29기 전체 사진 한컷.     


#같은_경험하기  #수련회  #청포대  #대천  #스카이바이크  #갯벌  #세족식  #개교  #1기 #원년_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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