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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Apr 22. 2023

* 만학도 (2023.04.22.토) *

만학도 (2023.04.22.) *    

  

  고등학교 1학년이면 우리나라 나이로 17살이다. 대부분은 그 나이대에 맞게 입학하는데 가끔 교환학생으로 다녀오기 위해 휴학했다가 다시 입학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1살이 더 많은 아이도 있다. 또 자기 나이보다 더 성숙하게 보이는 녀석들도 있고, 사복을 입으면 대학생 또는 군대 다녀온 복학생(?)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은 아이들도 있어서 가끔 놀라기도 한다. 몇 년 전 그런 아이들 속에서 유독 어려 보이는 A에게 물었다.    

 

 - 아…. 17살인 건가요??

 - 아뇨…. 16살입니다….

 - (내 얼굴에 화색이 돌며) 정말?? 7살에 학교 들어갔어??      


  나처럼 7살에 입학했을까 하는 생각에 순간 기뻤었는데, 8살에 정상적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중학교 과정을 속성으로 수학한 뒤 입학한 녀석이었다. 이야기를 이어갔다.     


 - 그럼 지금 공부하는 거에 어려움은 있어??

 - 아뇨, 전혀 없어요!

 - 그치?? 어려운 것은 없었던 것 같아~    

 

  고등학교 공부하는 데 나이가 몇 살 어리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학급 친구들에게 ‘형’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며 조곤조곤 이야기 하던 A가 얼마나 귀여웠던지!      

     

  그 옛날 대학교 실기시험을 보던 1월의 어느 날 나는 깜짝 놀랐다. 15명을 뽑는 음대 작곡과 실기시험에 약간 과장해서 아저씨 아주머니까지 온 연령대가 다 출동한 것 같았다. 허술한 사복을 입고 간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고등학생들도 많았지만 트렌치 코트에 파마머리까지 한 아저씨와 화려한 복장의 아줌마와 언니 오빠들이 넘쳤었다. ‘우리 대학교 다른 과를 졸업하고 음대에 다시 들어오려는 사람도 있다’ ‘음악 활동을 한 유명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 학교 작곡과만 지원하는 n수생이 몇 명이다’ 등등의 말이 바람결에 들려왔다.     

 

  그런 이야기에 고작(?) 고3이었던 나는 한껏 주눅이 들었었던 것 같고, 실기시험을 위해 함께 기다리는 장소에 있었던 그랜드 피아노에 서로 달려들어서 이 곡 저 곡을 화려하게 치는 사람들을 보며 또 한 번 어깨가 내려갔던 것 같다.     


  ‘작곡’이라는 특성상 실제적인 음악활동을 하다가 이론으로 음악을 알기 위해 나이가 들어서 음악대학교에 진학하려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외모적으로도 경력자였고 실력적으로는 이미 완숙단계에 이른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짜였던 나는 처음 겪는 그 모든 순간에 놀란 마음이었고, 제발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불안한 마음을 다스렸던 것 같다.     


  그렇게 나를 두렵게 했던 그 화려한 경력의 사람들은 입학할 때 전혀 보이지 않았고, 결국 나를 포함한 고3 현역 14명과 재수생 언니 1명, 총 15명이 동기생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동기생들 중 나이가 한 살 어린 동생이 되었고…. 물론, 재수생 언니에게만 ‘언니’라는 호칭을 붙였고 나머지 친구들은 나에게 이름이 불리던 ‘친구’였다.      


  그때 그랜드 피아노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전문 음악인 (연세 있으셨던) 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전히 음악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시면 좋으련만…     


  19살에 수능을 보고 20대에 대학교에 입학, 학부 전공과 동일한 대학원에 연이어 진학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니라면 과감하게 S대를 박차고 나오기도 하고,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면 70대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도 하는, 정말 멋진 시대다.     


  같은 동아리의 산업공학과 B는 졸업한 뒤 직장에 다니다가 30대 중반에 의대에 편입해서 지금은 내과 의사가 되었고, 원자핵공학과 C는 30대에 다시 수능을 보고 치대에 진학해서 치과의사가 되었다. 또 D는 K대 심리학과 졸업, S대 작곡과 이론과 졸업, 또 다른 K대 경영학과 대학원 졸업, J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 지금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었다. 공대에 진학했지만 로스쿨로 진학, 변호사가 된 E도 있다. 의학이나 법률계통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는 연세 있으신 분들이 많았는데, 20대였던 대부분 학생과 달리 30대, 40대도 있었고 특히 박사과정을 하는 사람들은 50대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그 연령대가 더 높아졌을 것이다. 학교를 졸업한 지 한참 되었고 석사나 박사과정도 아니지만 학교 옆에서 자취하면서 계속 본부 도서관에 나와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때는 그분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졸업했으면 취직해서 사회로 나가는 것이 정석인데, 왜 취직하지 않고 계속 대학교에 나오는 걸까’ 생각했었다. 지금은 어렴풋하나마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아마도 ‘대학교’라는 그 분위기를 벗어던질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자유로움, 신선함, 낭만, 푸르름, 젊음, 책임의 가벼움, 무한한 가능성, 꿈꿀 수 있는 미래 그리고 친구들 등등…. 이런 것을 느끼고 누릴 수 있는 곳이 ‘대학교’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그걸 알았던 것이 아닐까….     


  다음 주에 실시되는 1차 지필고사를 앞두고 아이들은 아마도 열심히 책과 씨름하고 있겠지…. 지금 당장은 시험공부 때문에 힘들겠지만, 곧 머지않아 진학하게 될 ‘대학교’를 가기 위한 ‘필요과정’이라 생각하면 조금 힘이 나지 않을까…. 끝까지 지치지 말기를 응원해 본다.     


  공부는 아이들이 하고 어른들은 조금 쉬어주는, 시험 전주 주말을 보내며….     


*********************      


 ***또 다른 S 대학교에서 입학설명회를 진행했다.     


 한 시간여 동안 그 학교의 프로그램 설명을 들으면서 내 가슴이 뛰었다. 강의가 끝나고 나오면서 만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우리, S 대학교 가야겠다!

 - 네! 선생님!     


  행사를 준비했던 몇 선생님들께 메시지를 보냈다.     


 - 저도 다시 공부해서 대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네요!     


  F에게 말했더니 이렇게 답한다.    

 

 - 만학도 전형이 있어!

 - (크게 웃으며) 만학도 전형이라고요!     


  그러면서 이렇게 답했다.     


 - 대학교를 다시 다니고 싶어요.

   대학 생활을 제대로 못 해본 것 같아서요….     


  공부하고 싶다는 이유가 아니라 그냥 그 자유로운 분위기를 제대로 누리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원 때도 누리지 못했던 그 분위기를….     


  만약, 만약 다시 대학교에 다니게 된다면, 진짜 어떨까….      

  음대 말고 다른 곳으로….     


* (2023학년도 1학기 1차 지필고사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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