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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Apr 29. 2023

* 제자들의 배신 (2023.04.29.토) *

 제자들의 배신 (2023.04.29.) *   

   

 - 아이들이잖아….     


  항상 4월에는 교육실습생, 줄여서 교생들이 학교에 온다. 4월 말에 있는 지필고사 기간을 제외하고 3주일 동안 하는 것이기에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대부분 우리 학교 졸업생들이 많았고 많을 때는 전체 인원이 20여 명 가까이 되는 때도 있었는데 올해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졸업생 중에는 당연히 내가 담임했던 학생들도 종종 있었는데 사람을 잘 챙기지 못하는 나로서는 식사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보내는 경우가 많아서 늘 후회하곤 했다. 올해에는 2015년에 담임을 했던 21기 학생 2명이 있었고 용케도 식사할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귀엽고 까불이였던 A와 얌전하고 조용했던 B는 8년 전과 전혀 다르지 않은 외모로 나타났다. A는 보이시한 매력을 갖춘 예비 체육 선생님으로, B는 더 여성스러워진 예비 영어 선생님으로 신분이 바뀌었다는 것 말고는 예전에 내가 담임했던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모습이었다. 2015년 당시 교내의 ‘아름다운 가게’라는 행사에서 <판타스틱 행복백서>를 천원에 구매했다며 나에게 힘있게 건네던 A에게 내가 물었었다.     


 - 이 책을 선생님 주려고 산 거야??

 - 네! 이 책 보자마자 선생님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목이 선생님과 어울려요!     


  내 책꽂이에 있는 그 책을 보며 늘 A를 생각했었고, 그 제목을 보자마자 나를 생각했다던 A의 말이 나를 얼마나 기쁘게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하늘거리는 민트색 롱스커트를 입고 워십을 하던 B도 나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정기를 한 모습으로 얌전하게 미소를 짓는 B는 여전히 수줍은 소녀의 모습이다.     


  담임을 하면서 30여 명의 학급 아이들을 모두 다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모두 다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두 알고 있듯이…. 모두에게 같은 마음을 품고자 ‘애를 쓰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더 가고 신경이 쓰이는 아이들이 있다. 그래서 나로서는 ‘황금 같은 시간’을 그 아이에게 쏟게 되지만 그 아이가 그 사랑을 알았던 경우도 있고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아니 오히려 그 ‘시간 쏟음’에 대해서 그 아이는 안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한 가족의 일대기나 흥망성쇠, 한 기업이나 단체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사람에 대해서도 어린 시절부터 나이 들어서까지의 인생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 흐름을 보고 느끼면서 그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 너무 좋다. 그래서 관심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는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듣고 싶어한다.     


 - 어떻게 살아왔어요???     


  마찬가지로 17살에 나와 만났던 고등학교 1학년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을 지나고, 대학교에 입학해서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등의 ‘인생 이야기’를 가지고 나에게 다시 나타났을 때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 흐뭇하고 좋을 때가 없다.     


  부잣집 도련님 같은 뽀얀 얼굴에 너무도 잘생긴 외모여서 교지 모델로 추천까지 했었던 17기 C가 이번 주에 나를 찾아왔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여러 가지 아픔이 있었던 C는 그래서 내가 더 챙겨주고 잘되기를 바랐던 학생이었다. 1학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2학년, 3학년, 대학교와 대학원까지, 매해 때마다 연락을 해왔고 자주 찾아왔으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일일이 알려주던, 나를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대해주던 ‘학생다운’ 학생이었다. 올해 결혼을 하고 8월에는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있다며 찾아온 C를 보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아름답게 다루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시험 감독을 하게 되면 다른 학년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늘 궁금한 것은 이것이었다.     


 - 교육의 의미가 무엇인가

 -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의 효과가 나타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 내가 지금 아이들에게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인가     


  맡고 있을 때는 예쁘게 느껴졌던 아이들이 나와 헤어져서는 무언가 달라진 것 같은 걸 느끼게 되면 무척 괴롭고 힘들다. D에게 말했다.     


 - 예전의 아이들과 다른 것 같아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힘들어진 것 같아요.

 - 그냥 아이들이잖아….

 - 오히려 선생님들이 더 순진한 것 같아요….

 - 아이들이니까….     


  선생님들끼리 이런 대화를 했던 적이 있다.     


 - 스승의 날 전까지는 본 모습을 감춰야겠어요.

 - 제 생일이 지났으니 이제 본 모습을 보여야 할까 봐요….     


  예수님도 3년을 같이 지냈던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셨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수행평가를 하기 전이나 담임을 맡았던 때에는 좋은 관계일 수 있지만, 더 이상 수행평가가 없고 담임에게 잘 보이지 않아도 될 때, 그때 아이들이 보이는 모습이 진.짜.라는 것을 매번 확인하는 것은 슬프다.      


  그래서, 나의 영향력이 그의 생활기록부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나에게 연락을 주고 인사를 하러 오고 찾아오는 아이들이 ‘진짜 나의 제자’로 남는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학부모도 마찬가지이고. 이런 이야기를 E와 했었다.     


 - 이렇게 저렇게 좋아하고 고마워하던데요

 - 이로울 때는 달콤하지만, 이롭지 않다고 생각되면 돌변하는거죠.

   그러니 쉽게 좋아하지 말아요….     


  계산기를 두드리며 맺는 관계라니, 속상하다. 진짜로 그러는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맡고 있는 동안에는 계산기를 두드리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어차피 나중에 달라지는 관계라고 하더라도, 어차피 나중에 배신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이들에게 움직이는 마음을 억제하지는 말자고, 부어지는 사랑을 끊지는 말자고, 돈으로 계산할 수도 없는 시간을 그냥 막 부어보자고, 그냥 바보같이 보내보자고 다시금 다짐을 해본다.     


  아마 나도, 나를 이리저리 챙겨주었던 나의 그 수많은 스승들에게, 모른 척, 무심한 척, 또는 심한 배신감을 주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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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생실습 마지막 날 인사하러 온 A가 직접 그리고 디자인해서 만들었다며 건네준 열쇠고리…. 


#제자  #배신  #교생  #교육실습생  #교육  #의미  #스승  #생활기록부  #열쇠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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