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avecin Sep 02. 2023

*일이 있는 게 당연한 거야 (2023.09.01.토)

일이 있는 게 당연한 거야 (2023.09.01.) *     


 - 일이 있는 게 당연한 거야     


  5일 동안 열심히, 그야말로 열씸히 일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주말을 주말답게 보내기 위해서다. ‘주말을 주말답게’라는 말에 사실 어떤 대단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바라기는 주말에는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때리며 쉬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반드시 해야 하는 몇 가지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서 나의 ‘멍때리며 쉬는 시간’의 유무가 결정된다.     


  일요일은 오후 3시 30분경까지 교회에 있어야 하는 나에게 주말이란, ‘Only 토요일’을 말하는데,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토요일에 해야 하는 일이다. 이번 학기에는 잠시 쉬기로 했지만 1학기에는 예술의전당 아카데미에 다녔었고, 다녀온 다음에는 글을 쓰고 주일날 성가곡 피아노 연습을 해야 한다. 이 중에 가장 큰 부분은 단연 글쓰기다. 글쓰기가 빨리 끝나면 쉬는 시간을 좀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지만 글쓰기가 더디면 쉬는 시간은 줄어든다.     


  가능하면 정해진 시간 안에 한편의 글을 썼었지만 썼던 글을 돌아보는 횟수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글 쓰는 데 시간이 조금 더 쏟아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서 다시 시간을 정해서 글 쓰는 것으로 돌이키고 있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를 돌아보는 방법의 하나가 글쓰기였을 뿐인데 다른 것에 목표를 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의 수준이 제자리걸음이어도 이해해 주시기를….     


  쉬는 시간에 내가 하는 일은 뭘까…. 사실 특별한 것은 없다. 책을 읽거나 드라마 보기…. 음악감상이 빠진 이유는,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음악을 틀어놓고 했었지만 언젠가부터 좀 더 깊은 집중을 위해서 음악을 듣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깊은 몰입에 음악이 방해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집에서 책 읽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오히려 학교에서는 되는데 말이다. 그래서 편한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를 볼 때가 있는데,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사실 한가지다.      


 - 이 드라마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가….     


  드라마를 보는 관객의 관점이 아니라, 만드는 연출자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고나 할까…. 왜 저 연기자가 캐스팅되었고 드라마 세트는 왜 여기이며 이 장면은 왜 필요한지…. 이런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드라마 안에서 허우적대지는 않는다. 음악회를 구성하고 이끌어갔었던 사람이기에 이런 구조적인 눈으로 드라마를 보게 된다. 다들 재미있다는 A 드라마를 보았는지 B에게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 첫 회 보고 보지 않았어. 아니 요즘 시대에 아직도 그런 신데렐라 스토리라니!     


  내가 말했다.     


 - 단순한 신데렐라 스토리로 보지 말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봐야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의 전개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우리의 인생사가 선명하게 보인다고나 할까.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씩씩하게 살아가는 인물도 있고, 모든 것이 다 주어졌지만 행복하지 않은 인물도 있고, 밖에서는 성공한 인물이지만 가정에서는 실패한 사람도 있고, 어린 시절의 불행을 평생에 걸쳐 끌고 가는 사람도 있고, 그 불행을 자기 대(代)에서 과감하게 끊어내는 사람도 있고….

     

  가장 분명한 것은, 불행은, 가장 행복한 최고점을 찍은 다음에 배치된다는 것. 모든 것이 다 잘 되어가고 있는 듯한 때에 갑자기 닥치는 환란이라고나 할까.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하는 안도의 순간에 갑작스러운 일이 발생하는 것. 2시간 30분 정도의 영화나, 16회의 드라마나 항상 2/3 지점에 배치되는 이런 식의 이벤트(사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해가는지를 보는 것이 내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포인트라고 할까…. 어떤 드라마에서는 16회의 중간지점에서 주인공을 죽이기도 해서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C와 이런 대화를 했었다.     


 - D 드라마 본 적 있어??

 - 난 드라마는 잘 안 보는 쪽 사람인데??     


   영화나 드라마 보는 것을 싫어한다는 E는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 그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올지 긴장되어서요.

 - 음…. 그건 책 읽기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 책은 무언가 직접적이지 않은데 영화나 드라마는 보고 있는 게 힘들어요.     


  주말에 내가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내고 난 다음 주어지는 잠깐의 쉬는 시간에 보는 드라마를 통해서 인생을 보는 눈을 갖게 된다.      


 - 내 인생이 드라마로 펼쳐지고 있다면 지금의 이 시간들은 무슨 뜻으로 해석해야 하는 걸까….

 - 그때의 그 이별은 잘된 일이었던 걸까….

 - 지금의 이 만남은 어떤 의미인 걸까….

 - 이다음에는 무엇이 세팅되어야 하는 걸까….

 - 지금은, 내 인생의 어느 지점일까….    

 

  F 극작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내 드라마는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그런데도 행복함으로 가득 찬 드라마는 기대감이 없어서 지겨울 것이고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 찬 드라마는 보고 있는 사람도 힘들게 할 것이니,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섞어지면 좋으련만…. 내가 내 삶의 연출자라면, 지금 나의 삶에는 좋은 일이 몇 가지 일어나도 좋을 때라고 생각하는데, 내 삶의 연출자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할 뿐이다.     


 - 일이 생겼어요.

 - 일이 있는 게 당연한 거야. 일이 없는 게 이상한 거지.     


  일이 있는 게 당연하다는 G의 말에 걱정으로 한참 열이 올랐던 마음의 온도가 순식간에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하긴, 일이 없는 게 더 이상하지, 일이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우리의 인생처럼….  

   

  이런 글을 읽었다.     


 - 당신의 과거는 하나님의 긍휼에 맡기고,

   당신의 현재는 하나님의 사랑에 맡기며,

   당신의 미래는 하나님의 섭리에 맡겨라.


     - 성 어거스틴 -     


  진행되고 있는 드라마를 보면서 매회 기대하는 마음을 갖기보다, 모든 것이 완결된 드라마를 몰아서 보면서 어떤 모습으로든 ‘완성’된 인생으로 끝맺음하는 연출자를 신뢰하는 나에게, 내 삶의 연출자의 섭리에 나의 미래를 맡겨 본다. 신뢰하는 마음으로….     


  아…. 오늘은 드라마를 볼 시간이 있을까…. 

    

****************     


*** 행정실에 갔다가 H의 노트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주로 사용하는 파일들을 노트북 바탕화면에 깔아 놓은 것 같은데, 순간 블록 게임 화면인 줄 알았다.     


  그냥 나열해 놓은 파일들이지만, 오묘하고 아름답게까지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희극보다 비극이 더 많은 인생이라도 다 각각 의미 있는, 필요한 파일들일 것이라 믿어보며…. 모아 놓으면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이겠지….     


#일이_있는_게_당연한_거야  #주말  #멍때리며_쉬는_시간  #글쓰기  #드라마  #연출자  #킹더랜드  #행복  #불행  #만남  #이별  #해피엔딩  #인생  #긍휼  #사랑  #섭리  #어거스틴  #신뢰  



작가의 이전글 * 저렇게 사랑이 쉽다면야(2023.08.26.토)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